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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등산사] 혼수상태 열흘…열 손가락이 사라졌다

“27살이었던 그가 28살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1991년 5월 22일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봄 등반시즌의 절정기였다. 김홍빈은 5500m 지점의 텐트 안에서 의식이 흐릿했다.  
김홍빈(오른쪽)과 셰르파가 2018년 5월 13일 안나푸르나에 오른 뒤 포즈를 쥐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김홍빈(오른쪽)과 셰르파가 2018년 5월 13일 안나푸르나에 오른 뒤 포즈를 쥐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운명의 산, 데날리
데날리(Denali)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높은 곳’이라며 붙인 이름이다. 100년 넘게 공식 명칭 ‘매킨리(Mckinley)’로 불리다 2015년에 데날리로 돌아갔다. 데날리는 북극점에 가까워 공기층이 얇고 건조하다. 히말라야의 산들에 비하면 낮지만, 고소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10명 중 3명 정도만 정상에 오를 뿐이다.
 

김홍빈은 이미 해외 원정 등반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1991년에 데날리 원정대에 포함됐다. 그런데 비자발급이 예정보다 2주 늦어졌다. 이미 원정대는 츨국한 뒤였다. 김홍빈은 단독등반을 결심했다. 크램폰과 스틱, 소량의 카라비너·단팥죽·비스킷. 그게 그의 짐 전부였다. 쌀은 없었다. 단팥죽과 비스킷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식량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김홍빈은 데날리 마지막 구간에서 버티지 못하고 두 번이나 돌아섰다. 그리고 탈진과 고소로 쓰러졌다. 운명의 신은 그의 손끝에 와 있었다. 
해발 6194m로 북미 최고봉인 데날리. 김홍빈은 1991년 이 산에서 운명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중앙포토]

해발 6194m로 북미 최고봉인 데날리. 김홍빈은 1991년 이 산에서 운명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중앙포토]

 

데날리 구조대
5월 22일, 데날리 레인저(Ranger) 로저 로빈슨(당시 37세)은 순찰을 돌고 있었다. 레인저 캠프에 도착했을 때, 그는 누군가 5500m 지점에서 위험에 처해 있다는 무전을 받았다. 한국인이라고 했다. 데날리 레인저들은 구조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4200m 지점까지 진출했다.  
 
구조대는 김홍빈을 5200m에 있는 캠프까지 내려야 했다. 근처에 두 팀의 미국 원정대가 있었다. 구조대와 미국 원정대가 뭉치면 구조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김이 산소에 반응했다.”  
희소식이 날아왔다. 하지만 김홍빈은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 
 
"상태가 심각하다 빨리 구조하라" 
헬기 구조가 논의됐지만 날씨 변덕이 발목을 잡았다. 지상을 통한 구조만이 가능했다.  

“김의 상태가 심각하다. 빠른 구조가 절실하다.”  

다른 원정대 의료진이 무전을 날렸다. 
구름이 끼었다. 하지가 한 달 앞이고 북극과 가까워, 데날리에는 해가 9시까지는 떠있었다. 해가 지면 엎친데 덮친 격이 될 것이었다. 구조대는 4700m까지 진출했다. 해가 지면서 돌풍이 몰아쳤다. 희망의 빛이 순간 사그라졌다.
1991년 데날리 등정에 나선 김홍빈이 구조되고 있다. [사진=데날리 공원]

1991년 데날리 등정에 나선 김홍빈이 구조되고 있다. [사진=데날리 공원]

알래스카 주방위공군 9명이 4200m 지점에 있었다. 이들은 며칠간의 훈련으로 고소에 완벽히 적응하고 있었다. 이들의 미션(mission)은 김홍빈 구조로 바뀌었다. 5200m 캠프 구조함에는 180m에 이르는 로프가 있었다. 김홍빈을 살릴 희망이었다. 또 다른 빛이 보였다. 김홍빈이 물과 음식을 섭취했다는 것이다. 
 
공군팀은이 4800m 지점까지 진출했을 때, 다른 한국 산악인을 만났다. 그는 심각한 뇌수종 상태로,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공군팀은 전력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북미 최고봉 데날리에서 열손가락을 잃은 김홍빈이 암벽 등반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미 최고봉 데날리에서 열손가락을 잃은 김홍빈이 암벽 등반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통신 끊긴 구조대
“여기는 레인저, 공군 나와라. 공군 나와라. 안 들리나.”

구조대와 공군팀의 교신이 끊겼다. 두 번, 세 번, 네 번…. 응답이 없었다. 로빈슨은 초조했다. 꽤 오랜 시간 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러다 바람 사이로 공군팀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구조대와 150m 정도의 거리로, 오른쪽 길로 새고 있었다. 그들은 절벽으로 떨어지거나 크레바스에 빠질 게 분명했다. 통신은 여전히 불통이었다. 구조대는 부리나케 그들을 따라잡으려 50도의 슬로프를 거침없이 등반했다.
  
공군팀은 다행히 슬로프를 올라서는 구조대를 발견했다. 그들은 이미 들것(썰매형)에 고정된 김홍빈을 데리고 하산하고 있었다. 김홍빈은 침낭 속에 있었다. 

 
나무토막처럼 굳은 두 손 
로빈슨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의 두 팔은 밖으로 노출된 상태였다. 그런 급경사 슬로프에서 들것의 줄을 푼 뒤 김홍빈의 몸을 바로 잡기는 어려웠다. 김의 몸이 슬로프의 각도를 못 이기고 추락할 수 있었다. 그리고…27살이었던 그가 28살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김홍빈이 들것에 단단히 묶이면서 혈액순환이 안 돼 왼팔이 얼었고, 오른손으로 왼팔을 감싸려다가 장갑이 벗겨져 오른손까지 치명상을 입었다는 증언도 있다.

2018년 5월 13일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한 김홍빈이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2018년 5월 13일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한 김홍빈이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여하튼 김홍빈은 계속 신음을 토해냈다. 슬로프 밑의 구조대는 들것을 안전하게 놓을 땅을 다졌다. 자정이 넘었다. 진행은 수월치 않았다. 미끄럼 타듯 갈 수 없었다. 구조대가 한 발 옮기면 그만큼만 김홍빈을 실은 들것이 이동했다.  
 

다져놓은 땅에 도착하자마자 김홍빈의 상태를 살피고 온몸을 침낭에 넣었다. 구조대는 망설였다. 여기서 비박하며 날씨가 좋아질 것을 기다릴지, 아니면 4200m의 캠프까지 그대로 내려갈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구조대는 150m 이동할 때마다 김홍빈의 상태를 살펴봤다. 잘 버티고 있었다.
 

새벽 4시경, 날이 개일 조짐을 보였다. 잘하면 김홍빈을 4200m 캠프에서 헬기에 실어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구조대 본부와 연락이 닿았다. 헬기는 5시까지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김홍빈의 폐에는 물이 가득했다. 양손도 심각했다. 당시 구조대는 “홍빈의 손은 나무처럼 딱딱했다”고 했다.  
 

구조대 헬기는 조종사 비행시간 제한에 걸려 오지 못했다. 대안은 군용 헬기를 부르는 것이었다. 공군팀도, 구조대도 앵커리지의 공군기지에 전화를 걸었다. 오전 7시, 헬기가 날아왔다.
“여러 통의 다급한 전화가 응급상황임을 절실하게 보여줬을 것”이라고 로빈슨이 말했다.
 
몸의 2㎏이 사라졌다
앵커리지 프로비던스 병원으로 날아간 김홍빈은 열흘 만에 깨어났다. 모든 손가락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두 달간 7번의 수술을 했다. 극심한 고통에, 차라리 절단해 달라고 애원했다. 병원에서는 엄지손톱만한 손가락을 만들어줬다. 물건 잡을 때 쓰라는 것이었다. 몸의 2kg이 사라졌다. 
 
김홍빈은 골프장에 취직했고 포크레인을 몰았다. 하지만 손가락이 없다는 이유로 포크레인 면허 응시 자격조차 받지 못했다.
김홍빈(오른쪽)과 셰르파가 2018년 5월 13일 안나푸르나에 오른 뒤 포즈를 쥐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김홍빈(오른쪽)과 셰르파가 2018년 5월 13일 안나푸르나에 오른 뒤 포즈를 쥐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7년 뒤 결국 데날리 등정…아직 안 끝났다
1998년 등반시즌. 누군가 데날리 레인저 본부로 들어섰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로빈슨을 안았다. 깜짝 놀란 로빈슨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김홍빈이었다. 그의 모든 손가락은 없었다. 그가 등반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에 레인저들은 더 놀랐다. 김홍빈은 며칠 뒤 데날리 6194m 정상에 올랐다.  

 
김홍빈(53)은 2009년에 남극 빈슨매시프(4897m)를 오르며 7대륙 최고봉에 모두 올랐다. 2018년 5월 13일(현지시간)에는 자신의 열두 번째 8000m급 등반에 성공했다. 안나푸르나(8091m)였다. 그가 열 손가락을 잃은 뒤 열 번째 오른 14좌였다. 그는 데날리 사고 전에 에베레스트(8848m)와  낭가파르바트(8124m)에 올랐다. 이제 브로드피크(8047m)와 가셔브룸(8080m)만 남았다. 일각에서는 김홍빈이 올해 14좌 완등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내년을 보겠다”고 밝혔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일상등산사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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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