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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말고 알아서 행복하세요"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33)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2016년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에는 시니어 어벤저스라 불리는 배우(김영옥,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등)들이 총출동해 노년의 삶을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마지막 방송이 나간 후 노희경 작가는 블로그에서 이런 소감을 적었는데요.  
 
"작가가 되어서 이렇게 잔인해도 되나. 드라마의 결말을 쓰며, 내 잔인함에 내가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포장해도 이 드라마의 결론은, 부모님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살기 바빠요, 그리니 당신들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에요, 정 떼세요, 서운해하지 마세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쓰는 내내 끝난 후에도 참 많이 미안했다."
 
항상 받기만 하는 자식들인데 이제 살기 바쁘다고 부모에게 알아서 행복해지라는… 저 글을 보며(부모님껜 죄송하지만) 마치 내 속마음을 들킨 양 뜨끔했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사실 노년의 부부가 상대방이 떠난 후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지만, 저는 어쩐지 자식의 입장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아내 트루디 역을 맡은 하넬로레 엘스너(왼쪽)와 남편 루디 역을 맡은 엘마 베퍼.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아내 트루디 역을 맡은 하넬로레 엘스너(왼쪽)와 남편 루디 역을 맡은 엘마 베퍼.

 
남편 루디(엘마 베퍼 분)와 함께 일본 후지산의 벚꽃을 보고 싶었다고 독백하던 아내 트루디(하넬로레 엘스너 분)는 남편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멀리 산다는 핑계로 한동안 보지 못했던 자식들을 볼 겸 여행을 제안하죠.
 
베를린에 도착한 부부는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가 사는 집으로 갑니다. 반가움도 잠시 아이들은 각자 게임에 빠져있고, 아들 내외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딸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죠. “왜 온 거야? 시간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니 시간을 내 시내 구경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죠. 하지만 부모는 이미 너무 커버린 자식들이, 자식은 이제 귀찮아진 부모와 같이 있는 시간이 버겁습니다. 어색하기도 하고요. 부부는 자식에게 폐 끼치는 것 같은 느낌에 자리를 뜨죠.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보며 화를 냅니다. 그러곤 돌아서서 죄책감에 눈물짓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렇게밖에 말하지 못하는지...
 
루디와 트루디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큰 아들 내외, 둘째 딸, 손녀와 손자.

루디와 트루디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큰 아들 내외, 둘째 딸, 손녀와 손자.

 
이들은 베를린에서 발트 해 어느 호텔로 떠나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트루디가 먼저 죽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또 가족이 모이게 됩니다. 도쿄에 거주하던 막내아들까지요.
 
장례식에서 자식들은 이제 와 자신이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음에 눈물 흘립니다. 그러면서 한편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부담을 느끼죠. 나는 바쁘고, 엄마는 이제 없고,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쩌지?
 
트루디의 장례식 후, 루디가 트루디의 부토 의상을 품에 안은 채 흐느끼고 있다.

트루디의 장례식 후, 루디가 트루디의 부토 의상을 품에 안은 채 흐느끼고 있다.

 
어떠신가요? 여기까지 보셨다면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뉠 겁니다. '솔직히 조금(아니 많이) 찔린다는 반응'과 '저런 불효막심한 것들이 다 있나'라는 반응이겠죠. 후자를 생각하셨다면 정말 부모님께 잘하는 효자·효녀일 겁니다. 
 
하지만 저 같은 대부분의 자식은 전자일 거라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야지 떠난 뒤에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일상 속에서 그들을 챙길 여유조차 없죠. 앞에 소개해드린 노희경 작가의 글처럼, 그저 그들이 '알아서' 행복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참 이기적이죠?
 
루디가 일본의 한 공원에서 만난 소녀 유(아야 이리즈키 분)에게 부토를 배우고 있다.

루디가 일본의 한 공원에서 만난 소녀 유(아야 이리즈키 분)에게 부토를 배우고 있다.

 
아내의 장례를 집에 돌아온 루디는 아내가 평소 가고 싶어했지만 은퇴 후 가자고 미뤄뒀던(막내아들이 있는) 일본에 가기로 하죠. 아들은 바쁘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루디는 아내의 옷을 입고 일본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인 셈이죠.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부토 공연을 하는 소녀 유(아야 이리즈키 분)를 만나게 됩니다. 죽은 엄마와 함께 춤을 춘다는 그녀를 보며 루디는 아내를 떠올리게 되죠. 아내도 부토를 좋아했거든요.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매일 공원에서 홀로 공연을 하는 유를 보며 그는 비로소 아내가 왜 그렇게 부토 공연을 좋아했는지 이해하려 하죠. 
용어사전 > 부토
일본의 전통 예술인 노[能]와 가부키[歌舞伎]가 서양의 현대무용과 만나 탄생한 무용의 한 장르이다. 아방가르드의 면모를 띠어 문화적 화려함을 멀리하면서 징그럽고 흉물스러운 육체로 춤을 춘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만이 미가 아니라는 무용 의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부토는 무용수들의 얼굴을 하얗게 칠해 몰개성을 나타내며 주로 죽음이란 주제를 다뤘는데, ‘암흑의 춤’이나 ‘죽음의 춤’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창시자는 히지카타 다쓰미와 오노 가즈오로 알려져 있다.
 
루디가 후지산이 보이는 호숫가에서 부토 분장을 하고 아내와 함께 부토를 추고 있다.

루디가 후지산이 보이는 호숫가에서 부토 분장을 하고 아내와 함께 부토를 추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이 인상 깊습니다. 루디와 유는 트루디가 평소 보고 싶어했던 후지산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날씨가 좋아지길 기대합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새벽, 루디는 부토 분장을 하고 후지산이 보이는 곳에 나가 춤을 춥니다. 이때 아내의 영혼과 함께해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처연하면서도 쓸쓸한 모습과 대비되는 후지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합니다.
 
부부라면 부부대로, 자식이라면 자식대로 공감할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영화의 원제는 체리 블러섬(Cherry Blossoms), 벚꽃인데요. 봄이 끝나가는 끝자락에 어울릴만한 영화이니 감상해보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포스터.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포스터.

감독·각본: 도리스 도리에
출연: 엘마 베퍼, 하넬로레 엘스너, 아야 이리즈키
촬영: 하노 렌츠
음악: 클라우스 반처
장르: 로맨스/멜로/드라마
상영시간: 127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개봉일: 2009년 2월 19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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