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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개혁보다 진보·개선에 마음 쏠리니 영락없는 꼰대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46)
가끔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을 만나 식사를 하다 보면 그들의 상사 험담을 듣게 된다. [일러스트=중앙DB]

가끔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을 만나 식사를 하다 보면 그들의 상사 험담을 듣게 된다. [일러스트=중앙DB]

 
가끔 직장생활을 하는 ‘제자’들을 만난다. 정확히는 제자라기보다 강의로 인연을 맺은 젊은이라 해야겠지만, 대학 강단에 선 지 10년째이니 ‘선생님’이라 부르는 직장인이 열 손가락을 훌쩍 넘는다. 그런 이들을 애경사나 전직 격려차 만날 일이 생긴다.
 
만나야 별건 없다. 밥 먹고 소소한 근황이나 주고받는 게 보통이다. 한데 드물게 본인이 다니는 회사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부담이 없는 대신 동종 업계에 근무했으니 말이 통할 거라 믿어서겠다. 한데 보통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는 법이 없다.
 
“팀장이 자기 대학 후배만 챙겨요”, “아래 사람들은 실적 올리려 쥐 잡듯 하면서 윗사람들에겐 입안에 혀처럼 굴어요”, “인사철 앞두고 자주 집을 찾아갔대요”, “돈을 너무 밝혀요”…. 앞뒤 사연을 들어보면 과연 그런 상사가 행세하는 조직이 어떻게 멀쩡히 굴러가는지 의아할 정도다.
 
내 반응이야 우선은 뻔하다. “네가 힘들겠구나. 그러면 안 되는데…”로 시작한다. 거기까지다. 그러고는 내가 만난 선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글을 잘 썼다. 정연한 논리에 매끄러운 문장은 부러울 정도였다. 특종 기사도 잘 캐냈다. 톱기사가 궁하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굵직한 기사를 내놓곤 했다. 올곧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실력을 쌓으려 했다.
 
그뿐만 아니다. 회사나 윗사람에게 바른 소리를 서슴지 않았고, 후배들이 좋은 기사를 쓰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외풍’을 막아줬다. 학연이니 지연이니 하는 걸 일절 따지지 않고 능력과 적성, 희망을 고려해 일을 맡겼으며 설사 능력이 모자란 후배라도 장점을 찾아내 키워줬다. 술도 잘 사서 많은 후배가 인간적 고민까지 털어놓곤 했다.”
 
스승의 말에 실망한 제자에게 꼰대질 
제자에게 충고를 하고 나니 스스로 영락없는 꼰대처럼 느껴졌다. [ 일러스트 = 김회룡 ]

제자에게 충고를 하고 나니 스스로 영락없는 꼰대처럼 느껴졌다. [ 일러스트 = 김회룡 ]

 
듣던 ‘제자’는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때 내가 일러준다. 여태 말한 선배는 여러 선배의 모습을 취합한 이상형이라고. 이쯤 되면 실망과 허탈을 넘어, 무엄하게도 배신감을 나타내는 제자도 있다. 그러면 본격적인 꼰대질을 시작한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상사, 이상적인 조직은 없다. 100점짜리 팀원, 만점 조직원이 없듯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고 반면교사 삼아 네가 100점을 지향하는 상사가 되는 게 더 빠를 거다.”
 
제자는 영 마땅찮은 얼굴이다. ‘스승’의 말씀은 일견 지당하지만 보신주의에 현실 타협이라 여기는 듯하다. 그러면 내가 덧붙인다. “부디 지금의 문제의식, 비판 정신을 잊지 말아라. 가능한 한 오래 초심을 유지하고 실천해 네 후배 누군가에게 롤 모델이 되렴.”
 
이러고는 막잔을 털어 넣는데 소주가 쓰다.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것보다 진보나 개선에 맘이 쏠리니 스스로 영락없는 꼰대 같아서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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