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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합의땐 한국모델, 안하면…" 트럼프의 당근과 채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7일(현지시간) 옌스 스톨렌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10분 가량 작정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7일(현지시간) 옌스 스톨렌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10분 가량 작정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비핵화에 합의하면 한국 모델, 합의하지 않으면 리비아 모델로 갈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북한에 던진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트럼프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핵 폐기 방안으로 밝혔던 '리비아 모델'을 당장 북한에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강경모드로 급선회한 데 따른 달래기 발언이다.
그는 "(볼턴에 의해) 언급된 리비아 모델은 (북한과는) 매우 다른 모델"이라고 잘라 말했다. '선 핵폐기, 후 보상 및 관계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리비아 모델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을 의식한 것이다. 발언 말미에는 볼턴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그건 문제가 생겼을 때를 가정한 상황"이라고 북한을 의식한 해명까지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초강경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초강경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번영과 체제보장' 약속도 했다. "미국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안전보장을 제공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기꺼이 할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많은 일들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김정은)도 기꺼이 많은 것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처음으로 '한국 모델'이란 단어를 썼다. 트럼프는 "산업적 측면에서 한국 모델이 될 것"이라며 "김정은은 그의 나라에 남아 나라를 운영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매우 잘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엄청나게 근면한 민족"이라고도 했다.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을 언급하면서 북한도 비핵화에 합의만 하면 강력하게 김정은 체제를 보호하고, 또 북한의 경제적 번영을 지원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트럼프가 이날 부정한 리비아 방식은 볼턴이 얘기했던 리비아 모델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볼턴은 핵무기 폐기를 함에 있어 리비아의 경우처럼 기존 핵무기를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옮기고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완전히 제거해야만 진정한 비핵화란 점을 강조했다. 그래야만 경제적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비핵화의 프로세스, 즉 방법론으로 '리비아 모델'을 든 것이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가 언급한 리비아 모델은 핵 폐기 방식과는 전혀 무관하게 "왜 카다피가 붕괴했는가", 즉 체제 붕괴에 대한 것이었다. 
2010년 10월 당시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앞줄 가운데)가 아프리카-아랍 정상회담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듬해인 2011년 카다피 정권은 붕괴되고 카다피는 살해당했다.

2010년 10월 당시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앞줄 가운데)가 아프리카-아랍 정상회담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듬해인 2011년 카다피 정권은 붕괴되고 카다피는 살해당했다.

"리비아에서 우리는 그 나라를 초토화했다. 카다피를 지키는 합의가 없었다. 우리는 '오, 우리가 당신을 보호하겠다. 우리가 군사력을 제공하겠다. 이들 모든 것을 주겠다'고 카다피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서 그를 학살했다. 우리는 이라크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는 말을 강조했다. 
리비아, 이라크는 미국과 어떠한 '합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살(decimation)됐지만,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에 '합의'하면 전혀 다른 모델이 된다는 설명인 것이다. 
볼턴이 언급한 '리비아 모델'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인지, 일부러 의미를 흐리면서 하여간 "리비아 모델은 아니다"는 말을 하려 했던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시점에 그 말을 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트럼프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독재자 김정은에게 계속 권좌에 남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킨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어찌됐건 이날 트럼프가 옌스 스톨렌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작정한 듯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히 답하며 북한에 '당근'을 던진 것은 그만큼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북한이 협상을 깨거나, 혹은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 "그 모델(리비아 모델)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정은에게 "비핵화 합의를 안 하면 너도 카다피처럼 될 수 있어"란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회담 성사를 위해 리비아 모델을 부정하면서, 늘상 뒷부분에 '단서'를 하나 붙이는 트럼프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입장에선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고, 나아가 북한 내 강경론자들이 '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근거가 될 수 있다"(무기통제협회 킹스턴 레이프 비확산 전문가)는 지적도 제기된다.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위험한 발언"(WP)이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태도변화에 ‘시진핑 배후론’을 언급했다. [APㆍ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태도변화에 ‘시진핑 배후론’을 언급했다. [APㆍAFP=연합뉴스]

트럼프는 또 "김정은이 시진핑 주석과 갑작스레 두 번째 회동을 한 후 크게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김정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태도돌변에 대해 '시진핑 배후론'을 제기한 것이다.  
무역 문제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활용해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과 한국에 강경한 대응을 취하도록 '조종'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에 대한 성토와 함께 "그(시진핑)가 김정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 말은 중국의 시 주석이 김정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중국의 전략을 거꾸로 뒤집어 북·미 정상회담 문제를 풀기 위해 대중 무역 압력을 지렛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수 있다.  
 
한편 이날 트럼프의 북한 관련 발언들은 볼턴 보좌관에게 "한번만 더 불필요한 발언을 하면 경질할 것"이란 신호를 보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입장에선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볼턴의 발언이 못마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볼턴 역시 소신이 뚜렷하고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비해 핵 문제에 정통한 만큼 기 싸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게 지배적 관측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서울=임주리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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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