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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조문·조화 거절'에 숨은 구본무 회장의 뜻

하선영 산업부 기자

하선영 산업부 기자

21일 오전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본원 장례식장에는 조문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하고 소탈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가족끼리 장례를 치르겠다”는 유가족들의 방침 때문이었다. 친인척을 제외한 나머지 조문객들 대부분이 빈소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사는 박태선(66)씨는 “구 회장과 별다른 친분은 없지만, 평소에 고인의 검소하고 올곧은 성품을 진심으로 존경해왔다”며 “국화꽃 한 송이만 놓고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유가족과 LG그룹 관계자들은 장례를 치르는 이틀간 빈소 입구에서 조문객들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이들을 돌려보냈다. 거절당한 것은 조문객만이 아니다. 수많은 조화가 다시 돌려보내 졌다. 21일에는 구 회장의 모교인 서울고교 동창회에서 보낸 근조기도 유가족 측은 정중히 거절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물론 외부인들의 조문·조화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LG 측은 “생전 고인과 각별한 연을 맺었던 이들이 일부러 들렀는데 조문조차 거절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빈소를 찾았지만, 임직원과 동행하지 않고 홀로 조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꽃바구니 형태의 화환도 빈소에 놓였다.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르겠다는데 굳이 장례식장을 찾았냐고 탓할 수 없다. 우리의 정서가 잘 용납되지 않는다. 오히려 굳이 가족장으로 한정해 조문을 받지 않은 고인과 유가족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과시적 장례 문화가 너무나 일반화된 까닭에 소박하고 조용하게 세상과 이별하겠다는 고인의 뜻이 유난히 돋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1998년 작고한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화장(火葬)은 당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전에도 한국의 장묘문화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내 시신은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만들어 사회에 기증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20%대였던 전국 평균 화장률도 2008년에 62%, 2016년 80%를 넘게 된 데는 최 회장의 역할이 컸다.
 
구 회장의 마지막 길은 떠들석하게 과시하는 걸 선호하는 우리의 장례 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 줌의 재로 소박하게 떠나고자 했던 구 회장의 뜻이 그래서 아름답다.
 
하선영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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