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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조선왕실·사대부 유혹한 '백자(白磁)'의 매력

담담하면서 소박함의 미(美) 품은 '백자'
18세기 조선 후기에 제작한 백자청화 운룡문 항아리(白磁靑畵雲龍壺). 가운데 그려진 용이 여의주를 물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됐다. 38㎝ 높이의 이 항아리는 왕실의 중요한 의례 때 술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한다. [사진 경기도자박물관]

18세기 조선 후기에 제작한 백자청화 운룡문 항아리(白磁靑畵雲龍壺). 가운데 그려진 용이 여의주를 물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됐다. 38㎝ 높이의 이 항아리는 왕실의 중요한 의례 때 술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한다. [사진 경기도자박물관]

 

풍만한 어깨와 곧으면서 높은 목, 완만한 곡선을 똑 떨어지게 하는 굽. 18세기 조선 후기에 제작한 백자청화 운룡문 항아리(白磁靑畵雲龍壺)의 외형이다. 푸르르한 빛이 도는 표면은 매끈해 보인다. 백자 속 용은 금방이라도 현세로 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둥그스름한 꽃잎을 닮은 전통문양인 여의두문은 목과 굽에 둘렸는데 묘한 균형감을 준다. 38㎝ 높이의 이 항아리는 왕실의 중요한 의례 때 술을 담는 데 쓰였다고 한다. 
19세기에 제작된 백자청화 국화접문 병(白磁靑畵菊花蝶文甁)이다. 길고 잘록한 목에 둥근 몸의 조형미가 빼어나다. [사진 경기도자박물관]

19세기에 제작된 백자청화 국화접문 병(白磁靑畵菊花蝶文甁)이다. 길고 잘록한 목에 둥근 몸의 조형미가 빼어나다. [사진 경기도자박물관]

 
운룡문 항아리보다 후세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청화 국화접문 병(白磁靑畵菊花蝶文甁)은 길고 잘록한 목에 둥근 몸이다. 조형미가 빼어나다. 반들반들한 표면에는 국화 사이를 노니는 나비를 현실감 있게 잘 표현했다. 한자 ‘蝶’(접)의 뜻이 나비다. 굽 밑바닥은 황색을 띠는데 고운모래로 받쳐 구워서다. 이 백자 유물들은 경기도 광주 곤지암 경기도자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경기 광주, 조선백자의 고향 되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자박물관 등에 따르면 광주에는 조선 세조(1455~1468 재위) 때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이 설치돼 400여년간 운영됐다. 사옹원은 궁중의 음식을 관장하던 기관으로, 음식 등을 담을 그릇의 제작도 맡았다. 백자의 수요가 점차 늘자 광주에 직접 생산·품질관리시설을 뒀는데 이게 분원이다. 분원의 운영은 1998년부터 광주에서 왕실도자기축제가 열리는 인연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백자에 빠진 이유는 이렇다. 백자는 화려한 고려청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갈하면서 소박함을 준다. 절제와 검소함을 추구한 당대의 주자학과 상통한다. 또 명나라에서 청자 대신 백자가 유행한 것도 한몫했다. 
 
광주는 한양과 가깝다. 경안천이 한강과 연결돼 선박을 이용한 운송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게다가 광주에는 백자를 빚는 데 필요한 흙인 백토(白土)며 유약 원료인 수을토가 풍부한 편이었다고 한다. 특히 국유림 지대라 가마에 넣을 땔감을 공급받기도 수월했다. 강원 양구, 경남 진주 등 전국의 질 좋은 백토도 광주 분원으로 옮겨졌다. 광주가 백자 만들기에 최적지다 보니 현재 전해지는 도요지(가마터)만 321개에 이른다. 국가지정 가마터는 80개다. 
경기도 광주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가마터. [사진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 광주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가마터. [사진 경기도 광주시]

 
장기훈 경기도자박물관 관장은 “광주는 조선 시대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한 관요(官窯)가 있던 지역이다”며 “여기서 만든 백자는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백자에 새숨 불어 넣은 현대 도예인 
경기도 광주 곤지암 보원요에 전시 중인 도예가 김기철 선생의 작품.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광주 곤지암 보원요에 전시 중인 도예가 김기철 선생의 작품.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김민욱 기자

 
하지만 조선백자는 일제에 의한 민족의 암흑기를 겪으며 쇠락한다. 1980년대가 돼서야 국내에서는 조선백자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연구가 진행됐다고 한다. 다행히 조선백자는 현대도예 작가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찾은 곤지암의 보원요(寶元窯) 용가마 굴뚝에서는 연기가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재벌구이로 40시간 이상 땐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도예가 지헌(知軒) 김기철(86) 선생은 전통기법으로 도자기를 빚고 굽는 것으로 유명하다. 흙과 유약도 손수 만든다. 땔감은 소나무(육송)만을 쓴다.
도예가인 지헌 김기철 선생이 용가마 앞에서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도예가인 지헌 김기철 선생이 용가마 앞에서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지헌 선생은 “현대문명 속에서 전통방식를 따르는 것은 어쩌면 비능률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진가’는 여기에서 나온다”고 힘줘 말했다. 그의 작품은 은은한 빛깔과 질감에 곁에 두고 볼수록 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양은 숨 쉬는 듯 자연스럽다. 이따금 백자에 앉은 개구리가 해학을 더한다.  
 
백자는 ‘단순미의 극치’라고 한다. 담담하고 푸근한 모습에 서민적인 자연스러움이 깃든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헌 선생의 말이다. 
 
경기도 광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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