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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의 선택’ 도운 의료 빅데이터, 반도체의 20배 시장

빅데이터가 경쟁력이다 <상> 
2013년 유전자 검사 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줄이기 위해 절제수술 받은 앤젤리나 졸리. [중앙포토]

2013년 유전자 검사 후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줄이기 위해 절제수술 받은 앤젤리나 졸리. [중앙포토]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43)는 가슴이 없다. 유방암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수술을 선택했다. 2013년 유전자 검사에서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이모를 유방암으로 잃었던 졸리는 ‘브라카1(BRCA1)’이란 유전자의 변이를 확인했다. 수술 후 졸리는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서 5%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후 ‘졸리 효과’로 전 세계에서 여성들의 브라카 유전자 검사가 크게 늘었다.
 
졸리의 선택은 ‘유전자 빅데이터’ 덕분에 가능했다. 과정은 이렇다. 먼저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방대한 유전자 데이터(빅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중 유전자 변이로 생길 수 있는 질환의 자료를 뽑아낸다. 이어 개인의 의료기록과 가족력, 의학 보고서, 치료방법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이렇게 하면 어떤 부분에 어떤 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지 상당 부분 예측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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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전 세계 의료·건강관리 시장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ICBM’으로 요약되는 첨단 기술의 힘이다. ▶사물인터넷(I)으로 수집한 자료를 ▶클라우드(C)에 저장한 다음 ▶빅데이터(B) 분석으로 결과를 찾아내고 ▶모바일(M)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경쟁력의 핵심은 양질의 빅데이터 확보와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 개발이다.
 
다국적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는 전 세계 건강관리 시장이 2020년 8조7346억 달러(약 9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약 4500억 달러)과 비교해 20배 가까이 큰 규모다.
 
핀란드 헬싱키대 분자의학연구소 에서 지놈 정보 빅데이터를 위해 기증받은 인체조직 샘플(아래 사진)을 연구하고 있다. 핀란드는 인구의 10%인 50만 명의 지놈 정보를 빅데이터로 구축하 고 있다. [사진 헬싱키대]

핀란드 헬싱키대 분자의학연구소 에서 지놈 정보 빅데이터를 위해 기증받은 인체조직 샘플(아래 사진)을 연구하고 있다. 핀란드는 인구의 10%인 50만 명의 지놈 정보를 빅데이터로 구축하 고 있다. [사진 헬싱키대]

거대한 의료·건강관리 시장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핀란드는 ‘건강 및 사회적 데이터의 2차적 활용을 위한 특별법’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핀란드 국민 50만 명(인구의 약 10%)의 ‘지놈(genome·유전체)’ 정보를 빅데이터로 구축하는 ‘핀젠(FinnGen) 프로젝트’를 위해서다.  
 
인체조직 샘플

인체조직 샘플

지놈 빅데이터를 통해 암이나 희귀한 유전성 질환의 원인과 특징을 찾아내고 신약 개발과 의료산업을 혁신하는 게 목표다. 의료시장에서 대기업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동반 성장하는 ‘혁신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포함됐다.
 
제약업체 머크의 핀란드 법인 페트리 레토 정책실장은 “제약사의 큰 관심은 유전자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암이나 치매 등 유전적 질환의 원인을 찾는 것”이라며 “핀란드는 우수한 빅데이터, 효율적인 의료·연구 인프라, 시민들의 협조 등에서 앞서 가는 나라”라고 말했다.
 
김윤미 주한 핀란드 무역대표부 대표는 “핀젠 프로젝트에는 외국 제약회사들도 참여한다”며 "한국 기업들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2022년까지 100만 명의 생애주기에 걸친 의료·유전자·생체 정보(코호트)를 수집하는 ‘정밀의료 이니셔티브(PMI)’를 추진 중이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 대해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개인정보가 완벽하게 보호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암호화하는 방식으로 보안 수준을 최대한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는 전체 거주자의 지놈 정보를 빅데이터로 구축하는 ‘두바이 지노믹스’ 계획을 발표했다. 대상자는 외국인을 포함해 300만 명에 달한다.
 
국내에선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월 6개 병원에서 시범사업을 하는 ‘바이오·헬스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6일 ‘분산형 바이오헬스 빅데이터 사업단’의 출범식을 했다. 하지만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지 않고 각 병원에 분산 보관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빅데이터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데이터의 활용이다. 개인정보 관련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산업부는 “병원의 데이터는 현재와 동일하게 병원 안에서 보호되고, 통계적 분석 결과만 병원 밖에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핀란드나 미국 같은 ‘유전자 빅데이터’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 유전체(지놈·genome)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합성해 만든 용어. 특정 생명체가 갖고 있는 유전 정보의 총합을 뜻한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 정보를 염색체라는 곳에 저장하는데 사람의 경우 부모에게서 절반씩 물려받은 23쌍, 46개의 염색체가 있다. 각각의 염색체에는 DNA 가닥이 촘촘하게 감겨 있고, DNA 가닥에는 네 가지 염기(A·G·C·T)가 서로 결합해 이어져 있다. 

 
헬싱키=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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