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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개성공단 재개 꿈 부풀지만 아직은 ‘살얼음’

이현상의 세상만사 
한반도 긴장 완화로 2016년 2월 폐쇄됐던 개성공단의 재가동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북미 회담의 결과를 지켜봐야 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 [연합뉴스]

한반도 긴장 완화로 2016년 2월 폐쇄됐던 개성공단의 재가동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북미 회담의 결과를 지켜봐야 된다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 [연합뉴스]

봄이다. 언뜻언뜻 불안한 살얼음이 남아있긴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완연한 화해 무드다. 남북한 경제협력(경협)의 기대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은 남북 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남북 간의 긴장 국면에서 두 번의 철수(2013년, 2016년)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도 이런 상징성 때문이었다. 남북 경협이 재개된다면 그 첫 관문은 개성공단의 재가동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개성공단은 조만간 다시 문을 열 수 있을 것인가. 또 문을 연다 해도 과연 과거와 같은 불안을 다시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있는가.

 
봄비치곤 꽤 많은 양이 내렸다 잦아든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건물 7층에 있는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임직원 5명이 상근하는 사무실은 조용했지만 활기가 돌았다. 당장 다음날(18일) 예정된 회원사 전체 워크숍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협회는 4·27 판문점 정상회담 후 곧바로 업종별 대표로 구성된 재가동 관련 태스크포스(TF)의 시동을 걸었다. 워크숍은 보름 남짓 동안 3차례 열렸던 TF 회의 결과를 회원사들에 설명하고 의견을 모으는 자리다. 사무실 한쪽에 놓인 게시판에는 개성공단 재가동을 응원하는 문구가 적힌 접착식 메모지가 가득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운영했던 중소기업홍보관을 찾은 시민들이 붙인 것들이다.
 
협회의 상근 임원인 김서진 상무는 “회원사들의 요구는 한마디로 ‘2106년 2월 철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되자 박근혜 정부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10일 오후 5시 전격적으로 개성공단 철수 결정을 발표했다. 북한은 다음날 공단 내 우리 국민의 ‘즉각 추방령’으로 맞받았다. 입주기업 직원들은 그날 밤 설비·물자·제품 등의 자산을 그대로 둔 채 사실상 몸만 빠져나와야 했다. 철수 당시 개성공단 투자기업은 124곳, 이들 기업을 상대로 영업한 식당·편의점·사무용품점 등 서비스업체가 66곳이었다. 갑자기 철수한 기업들은 부랴부랴 국내외에서 대체 공장을 찾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타격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김 상무는 “회원사들은 개성에 자산이 그대로 남아 있어 형편이 어려워도 사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협회가 지난해 5월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설문에 답한 108개사의 전년도 매출은 그 전해 대비 평균 26.8% 줄었다.
 
박근혜 정부의 갑작스러운 철수 조치에 피해를 본 기업인들의 분노는 여전하다. 피해업체 중 하나인 진글라이더의 송진석 대표(61)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진글라이더는 자체 브랜드로 세계 패러글라이딩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강소 기업이다. 당시 송 대표는 출장 중이던 일본에서 정부의 철수 결정을 들었다.
 
얼마나 피해를 봤나.
“놓고 온 것, 투자한 것 다 합치면 40억원 이상이다. 하지만 이후에 겪었던 영업 손실과 브랜드 가치 훼손까지 따지면 수 백억원에 이른다고 본다. 패러글라이더 시즌은 유럽의 알프스 산맥을 중심으로 3월부터 시작되는데, 70% 정도 생산 비중을 차지하던 개성 공장이 2월 초 문을 닫으면서 제품 공급에 애를 먹었다. 규모를 줄여나가던 중국 공장을 다시 돌렸지만, 인력이 제때 구해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 개성 공장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나.
“전혀 모른다. 공장 철수 후 두 번의 겨울과 장마가 지나갔다. 나일론 위주의 원자재는 그대로 보존돼있다면 다시 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레이저 재단기 같은 정밀 기계는 그대로 쓰기가 힘들지 않겠나.”
 
공단이 재가동된다면 다시 입주할 것인가.
“일단 입주할 것 같다. 인력의 질이나 임금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재발 방지와 보장 대책은 있어야 한다. 2013년 1차 가동 중단 후 재가동 때 남북 당국은 ‘어떠한 정세에도 안전 운영을 보장한다’고 합의했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물거품이 됐다. 이래서야 어떻게 기업인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겠나.”
 
협회가 최근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96%가 재입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공단 재개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보험금 문제다. 입주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다시 들어가려면 이미 받은 보험금 중 3020억원을 ‘토해내야’ 한다. 공단 폐쇄 이후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5833억원의 피해지원금을 받았는데, 이 중 3020억원이 고정자산에 대한 지원금이다. 공단이 재개되면 갚아야 하는 돈이다. 기업인들은 “보험금을 활용해 국내외에서 대체 시설을 확보했지만 아직도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성공단이 조만간 재개된다 하더라도 당장 이 돈을 갚을 형편이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인들은 2년 반 동안 망가진 설비나 건물, 복구 비용 등을 참작해 반납금액을 재산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단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임금과 인력 문제가 대두할 가능성도 크다. 입주기업들이 꼽는 개성공단의 가장 큰 장점은 임금 경쟁력이지만, 공단 재개 후 이런 저임금 기조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북한 경제가 2016년 3.9% 성장률을 보이는 등 악조건 속에서도 의외로 선전한 데다,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 등으로 ‘임금 눈높이’가 올라갔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남북 경협이 활발해져 북한 경제가 10년간 7%의 성장률을 유지한다면 임금은 두 배 이상이 된다. 이럴 경우 개성공단의 장점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해 노동당 간부 사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의 시기와 방법론을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간부 중 일부는 “남측에 유리하게 작성된 공단 운영 합의서를 북측에 유리하게 다시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단 재개 후 진통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개성공단이 한반도 정세의 종속 변수라는 점이다. 북·미정상회담 후에도 미국이 북한 비핵화 완료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나오면 공단 정상화는 ‘부지하세월’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 국토안보부(DHS)는 지난 3월 말 홈페이지 문답 코너에 “북한 국적자가 북한 내에서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든 생산한 제품들은 미국으로 수입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바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도 조심스럽다. 18일 개성공단기업협회 워크숍에서 정부의 방북신청 승인과 공단 중지 방지 대책 수립 요구가 나왔지만, 유창근 재가동 TF단장은 “집행부가 전문가의 진단을 받은 후 정제된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남북 정세에 좌우되는 공단의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남북 관계를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쐐기로 삼겠다며 시작된 개성공단이지만,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은 아직 멀고 험하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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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