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정부 돈 내라하면···" "국회가 입법해 막아달라" 뚝심 구본무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향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국내 4대 기업인 LG그룹은 흔히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형제간 재산 다툼이나 경영권 다툼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재계에서 ‘오너 리스크 무풍지대’로 불리는 이유다. 고 구인회 창업주부터 고 구본무 LG 회장까지 3세대가 이어지는 동안 ‘장자승계원칙’이 철저히 지켜질 만큼 집안 분위기가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영향이 컸다.
 
구본무 LG 회장이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중앙포토]

구본무 LG 회장이 2016년 12월 국회 청문회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중앙포토]

재벌가에서 태어났지만 구 회장의 성품이 소탈하고, 뚝심이 있었던 것도 이런 집안 분위기가 작용했다. 1945년 2월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구 회장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서울 성북구 삼선고를 졸업했고, 연세대 상대 재학 중에 육군 현역으로 군대에 갔다. 재벌가에서 흔히 벌어지는 병역 기피는 없었다.  
 
제대 후 미국 애슐랜드대(경영학 학사), 미국 클리블랜드주립대(경영학 석사)에서 유학한 구 회장은 72년 김태동 전 보건사회부장관의 딸 김영식씨와 결혼했다. 그룹 후계자였지만 현장 경험부터 쌓았다.  
 
75년 LG화학(옛 럭키)에 과장으로 입사해 심사과장‧수출관리부장‧유지총괄본부장을 거치며 실무를 익혔다. 6년 후인 81년 LG전자(옛 금성사) 이사로 승진하며 본격적으로 경영에 발을 담갔다. 입사한지 15년 만인 89년 부회장이 됐고, 다시 5년 후인 95년 LG그룹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5년 1월 LG CI 선포식을 마친 뒤 당시 구자경 회장(왼쪽 세 번째)과 구본무 부회장(왼쪽 첫 번째)이LG트윈타워 표지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 [사진 LG]

1995년 1월 LG CI 선포식을 마친 뒤 당시 구자경 회장(왼쪽 세 번째)과 구본무 부회장(왼쪽 첫 번째)이LG트윈타워 표지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 [사진 LG]

소탈했던 구 회장은 평소 공식적인 행사나 출장을 다닐 때도 수행원(비서) 한 명만 대동했다. 휴일에 개인적인 용무를 볼 때는 혼자 다닐 정도였다. 지난해는 LG그룹 창립 70주년이었지만,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고 매년 여는 시무식에서 70주년을 기념했다.  
 
평소 경영진에게 ‘작은 결혼식’을 장려한 것도 구 회장의 소탈한 성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 구 회장은 자녀들의 결혼식을 간소하게 치뤘다. 2006년 큰 딸 구연경씨의 결혼식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CC에서 친인척만 모여 조촐하게 진행됐다. 2009년 아들 구광모씨의 결혼식에도 가까운 친인척만 모였다.
 
3_1 2004년 3월 LG디스플레이(前 LG필립스 LCD) 파주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구 회장(오른쪽 세번째). [사진 LG]

3_1 2004년 3월 LG디스플레이(前 LG필립스 LCD) 파주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구 회장(오른쪽 세번째). [사진 LG]

주변에서는 구 회장을 ‘온화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구 회장의 온화한 성품은 평소 그의 경영 방식에도 녹아있다. 구 회장은 사람 중심의 경영인 ‘인화’를 추구했다. 회장 취임 이후 22년간 회의에서 호통을 치거나 큰 소리를 내는 경우가 없었다. LG그룹이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최악의 위기’라는 우려가 나왔던 201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LG전자의 한 임원은 “당시 호통을 치지도 않고, 어조 자체가 온화해서 위기의식을 강조해도 임원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는 걱정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온화한 성품이지만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 ‘정도 경영’을 중시했던 구 회장은 평소 임원 회의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도 경영만이 우리의 살 길임을 명시해 달라”(99년 임원 세미나), “어려운 상황이라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봉책이나 편법을 동원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져서는 안된다”(2001년 임원세미나) 같은 당부를 자주 했다.
 
구 회장의 소신 있는 태도는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도 볼 수 있다. ‘미르 재단’에 출연금을 낸 일로 청문회에 참석한 구 회장은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의 “명분만 맞으면 앞으로도 돈 낼 것이냐”는 질책에 “연금이나 불우이웃 돕기 같은 일에는 앞으로도 지원을 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하 의원이 “앞으로 정부에서 (재단에) 돈을 내라고 하면 이런 자리에 또 나올 것인가”고 재차 묻자 “국회가 입법을 해서 막아주십쇼”라고 말했다. 구 회장의 당당한 태도와 답변은 당시 ‘사이다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  
 
구 회장은 정경유착을 의식했는지 평소 정계와는 조금 거리를 뒀다. 구 회장은 정계에 이렇다 할 인맥이 없다. 창업주부터 LG그룹은 삼성‧현대‧효성‧SK 등 국내 주요 기업과 혼사를 맺고 사돈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정계나 관가와는 거의 혼사가 없었다.
 
2010년 7월 LG화학 미국 홀랜드 전기차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구 회장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 LG]

2010년 7월 LG화학 미국 홀랜드 전기차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구 회장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 [사진 LG]

구 회장은 소문난 ‘야구광’이었다. 90년 LG트윈스 창단 당시 구단주였던 구 회장은 평소 야구장을 자주 찾았다. 창단 초 LG트윈스를 이끈 백인천 전 감독은 저서에서 ‘구본무 LG구단주의 통 큰 야구사랑’이라는 장을 별도로 썼다. 구 회장이 LG 선수들에게 두둑한 상여금을 챙겨주며 야구단을 지원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구 회장의 ‘새 사랑’도 유명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집무실에 망원경 설치하고, 여의도 밤섬의 철새를 내려다보는 것을 즐겼다. 탐조(探鳥)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새를 연구하고 보호하는 국내 연구자 모임에 직접 참여, 지원했다. 구 회장이 조류학자들과 만든 도감인 『한국의 새』는 국‧영문으로 출판됐다. 경기도 가평군 유명산, 제주도 서귀포시 등 전국 곳곳에서 자연생태 관찰로와 학습자료시설을 만들고, 이를 산림청 등에 기증했다.
 
2015년 12월 마곡 LG사이언스파크 건설 현장에서 구 회장(가운데)과 하현회 (주)LG 부회장(오른쪽)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LG]

2015년 12월 마곡 LG사이언스파크 건설 현장에서 구 회장(가운데)과 하현회 (주)LG 부회장(오른쪽)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LG]

구 회장은 사회 공헌에도 관심이 많았다. 2015년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보답하겠다”며 직접 지시를 내려 'LG 의인상'을 만들었다. 3년간 77명에게 각각 1000만~5억원의 위로금을 전달하고 있지만, 기념식을 하지 않는다. 수상자가 원하는 장소, 시간을 정해서 소리 소문없이 상패와 상금을 전달한다. 대개 떠들썩한 행사로 진행되는 다른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과는 차별화된 방식이다. 지난해 10월엔 LG 의인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총기 사고 피해자에게 직접 사재를 털어 위로금을 전달했다.  
 
LG그룹 관계자는 “조용하지만 치밀하고 활발했다”며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묵묵히 밀어붙이는 리더십은 ‘재벌 신뢰지수’ 총수부문 1위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