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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 시 한수] 전새벽의 시집 읽기(8)
회사에서 봄맞이 워크숍에 다녀왔다. [사진 Freepik]

회사에서 봄맞이 워크숍에 다녀왔다. [사진 Freepik]

 
회사에서 봄맞이 워크숍에 다녀왔다. 일정 뻔하다. 등산복 따위를 입고 서울 근교로 출발해 숙소 근처에서 장을 본다, 숙소에 체크인한 뒤 잠깐 회사발전방향에 대해 토의하며 일하는 척을 한다, 그리고 불을 피우고 소주병을 비튼다. 
 
그런데 올해는 한 가지 다르게 하기로 했다. 회사발전방향에 대한 토의 대신, 각자 관심사에 대해 자유롭게 짧은 발표를 하기로 한 것이다. ‘여행하기 좋은 우리나라 지역들’이라든가, ‘동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같은 주제로 말이다.
 
짝짝짝, 나는 손뼉을 쳤다. 안 그래도 머리가 굳어가는데 일 말고 다른 것에 대한 탐구 정신을 발휘할 기회가 얼마 만이냐. 그리고 야심 차게 준비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다. 그러나 발표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깨달았다. 아, 내가 예술에 대해 뭘 안다고 이런 짓을 시작했지.
 
코를 고는 아내가 딴 사람처럼 보일 때 
종종 그런 경험을 한다. 잘 안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 사실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깨닫는 경험 말이다. 매일 살을 맞대는 아내가 다른 사람처럼 보일 때(이 사람이 코를 골다니!), 완전히 손에 익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업무에서 사고가 날 때(이런 규정이 있었다니!), 알레르기 검사를 했는데 감자 알레르기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감자튀김을 포기해야 한다니!) 말이다.
 
이런 류의 경험은 대개 허탈함을 불러온다. 대체 여태 뭘 하고 살았던가 하고 한숨도 쉬게 된다. 그러나 성숙의 계기라고 믿는다. ‘성숙’은 대체 어디에 쓰느냐고? 바로 살가운 것을 똑바로 사랑하는 데 쓴다.
 
내소사 다녀왔으므로 내소사 안다고 해도 될까
전나무 숲길 오래 걸었으므로
삼층석탑 전신 속속들이 보았으므로
백의관음보살좌상 눈부처로 있었으므로
단청 지운 맨얼굴을 사랑하였으므로
내소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도 될까
-도종환, '내소사' 도입 부분
 
현역 장관의 시다. 장관급 인사의 삶에는 더는 시적인 부분이 없지 않냐고 따질 분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나 ‘높으신 분’이 되기 전에 쓴 글이니 편견 없이 읽어 보자.
 
내소사는 전북 부안에 있는 사찰이다. 시인은 그곳에 대해 아는 체를 한다. 그곳에는 삼층석탑과 보살좌상 벽화가 볼거리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가 은근하게 내세우는 ‘눈부처’란 상대방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시인은 보살좌상 그림의 눈에 자신이 비칠 만큼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깊고 긴 숲 지나
요사채 안쪽까지 드나들 수 있었으므로
나는 특별히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붉은 단풍으로 절정의 시간을 지날 때나
능가산 품에 깃들여 고즈넉할 때는 나도
그로 인해 깊어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배경이 되어주는 푸른 하늘까지
다 안다고 말하곤 하였다
-같은 시, 중간 부분
 
‘요사채’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집이다. 그 안쪽까지 드나들었다니 시인은 예사 관광객 취급을 받지는 않았나 보다. 하지만 계속해서 떠들려니 자신감이 없어진 모양일까. 시인, 돌연 자괴감을 내비친다.


정작 그의 적막을 모르면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은 세월을 함께 보내지 않았으면서
그의 오래된 내상과 함께 있지 않았으면서
그가 왜 직소폭포 같은 걸 내면에 지니고 있는지
그의 내면 곳곳이 왜 낭떠러지인지 알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의 곁에 사월 꽃등 행렬 가득하였으므로
그의 기둥과 주춧돌 하나까지 사랑스러웠으므로
사랑했다 말할 수 있을까
해 기울면 그의 그리움이
어느 산기슭과 벼랑을 헤매다 오는지 알지 못하면서
포 하나가 채워지지 않은 그의 법당이
몇백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그의 흐느낌 그의 살에 떨어진 촛농을 모르면서
-같은 시, 끝부분
 
시인은 사실 알지 못했다. 내소사가 입은 내상과 해가 진 뒤 그곳의 쓸쓸한 풍경에 대해서. 직소폭포는 내소사 인근의 폭포 이름이다. 시인은 이 멋들어진 사찰 안에 어찌하여 깎아지른 절벽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마지막 행은 그야말로 시의 완성이다. ‘흐느낌’과 ‘살에 떨어진 촛농’이란 시어에 담긴 애환이 가볍지 않다.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 채 감히 사랑 운운했던 시인의 자괴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간 얼마나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함부로 사랑한다고 떠들고 다녔나. 한편 위의 시가 가슴으로 들어온다면 함께 읽기 좋은 텍스트가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이다.
 
도종환의 시와 함께 읽을만한 텍스트 
 
『이별의 능력』, 김행숙, 문학과 지성사.

『이별의 능력』, 김행숙, 문학과 지성사.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너를 어떤 느낌으로 적시는지를 모른다. 너를 관통하는 그 모든 느낌을 나는 장악하지 못한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전부일지 모를 그 느낌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신형철, ‘시뮬라르크를 사랑해’ (김행숙 시집 『이별의 능력』해설) 중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대체 얼마나 될까? 기껏해야 몇 시간 후면 또 공복에 시달릴 거란 사실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런 주제에 감히 ‘예술’이라니! 결국 워크숍의 발표주제는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에세이집 한 권을 무난하게 소개하고 끝냈다. 그래, 애초에 그 정도가 좋았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점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든다. 적잖이 슬픈 일이다. 그렇지만 슬픔에만 잠겨 있지는 말자. 다시 말하건대, 우리는 그것을 성숙이라
고 부르자. 아픈 성숙을 통해 나는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다. 시와 예술과, 당신을 오롯이 사랑하는 방법을.
 
도종환 시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합뉴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합뉴스]

-1955년 충북 청주 출생
-1985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 『접시 꽃 시인』, 『당신은 누구십니까』 등 발간
-2017~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신형철 평론가
신형철 평론가. [중앙포토]

신형철 평론가. [중앙포토]

-1976년 출생
-2005년 문학동네로 등단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느낌의 공동체』 등 발간
 
전새벽 회사원·작가 jeonjun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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