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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대디' 서희경 아버지, 인생2막은 식당으로 '성공'

기자
민국홍 사진 민국홍
[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3)
골프 전문가다. 현재 KPGA(한국남자프로골프협회) 경기위원과 KGA(대한골프협회) 규칙위원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전무를 역임했고 스포츠마케팅회사인 스포티즌 대표이사로 근무하는 등 골프 관련 일을 해왔다. 인생 2막을 시작하면서 골프 인생사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려 한다. <편집자>
 
가정의 달을 맞아 오늘날 한국 여자 골프를 만든 수많은 ‘골프 대디’가 생각났다. 이들은 박세리, 김미현 등 세계적인 수준의 수많은 여자골퍼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공동묘지에서 담력훈련을 받은 박세리 프로는 1998년 US오픈에서 우승해 IMF 금융위기에서 신음하던 한국인의 꽉 막힌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다.
 
이런 골프 대디들이 어떤 동기로 딸을 골프에 입문시켰고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왔으며 그 후 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4년 전 은퇴한 필드의 패션모델 서희경 프로의 아버지 서용환(59)씨를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8년 제주 세인트포골프장에서 열린 '제주 세인트포 레이디스 마스터스' 마지막 라운드 사진이다. 서희경 프로와 그녀의 아버지 서용환 씨. [중앙포토]

2008년 제주 세인트포골프장에서 열린 '제주 세인트포 레이디스 마스터스' 마지막 라운드 사진이다. 서희경 프로와 그녀의 아버지 서용환 씨. [중앙포토]



3년 전부터 경기도 화성서 한식 뷔페 집 운영
서 프로는 국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11승, 미국 LPGA투어에서 1승을 거뒀고 국내외 합쳐 총상금 5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최고 선수였다. 서 프로는 2013년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고 은퇴 후 골프대회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용환씨는 골프 대디 치고는 점잖은 편이지만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하는 개성 있는 인물이다.
 
평생 딸의 교육과 뒷바라지에 전념해오던 그는 3년 전부터 경기도 화성시 동탄 산업단지에 한식 뷔페 집 ‘푸드스토리’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식당을 내는 데 딸의 지원도 컸다.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6일을 운영하는 이 음식점은 하루에 1000여명이 이용하는 큰 식당이다.
 
부페식당 푸드스토리. 화성시 동탄 산업단지에 위치한 이곳은 하루 100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 [사진 민국홍]

부페식당 푸드스토리. 화성시 동탄 산업단지에 위치한 이곳은 하루 100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다. [사진 민국홍]

 
그는 요즘 마음이 편하고 즐겁단다. 딸을 대형스타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언제부터인지 딸의 그늘에 가려 있거나 종속돼 살아왔는데 이제 다시 독립해 자아를 되찾았다. 인생 1막을 자식 교육에 몰두했다면 2막은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는 눈을 뜨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온다고 말한다.
 
그가 이처럼 인생 찬가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인생 1막에서 헌신적으로 해온 자식농사가 성공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왜 자신보다는 딸의 골프 입문에 인생의 승부수를 걸었을까? 학생 시절 185cm의 키에 팔등신 이상의 타고난 체형을 가진 그는 농구선수가 되고 싶어 운동부에 들어갔다가 이를 반대하는 부모님에 끌려 나와 평범한 학생생활을 마쳤고 제대 후 슈퍼마켓을 제법 크게 열긴 했다.
 
그러나 그는 곧 골프에 푹 빠져 매일 연습장과 골프장에 살았고 자기가 못다 한 꿈을 딸을 통해 이루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는 수영 등 운동을 좋아하던 딸을 초등학교 4학년께 골프에 입문시켰고 그 뒤로 헌신적인 골프 대디로 변신했다. 슈퍼마켓은 아내에게 맡기고 딸을 연습장에 나르고 시합에 데려가는 등 오로지 뒷바라지에만 전념했다.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없어졌건만 딸을 최고의 골프선수로 만들고 싶은 욕심에 그 당시 생활이 즐거웠다고 했다.
 
여자 프로골퍼 서희경 선수. 2008년 하이원 골프대회에서 첫 우승을 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중앙포토]

여자 프로골퍼 서희경 선수. 2008년 하이원 골프대회에서 첫 우승을 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중앙포토]

 
서 프로가 2008년 하이원 골프대회에서 첫 우승을 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는데 그때까지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그는 딸과 갈등을 대화로 잘 풀 수 있었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첫 갈등은 서 프로가 1년간 미국 유학을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생이 되면서 한 1년 반 골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인데 그때가 무척 섭섭하고 우울했다고 전했다.
 
두 번째 갈등은 딸이 여자프로골프 1부 투어에 데뷔하면서 그가 캐디백을 메면서 생겼다. 드라이버 샷 이후 그린을 공략할 때 두 사람의 의견이 종종 충돌했다. 그는 대화를 통해 딸의 의사를 존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 원래도 그랬지만 스파르타식보다는 딸의 의사를 존중하는 자율관리를 강화했다. 아무리 자율적이라 해도 연습량이 모자라면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어려운 법이다.
 
서 프로의 첫 우승은 그가 당시 세계적인 선수 반열에 오른 신지애 프로의 여름 연습캠프에 합류하면서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신 프로는 새벽 별 보고 나와 달을 볼 때까지 연습하던 엄청난 노력파였다. 서 프로보다 40~50% 정도 연습량이 많았다. 
 
서 프로가 이를 보고 크게 각성을 하고 노력한 덕분에 직후 첫 우승을 기록하는 등 대활약을 펼치게 된다. 이런 기적은 아버지와 서 프로가 친구 같은 대화를 바탕으로 자신의 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극복했기에 가능했다.


서 프로, 미국 LPGA 동행한 부모에 부담 느껴
서희경 프로가 티샷을 날리고 있다. [중앙포토]

서희경 프로가 티샷을 날리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서 프로는 2011년 미국 LPGA투어에 진출해 US오픈 준우승 등 2위만 3번에 그치는 등 박세리 같은 대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서 프로는 뒷바라지 차 미국으로 동행한 부모님 걱정에 제대로 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다. 문화가 다른 낯선 이국에서 부모님이 식사를 비롯해 제대로 생활하는지 신경 쓰느라 플레이가 잘 안 됐다는 게 서 프로의 훗날 고백이다.
 
아버지 서 씨는 이런 상황을 뒤늦게 깨닫고 많이 후회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골프 대디와 딸은 새로운 인생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골프 대디로서의 임무는 한국투어까지 유효했는데 욕심을 부린 것 같아 많이 반성하고 가슴을 쳤단다. 하지만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서 프로는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린 다음 은퇴를 했고 그의 아버지는 뷔페 음식점의 사장이 됐다.
 
그리스 시인 카바피스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장례식에서 조시로 사용되어 유명해진 ‘이타카’라는 시에서 인생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정을 항해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노래했다. 아마 골프 대디인 서의 목적지도 딸의 세계 랭킹 1위 등극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목적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다른 곳을 향해 즐겁게 항해를 하고 있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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