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카뮈를 만난 조종사들, 자유로운 삶을 얻었다

독서 동아리 ‘지우’ 회원들. 앞줄 왼쪽부터 김상경·이종성·김진수, 뒷줄 왼쪽부터 김상윤·전종득·박은경·진주현·박연주·여현동·박지승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서 동아리 ‘지우’ 회원들. 앞줄 왼쪽부터 김상경·이종성·김진수, 뒷줄 왼쪽부터 김상윤·전종득·박은경·진주현·박연주·여현동·박지승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떻게 읽어야 할지 참 난감했다. 다섯 번을 읽었다.”
 
“우리 주변에 이방인 같은 사람이 너무 많아선지 무척 쉽게 읽었다. 다섯 번 읽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되는 대로 살아가는 뫼르소는 소설 출간 당시에는 정말 센세이셔널했겠다. 그러니까 고전이겠지.”
 
독서토론은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의견 대립이 간혹 있었지만 아슬아슬하지는 않았다. 곧 부드럽게 넘어갔다. 책을 안 읽어와도, 와서 아무 말하지 않고 앉아만 있어도 상관 없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라고 했다. 그래서 안 빠지고 나온다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지난 14일 아시아나 항공의 독서 동아리 ‘지우’의 월례 모임 현장이다. ‘지혜의 친구’라는 뜻의 지우(智友)는 2015년 사내 독서스쿨로 출발했다. 회사가 지향하는 인재상(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 진지하고 적극적인 사람) 구축을 위해 교육 수요조사를 했더니 독서 프로그램을 원하는 직원이 59%였다고 한다. 등 떠밀려 시작한 독서스쿨이 끝난 다음 뜻맞는 사람들끼리 만든 게 지우다. 만 3년 넘게 한 달에 한 권씩 흥미를 느낀 책들을 읽어왔다.
 
짐작하셨겠지만 이달 읽은 책은 부조리 작가 알베르 카뮈의 1942년 소설 『이방인』이었다. 회원들의 아지트인 서울 김포공항의 회사 교육동. 하나둘씩 모여든 10명의 이날 참가자는 1시간 가량 열띤 난상토론을 벌였다. 어려웠던 점, 인상 깊은 구절, 헷갈리는 소설의 메시지를 두고 백화제방, 이야기꽃을 피웠다.
 
소설을 다섯 번이나 읽은 주인공은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박지승(48) 화물지원팀 차장. 비행기에 화물을 싣는 업무를 돕는 박 차장은 “정말 난해했다. 그래서 뫼르소의 기행을 알기 쉽게 정리해봤다”고 했다. “엄마의 죽음에 덤덤하게 반응하기, 육체적 사랑은 하지만 사랑하느냐는 상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서도 결혼은 승낙하기, 법정에 가서도 자기 변론 않기, 판사와 싸우기, 나중에 사제와 싸우기….”
 
통제지원팀의 박연주(44) 과장이 치고 들어왔다. “내가 결혼 전이었으면 어떻게 결혼 얘기를 그렇게 하나, 했겠지만 한 10년 살아보니 누구랑 결혼했어도 내 삶을 살 수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관록’이 묻어나는 발언, 자신의 생활과 결부지은 소설 읽기다. 박 과장은 “독서가 실제 내 삶을 크게 바꿨다”고 했다. 스튜어디스 출신인 박 과장은 섹시한 근육미를 뽐내는 머슬마니아 대회 우승 경험이 있다. 뜻밖에 출간제의가 들어와 2016년 『90일간의 뱃살빼기 프로젝트』를 출간했다. 살빼기 체험을 살린 책이다. “가끔씩 저자로 초대도 해주시고, 얼마 전에는 북콘서트 진행도 했다. 이런 일들이 내게 생기는 자체가 삶의 기쁨”이라고 했다.
 
정비품질팀 이종성(33) 선임기술사가 가세하며 토론은 소설의 핵심에 바짝 다가섰다.
 
“소설이 이해가 안 돼 해설을 봤더니 ‘인생은 그것 자체로는 의미가 없으나, 의미가 없으므로 더욱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부조리의 철학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이런 문장이 있더라.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싶어 생각해봤는데,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이 잘못인 건 맞지만 수사 검사가 팩트들로 짜인 하나의 인과관계를 만들어, 그래서 너는 반드시 사형당해야 한다, 는 식으로 짜맞춰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그런 점을 문제삼은 것 같았다.”
 
문학 예술은 정답 제출과는 가장 거리가 먼 영역. 어차피 부조리 문학의 핵심 파악이 토론 목적은 아니다. 에어버스 320 기종을 모는 김상윤(44) 기장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책을 읽는다기보다 시간 여유를 만들어서 책을 읽는 편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 읽는 순간 자유롭다고 느낀다”고 했다. 캐빈정비팀의 박은경(48) 과장은 “업무 특성상 남성 동료들과 일하는 시간이 많은데, 책 읽는 내 모습이 생소하다는 사람이 많다”고 소개했다. 하나의 생활 스타일, 나를 드러내는 표지로 책을 읽는다는 얘기였다. 전종득(52) 사내 의료원장은 “건강 상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하지만 독서 동아리에서는 다양한 부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김상경(51)씨는 2015년 독서스쿨 기획자였다. 2년 전 퇴사해 지금은 기업체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까지 해주는 아웃소싱 사업을 한다. “독서가 내 천직을 찾아줬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책읽는 마을’은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받습니다. 본지 지식팀(, 02-751-5379) 또는 2018 책의 해 e메일(bookyear2018@gmail.com)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취재해드립니다. 책의 해 행사는 홈페이지(www.book2018.org) 참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