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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웰다잉과 작은 장례식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최종현(1926~1998) SK 회장은 폐암이 재발하자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고 자택으로 돌아왔다. 통증 완화제를 맞고 기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인 그는 화장(火葬)을 선택했다. 그의 유언은 우리나라의 장례 문화를 화장 위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불필요한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평온하게 삶의 마지막을 맞는 ‘웰다잉’을 실천한 이들은 꽤 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스콧 니어링(1883~1983)은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며 “죽음은 옮겨감이나 깨어남에 불과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면서 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몸에 이상이 오자 스스로 곡기를 끊고 딱 100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는 항암치료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쓰며 문학을 놓지 않았다. 그는 ‘옛날의 그 집’이란 시에서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읊었다. 마지막 시구를 제목으로 삼은 시집이 그가 임종하던 해에 출간됐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도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일체의 생명연장 조치를 거부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교수는 피부암이 악화하자 10여 일간 곡기를 끊고 75년간의 사색을 마쳤다. 법정(1932~2010) 스님은 “일절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라”며 마지막까지 『무소유』를 실천했다. 그는 “관을 짜지 말고 승복이면 족하니 수의를 입히지도 말고 3일장도 하지 말고 지체 없이 화장하라”고 주문했다.
 
그제 별세한 구본무 LG 회장이 연명 치료를 하지 않는 존엄사를 선택했다. 남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외부 조문을 받지 않는 가족장을 원했지만 친분 깊은 인사들이 추모의 행렬을 이어 가고 있다. 시간과 돈 낭비가 심한 장례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구 회장의 뜻에 공감하는 이는 많다. 조윤제 주미 대사는 우리의 경조사 문화 탓에 전문가들이 내공을 쌓을 시간이 허비될 뿐만 아니라 학연·지연·인맥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연줄사회의 폐해를 키웠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우리 장례식은 고인을 추억하는 것보다는 좋게 말해 유족을 위로하거나 유족과의 사회적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가 많다. 국내에 거주하는 한 외국인이 ‘영정 앞에서 떠들며 술 마시는 한국의 장례시장 풍경’을 이색적이라고 표현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구 회장의 웰다잉과 작은 장례식이 우리의 장례 문화를 고인과 가족·친지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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