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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바람의 옷’으로 세계 홀린 색의 마술사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 세계 패션 무대에 한복을 올려 색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중앙포토]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 세계 패션 무대에 한복을 올려 색의 마술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중앙포토]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이자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인 이영희씨가 17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82세.
 
고인은 외국에서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모노)’라고 통하던 우리 옷을 한복(Hanbok)이라는 제 이름으로 불리게 한 주인공이다. “패션 디자인의 눈높이가 가장 높다는 파리에서 이영희의 ‘바람의 옷’ 전시 현지 평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을 한국의 속담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에 만들어낸 마술사 이영희.”(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바람의 옷’은 1994년 파리 쇼에 등장한 고인의 한복을 보고 당시 르몽드지 패션 수석기자였던 로랑스 베나임이 ‘바람을 옷으로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이라고 표현했던 말이다. 고인을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띄운 말인 동시에 보수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평생을 자유로운 디자이너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말이다.
 
94년 파리 무대에서 저고리 없이 치마로만 이뤄진 드레스형 한복들을 선보인 후 고인은 ‘국적 없는 옷’ ‘전통 한복이 아니다’ 등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때 고인에게 “옷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위로해준 사람은 전통복식학자였던 고 석주선 박사였다. 고인이 아이들의 과외비라도 벌어볼까 41세에 부업으로 한복 만들기를 시작하면서부터 평생을 스승으로 모셨던 분이다. 2015년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석 선생님의 믿음과 ‘바람의 옷’, 그리고 파리 무대로의 도전이 아니었다면 내 상상력은 여전히 전통한복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파리 패션 쇼 이후 고인은 전 세계를 종횡무진 했다. 2000년 뉴욕 카네기홀 패션쇼 개최, 2004년 뉴욕 맨해튼 ‘이영희 한국 박물관’ 개장, 2007년 워싱턴 스미소니언 역사박물관 12벌의 한복 영구전시, 2010년 파리 오트 쿠튀르 쇼. 2008년에는 구글 아티스트 캠페인 ‘세계 60인의 아티스트’로 선정됐고, 2015년에는 동대문 DDP에서 ‘한복의 세계화’ 40년을 집대성한 ‘이영희 전-바람, 바램’ 전시를 개최했다.
 
고인은 ‘색의 마술사’라고도 불렸다. 늘 “한복은 우리 자연에서 더욱 아름답다”며 한국의 산천을 닮은 고운 빛깔의 옷들을 선보였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때 각국 정상들에게 한국의 하늘과 바다, 땅, 기와 색을 띤 두루마기를 선물했고, 2011년에는 울릉도와 독도에서 최초의 한복 화보 촬영과 패션쇼를 진행했다. 그 이전에는 배우 이영애와 함께 북한 금강산을 찾아 한복 패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평창겨울올림픽 오프닝 공연 의상도 선보였다.
 
중앙SUNDAY와의 인터뷰 마지막에서 고인은 “외손주 며느리(전지현)에게 선물할 배냇저고리를 이미 만들어뒀다”며 할머니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보이면서도 “죽기 하루 전까지 쇼를 할 것”이라며 거장의 다짐을 보였었다. 한복의 세계화·현대화를 이끌었던 1세대 디자이너이자 이영희. ‘바람의 옷’과 함께 영원히 하늘로 떠나버린 그를 우리는 천상 ‘한복쟁이’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02-3410-6917). 유족은 남편 이종협, 장남 이선우, 차남 용우, 장녀 정우. 며느리 연지은, 사위 최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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