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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개가 사람을 문다면 …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이 갈등, 심상찮다. 좌우 갈등도 세대 갈등도 남북 갈등도 아니다. 이번엔 남녀 갈등이다.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군복무 가산점, 강남역 살인, 홍대 몰카처럼 계기만 있으면 불꽃이 튄다. 군내 나는 김치처럼 제법 묵은 주제란 말이다.
 

언론은 넘어가도 경찰은 막아야
남녀가 믿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엊그제마냥 거리로 나오기도 하지만 주요 싸움터는 SNS나 기사 댓글이다. 각 지고 날 선 주장과 조롱이 차고 넘친다. 끊임없이 생산되고 쉴 새 없이 퍼 날라진다. 갈등은 증폭되고 새 전선으로 확산된다.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기도 한다. ‘미투(#MeToo)’의 진의가 의심받고 섣부른 선악의 이분법도 등장한다. 비리와 권력 남용은 남자 몫이고, 내부고발자는 여성 역할이라는 식이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조금 의외였다. 군 가산점 문제만큼 논쟁적이지 않았다. 강남역 살인 사건의 여성 혐오도 아니었다. 몰카 사건은 그저 범죄였다. 같은 직업 종사자끼리 상도의를 깬 파렴치범이었다. 게다가 피의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그런데도 남성 아닌 여성들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피해자가 남자였기에 수사가 적극적이고 신속했다는 게 여성들 주장이다. 피의자가 여자라서 포토라인에 세웠다고 믿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포토라인이 아니라 기자들이 몰렸던 거다. 남성 누드 사진 유출, 범인은 여성 누드 모델, 사람이 개를 문 거다.
 
남녀차별 수사라는 건 일리가 있다. 경찰은 억울하다지만 별수 없다. 지난해 몰카 피의자 5437명 중 남성이 5271명이었고 119명이 구속됐다. 구속률이 2%가 조금 넘는다. 발각되지 않은 몰카 범죄와 신고 못 한 사건을 감안하면 여성 피해자는 배 이상 늘어날 테고, 구속률은 ‘0’에 수렴한다. 지난해 몰카 혐의로 입건된 여성 283명 중 구속된 사람은 없다는 통계가 의미 없는 이유다.
 
여성의 피해의식과 경찰의 억울함은 사실 같은 데서 출발한다. 남성의 몰카 범죄가 그만큼 횡행한다는 거다. 곳곳에서 표적이 되니 여성들은 불안한 건데 워낙 흔하다 보니 경찰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문 거다. 검찰과 법원의 처벌 의지도 강하지 않다. 집회에서 여성들이 내민 증거를 보면 그렇다. “몰카 460회 찍은 남성 회사원 집행유예/183명 몰카 찍은 남자 의대생 기소유예/여자 탈의실 찍은 남성 국가대표선수 자백 불구 무죄/몰카 찍은 남성 판사 4개월째 수사 진척 없음.”
 
이런 차에 여성들이 바라던 수사 태도를 이번 몰카 사건에서 본 것이다. 성차별을 안 느꼈으면 이상할지 모른다. 가뜩이나 ‘알파걸’들의 시대다. 학업 말고 운동이나 리더십에서도 남자보다 뛰어난 엘리트 소녀들이 넘쳐난다는 말이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의 1~3위 졸업생 모두 여생도였다. 여자 수석이 계속되다 보니 성적 비중을 73.5%에서 50%로 줄였는데도 그랬다. 여학생과의 경쟁을 피해 남녀공학에서 남고로 전학하는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자들이 찌질하게 여자 몰카나 찍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수사당국의 태도가 그대로니 여성들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언론과 경찰은 다르다. 개가 사람을 물어도 경찰은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한국 여성 93%가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느낀다는 조사가 있다. 한국을 사랑했던 미국 작가 펄 벅은 말했다. “어느 민족에게나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들의 관계다. 서로 확신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으로 봐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는 얘기다. 더 늦기 전에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한국의 성평등은 몰카 응징에서 새 출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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