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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청년 바흐와 취업 전쟁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시대와 평화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청년들은 암울하기만 하다. 경제가 개선되고 있다고 하는데, 청년들이 처한 상황은 왜 이렇게 더 나빠져만 갈까. 출구가 없는 미로 같은 현실은 청년들 사이의 유행어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헬조선’ ‘n포 시대’가 분노와 자조였다면, ‘이생망’이나 ‘혐생’에서는 분노조차 포기한 무력감과 절망감이 절절히 배어난다. 한창 꿈을 펼쳐야 할 나이에 ‘이번 생은 망했다’라니.
 

‘이생망’과 ‘혐생’, 무력감과 절망에 빠진 청춘
식상한 교훈이나 조언보다 진정한 공감 필요

모든 청년이 힘들다지만, 음악전공 학생들은 더 힘들고 답답하다. 원서를 내 볼 직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직접 연주를 통해서만 음악을 들어야 했던 시절에야 많은 음악가에게 일자리가 있었지만, 음악이 음반이나 파일로 만들어져 거래되는 오늘날에는 가장 뛰어난 소수의 음악가만이 필요할 뿐이다. 문자 그대로 1등만이 살아남는 초경쟁 시대이다. 일자리 문제가 어찌 음악 전공 학생들만의 문제일까. 그저 음악이 기술혁명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고 있을 뿐이다.
 
옛날이라고 해서 음악가들의 취업이 마냥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어느 시대나 일자리의 수는 원하는 사람보다 적게 마련이었고,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항상 치열했으니까.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대로 수십 명의 음악가를 배출한 음악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그였으나 평생에 걸쳐 일자리 걱정을 피하지는 못했다. 예술의 길은 멀고 험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첫 직장이었던 바이마르 궁정에서 그가 맡은 일은 시종을 겸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형 집에서 더부살이하던 처지였으니 그에게 다른 선택이 있을 리 없었다. 그 후에도 청년 바흐의 취업 전선에는 난관이 많았다. 뤼베크의 오르가니스트 자리는 선임자가 10살 연상인 자기 딸과 결혼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함부르크의 성 야코프 교회는 4000 마르크라는 거액의 기부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알량한 권력을 가진 자들의 갑질은 구직 청년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직장을 잡았어도 그의 일자리는 언제나 불안했다. 바이마르에선 군주들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 투쟁의 희생양이 되어 콘서트마스트 자리를 포기해야 했고, 평생 일하기를 희망했던 쾨텐의 카펠마이스터 자리는 예산 삭감으로 6년도 채 버티지 못했다. 생애 마지막 27년을 일한 라이프치히의 칸토르 자리 역시 간신히 찾은 일이었지만, 과도한 업무와 부족한 봉급에 늘 허덕여야만 했다. 매주 5개 교회를 위해 한 번도 빠짐 없이 예배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이 척박한 근무환경 때문에 ‘마태수난곡’이나  같은 교회음악의 최고 걸작들과 수많은 교회칸타타가 태어났으니,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바흐의 인생이 우리 청년들을 위로하지는 못한다. 역경을 극복해야 위대한 성취가 가능하다는 도덕적 설명은 식상할뿐더러 이미 지친 이들을 더 지치게 만들 뿐이다. 바흐 자신도 다른 선택이 있었다면 되풀이하지 않았을 고된 삶이 아니던가. 요즘 청년들이 가난을 모르고 자라서 너무 쉽게 포기하며 나약하다고 비난하는 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다만, 아무리 ‘No~력’해도 안 되니까 좌절하고 두려운 것일 뿐.
 
불러만 보아도 가슴 설레는 꽃다운 청춘은 나이 든 사람들의 기억에 존재하는 추억일 뿐 젊은이들의 현실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청춘은 희망이기보다는 덫이고 무게다. 이들에게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조언이 통할 리 없다. 그러니 그저 공감하고 곁을 지켜주는 것밖에. 그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청춘이 혹시 있을지 모르니까.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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