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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투기자본의 우리 기업 공격, 두고만 볼 것인가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행동주의 투기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반대하고 나섰다. 자사주 소각, 순이익 40~50% 배당, 사외이사 3명 추가선임 등을 요구하고 있다. 29일 개최되는 주총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을 규합한 엘리엇과 현대차가 세 대결까지 갈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엘리엇은 또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국민연금이 찬성하는 바람에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 7000억원을 배상하라는 중재의향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중재의향서는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하기 전에 법무부의 의견을 물어보는 절차다. 아마도 원하는 대로 중재 되지 않을 경우 투자자 국가 간 소송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법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 관계자들을 2심까지 유죄를 선고해왔고,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은 적폐였다고 발표한 상황이어서 엘리엇의 중재의향서 제출은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투기자본의 공격은 엘리엇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 공격,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의 SK 공격, 2003년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공격, 2005년 칼 아이칸의 KT&G 공격 등으로 글로벌 투기자본들은 수시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갔다.  
 
왜 한국기업이 이처럼 국제 투기자본의 손쉬운 공격 대상이 되고 있을까. 경영권 방어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시론 5/17

시론 5/17

한국에서 기업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주식발행으로 조달한 때문에 대주주 지분이 적어진 데다 미국·일본·프랑스에서 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해 도입한 차등의결권 등 경영안정 장치가 전혀 없다. 일본·영국·프랑스에서는 심지어 거부권과 같은 황금주제도도 두고 있다. 이런 장치는 경영안정을 통해 기업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최대한 많이 창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와 같은 경영안정 장치가 전혀 없는 한국에서 기업들은 신규투자나 연구개발보다는 배당을 더 많이 하고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부양하는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한국에서 연간 설비투자가 약 150조원 정도 일어나고 있는데 90% 내외가 대기업들이 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투자하지 않으면 일자리가 생기기 힘든 구조다. 더욱이 청년들은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또는 고급서비스업 일자리를 원한다. 그러나 정부는 대기업의 경영 안정성 제고보다는 지배구조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
 
순환출자 해소는 기본이다. 각 그룹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보다는 순환출자 해소에 수십조원씩을 쓰고 있다.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요구는 거의 전방위적이라고 할 정도다. 아직 보험업법과 금융통합 감독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약 21조 원어치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현재 대주주 일가는 삼성전자 지분율이 5% 수준밖에 되지 않아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통해 경영안정을 유지한다. 따라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경우 경영안정이 흔들릴 수도 있고 한국경제에 엄청난 타격이 될 우려가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정위는 더 센 대기업 규제법을 만들 태세다. 법무부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5년 만에 다시 추진하고 있다. 상법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등기이사의 과반수를 소액주주들이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경영 안정성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크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최근 의결권 지침을 개정해 집중투표제에 찬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러한 조치들이 경영 안정성을 훼손하고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투자가 활성화돼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 임금수준도 높고 노조도 강성인데 경영권마저 불안해지면 한국에서 투자할 기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기업 비중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작년에는 해외직접투자가 연간 설비투자의 3분의 1 수준(46조5000억원)이나 됐다. 반면 국내투자는 빈사 상태이고 제조업 가동률은 사상 최저수준인 70%로 추락했다. 월 30만~40만개 창출되던 일자리가 10만개로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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