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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몽니’와 ‘틀물레질’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자의반 타의반’ ‘춘래불사춘’ ‘유신본당’…. 김종필(JP) 전 총리의 능란한 수사(修辭)와 조어(造語)야 정평이 나 있지만 그의 빛나는 성과 중 하나가 우리말 ‘몽니’의 발굴이다. 1998년 내각제 개헌 문제를 놓고 김대중 대통령과 갈등을 벌이던 JP의 입에서 이 단어가 나오자 기자들은 급하게 국어사전을 들쳐야 했다.
 
한국과 미국이 이끄는 손을 금방이라도 잡을 것 같던 북한이 갑자기 삐딱하게 나오자 이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약속된 고위급회담을 당일 새벽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북·미 회담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하자 ‘북한의 몽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몽니’는 강자가 약자에게 부리는 것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아보면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내는 심술’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배알 틀린 약자가 강자에게 정면으로 대들 수는 없고, 한번 어깃장을 놓아 본다는 뉘앙스다.
 
6·12 북·미 회담을 앞두고 몰아세우는 미국 앞에서 북한이 어째 순순하다 싶었는데 결국 덜커덩대기 시작했다. 북한의 자존심 세우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점점 강도가 심해진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할 남측 기자 명단 접수를 거부하더니 급기야 탈북 종업원들의 송환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쯤 되면 그저 한번 부려보는 어깃장으로만 여겨도 될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JP는 ‘몽니’와 뜻은 비슷하면서도 어감은 살짝 다른 ‘틀물레질’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1991년 내각제 각서 파동으로 노태우 대통령과 갈등을 빚던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를 꼬집으며 쓴 충청도 사투리다. JP는 훗날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부리는 것이 몽니, 무턱대고 떼를 쓰는 것이 틀물레질”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행동을 ‘몽니’로 봐야 하나, ‘틀물레질’로 봐야 하나.  
 
북한이 특유의 ‘벼랑 끝 협상’을 반복하자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벼랑 끝 협상’이란 말은 미·소 간 냉전 대립이 한창이던 1950년대 미국에서 생겨났다. 당시 대소 강경파였던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은 “벼랑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전쟁에 지게 된다”고 말했다. 64년 미국 공화당의 후보 배리 골드워터도 ‘겁쟁이 전술보다는 벼랑 끝 전술이 낫다’는 구호를 들고 나와 지명전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막상 본선에서는 핵전쟁의 위험을 경고한 민주당의 ‘데이지 걸’ 광고 한 방에 참패해버렸다. 이 말을 만든 미국이 가장 넌덜머리 내는 것이 ‘벼랑 끝 전략’이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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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