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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할머니 "아웅다웅 억척같이 사는 게 부질없더라"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2)
아침 일찍 대문을 열고 나가니 동네 어르신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다. [사진 송미옥]

아침 일찍 대문을 열고 나가니 동네 어르신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다. [사진 송미옥]

 
아침 일찍 대문을 열고 나가니 구순이 훨씬 넘은 동네 어르신이 운동 삼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다.
 
“식사하셨어요? 일찍 운동 나오셨네요” 하니 “에구, 왜 안 죽는지 모르겠네. 남들 보기 미안타”라며 쑥스러워한다. 만날 때마다 반복하는 레퍼토리라 아예 얼굴을 마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가 더 송구스럽다.


70대는 어르신 축에 못 들어
옛날엔 구순 넘게 살면 장수한다며 동네에서 ‘신선’ 대접을 했다. 모든 사람의 존경과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고령화 사회다. 자연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수가 부쩍 늘었다. 우리 동네만 해도 70은 어르신 축에 끼지도 못하고 80이 넘어야 노인 회관에 가서 어울릴 수 있다.
 
우리 동네를 지나 고개 하나 넘어가면 나이 드신 어른이 많이 사는 동네가 있다. 거기엔 도로에도 ‘노인 보호구역’이라는 글이 큼지막하게 쓰여있고 또 걸림 턱이 세 개나 있어 차가 빨리 달리지 못한다. 차를 모는 젊은 사람은 그 길을 지날 때마다 투덜거린다. 나는 그 길이 답답하지 않고 괜찮은 걸 보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 보다.
 
며칠 전 그쪽으로 갈 일이 있었다. 동네에 들어가 구순 어르신이 사는 두 집을 방문했다. 몇 년 전 내가 돌봄 일을 했던 분들이라 그쪽을 지나갈 때면 들러보게 된다. 한집은 몇 년 동안 누워만 있는 와상환자다. 아직 별 진전도, 차도도 없이 그냥 그대로 누워 있다. 얼마 전 방문했을 때만 해도 머리를 늘 단발로 단정하게 하고 있던 분인데, 그날은 이발을 했다.
 
“에헤이, 어무이 머리를 누가 이래 이발을 해놨을까잉~ 처녀 같은 인물 다 베맀다. 호호” 하고 농담했더니 그 말을 하자마자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당신 머리를 자른 뒤 거울을 볼 때마다 너무너무 속이 상했단다. 아무도 아는 척 안 해줘 머리를 잘못 잘랐다고 말하니 자식은 오히려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당신 마음을 무시했다고 서러워했다. 치매가 아닌 이상 살아있는 동안은 모두 정상인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나도 자식이면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목욕할 때 머리를 감고 손질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드니 짧게 잘라야 하는 건 맞지만 어르신이 자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저런 대화를 하니 마음이 풀려 오히려 머리를 짧게 잘라서 좋다고 한다.
 

"내가 나이 들어보니 억척같이 사는 게 다 부질없는 거야. 젊을 때 좋은 음식 찾아먹고 세상 풍경 많이 보고 다니게." [사진 pixabay]

 
두 번째 방문한 댁은 100세가 거의 돼 가는 어르신이다. 허리가 안 좋아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한다. 나를 보자마자 “왜 안 죽노? 사는 기 지겹 데이” 하면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내어오며 이런 ‘귀신’을 찾아와주니 정말 고맙다고 손을 잡는다.
 
누군가는 그만하면 죽어도 될 만큼 살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나 또한 그 나이가 되어 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죽음만큼 두려운 것이 또 있겠는가. 나이 든 분한테는 죽음보다 더 힘든 것이 아픔일 것이다. 그 어르신은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어도 안 죽으니까 아픔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다.
 
간 김에 머리 염색을 해준다고 하니 까만색 말고 조금 연한 색으로 해달란다. 그게 더 멋스럽게 보인단다. “어무이, 영감 생깃제? 아무래도 수상햐” 하니 “영감이라도 생겨 놀아보고 죽으면 한이나 없겠네” 하며 농담을 한다.


100세 다 된 할머니의 충고
"이보게, 내가 나이 들어보니 아웅다웅 억척같이 사는 게 다 부질없는 거야. 일 많이 해 몸 상하지 말고 먹고 살 만큼만 적당하게 하게. 젊을 때 좋은 음식 찾아먹고 세상 풍경 많이 보고 다니게. 이 빠지고 다리 아프면 다 무용지물이야. 연애도 사랑도 많이 해보게. 그리고 머리가 되거든 공부도 많이 하게.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도 뭐 하나 ‘이거다’ 하고 해 본 게 없으니 너무 허무해. 돈도 내가 써야 내 돈이지 돈 벌어서 모아놓고 써보지도 못하고 내 돈은 지금 요양보호사가 다 쓰고 돌아다닌다네”라고 말한다. 
 
요양보호사를 심부름 보내며 하는 말씀이다. “자식 만들어 놓은 거? 그건 기본 아닌가?”라고 덧붙인다. 뵐 때마다 이 말을 하신다.
 
외출했다가 들어와 대문을 닫으려니 아침에 만난 어르신이 또 동네 한 바퀴 돌고 있다. 모시고 돌담에 앉아 사과 주스 한잔 대접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무이요, 나이 든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고요. 몸 관리 못 하고 누워 계시면 그땐 부끄러운기라요. 나이 들어서는 발바닥이랑 땅바닥이랑 딱 붙어서 사뿐사뿐 어무이 같이 서서 걸어 다니시기만 해도 멋지게 사는 기라요. 다른 욕심은 버리시고 오전 오후 힘 날 때마다 동네 한 바퀴 도시소. 이제까지 살았는데 100세까지 사셔서 대통령 선물도 받아보고 가셔야지요. 꼭 운동하쇼”라고 하니 소녀같이 입을 가리며 “호호” 웃는다.
 
하! 그러는 나도 정말이지 운동을 좀 해야 하는데…. 부른 배를 끌어안고 사돈 남 말 하고 있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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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