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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북한판 박태준’ 없어 … 경제는 핵 개발보다 어렵다

김정은의 경제 야망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마법사다. 그의 묘기는 현란하다. 한반도 정세는 요동친다. 마법의 위력은 핵 무장에서 나온다. 핵은 이미지 변신의 주술을 건다. 과거 그는 난폭한 불량국가의 지도자다. 지금은 동북아 신질서 무대의 연출자다. 그 지위는 전격적인 변모 덕분이다. 그것은 비핵화 선언이다. 핵 무장의 절정에서 역설적 반전이다.
 
북한 영도자의 야망은 이제 경제다. 그의 노동당 전원회의(4월 20일) 발언은 절묘하다.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 그 ‘전략적 노선’의 핵심은 간명하다. 미국과의 빅딜이다. 핵 포기와 경제 지원을 맞바꾸는 방식이다. 시작은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해제다.
 
비핵화 이후의 북한 미래는 장밋빛이다. 희망은 속도감 있게 퍼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말은 환상적이다. “북한과 북한 주민들에게 평화와 번영이 넘쳐흐르는 미래(future brimming with peace and prosperity)가 있다.” 그 전제는 비핵화의 과감하고 조속한 행동이다. 미래 풍경의 압권은 평양에 트럼프타워, 맥도날드 매장이다.
 
사회주의 경제 성공은 롤 모델을 갖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1978년)과 베트남의 도이머이(쇄신·1986년)다. 북한의 젊은 영도자가 ‘제2의 덩샤오핑’이 될 것인가. 그 길은 성취를 약속하는가. 개방과 외부 지원이 번영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나.
 
경제는 힘들다. 성공 사례는 예외적이다. 한국의 산업화는 기적이다. 수십 개의 옛 개발도상국 중 유일하다. 경제 발전은 민주화 투쟁만큼 힘들다. 문재인 정부의 586 참모들은 운동권 출신이다. 그들은 산업화 여정을 실감하지 못한다.
 
북한 경제의 극복 요소와 성공 조건

북한 경제의 극복 요소와 성공 조건

 
제는 핵무기 개발과 다르다. 핵무장은 리더십과 소수 과학자의 집념으로 이뤄진다. 경제의 문법은 까다롭다. ‘북한판 마셜 플랜’이 ‘대동강의 기적’을 보장하지 못한다. 덩샤오핑은 성공 조건을 제시했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놓은 도이머이의 길도 비슷하다. 경제 발전은 공산당 혁명 못지않게 어렵다.
 
덩샤오핑 경제의 출발은 과거와의 결별과 재구성이다. 그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이념·역사를 재평가했다. 그가 주창한 ‘사상해방’이다. 그것은 광란의 문화대혁명(1966~1976년)에 대한 반성으로 출발했다. 그 결별은 단호하면서 유연했다. 마오쩌둥의 공과를 나누었다. ‘공(功)칠, 과(過)삼’이다. 그는 공산당 1당 체제를 고수했다. 하지만 문혁 시대의 절대권력을 분산했다. 집단지도체제의 실질적 도입이다. 그는 군사위 주석이었다. 그의 해외 활동은 정무원 부총리다. 베트남도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 골격을 유지한다. 하지만 권력 구사의 전통은 분점이다. 그것은 건국의 아버지 호찌민(胡志明) 통치부터다.
 
개방과 시장경제의 추진력은 경쟁이다. 그것은 권력 분산과 다원주의로 활기를 띤다. 오승렬(한국외국어대 중국외교통상학) 교수는 그 관계를 정리한다. “과거 역사와 결별한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노선에 대해 과감하고 객관적 평가를 했다. 중국 지도부의 열린 마음이 개혁·개방의 성공 요인이다.”
 
북한은 세습 통치다. 수령 유일 지배 체제다. 그런 통치는 권력 분산을 일축한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의 국가 대표 역할은 형식적이다. 주체사상은 절대다. 잘못 없는 무오류(無誤謬)의 진리다. 그것이 자력갱생 경제의 이념적 기반이다.
 
북한의 자력 경제는 실패의 연속이다. 1980년대 들어 굶주림과 고난의 행군, 가난이다. 그 시대 합영법·경제특구·개발구는 낭패의 기억이다. ‘천지개벽’은 김정일의 유별난 감탄사였다. 2001년 그는 중국 상하이에 갔다. 그 표현은 그곳 발전상에 대한 그의 감상이다. 그 말은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전망은 틀렸다. 김정일은 폐쇄와 자력 경제의 틀을 고수했다. 그것은 체제 관리의 위험성 때문이다. 개방과 시장의 침투력은 절묘하다. 절대우상의 공간에 파고든다.
 
개혁과 개방은 묶인다. 하지만 동전의 단순한 양면이 아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의 지적은 실감 난다. “대외 개방은 체제 개혁으로 가능하다. 중앙 집권적 명령경제로는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사회주의 체제에선 통치이념의 해석자가 실권자다. 김정은만이 할아버지·아버지의 유훈을 재해석할 수 있다. 그 시도가 가능할 것인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전망은 적극적이다.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체제 합의 후 사회적 다원화가 허용된 1인 절대 통치에서 경제 발전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샤오핑은 한강의 기적을 참고했다. 1978년 8월 그는 일본의 신일본제철소에 갔다. 그는 “중국에 제철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고 했다. 이나야마 요시히로 회장은 “돈으로 짓는 게 아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고 했다. 덩샤오핑은 농담하듯 말했다. “박태준을 수입할 수 없을까.” 박태준의 포스코는 신화다. 그의 리더십은 실용과 도전이다.
 
덩샤오핑의 깃발은 실사구시(實事求是)다. 그 정신은 격렬한 실용주의로 표출된다.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이다. 검든 희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으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든 공산주의든 인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최고다. 실용주의 정치 문화는 베트남의 오랜 특징이다. 도이머이는 공산당 서기장 응우옌반린의 등장으로 시작했다. 그는 실용주의를 경제 쇄신에 접목했다. 그는 ‘베트남의 고르바초프. 도이머이는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렸다.
 
중국과 베트남은 반미(反美)의 집단 구호를 해체했다. 실용은 과거의 증오를 뛰어넘는다. 북한의 반미 적개심은 뚜렷하다. 그것은 체제 통제의 수단이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북한 진입에 장애물이다.
 
북한의 실용주의 문화는 척박하다. 주체 경제는 실용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북한의 시장주의 전문 인력은 부족하다. 북한의 장마당(500여 개) 경제는 확장 중이다. 하지만 장마당·개성공단의 시장 실적은 제한적이다. 소규모 개방으론 한계가 뚜렷하다. 실용의 거대한 물결이 흘러야 한다. 평양 지도부는 ‘북한판 박태준’을 양성해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의 다짐이 실천된다. 그는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여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라고 했다.
 
시장경제는 곡절과 리스크의 연속이다. 실적과 침체를 반복한다. 경제 책임자는 외풍에 흔들린다. 보호막을 쳐 줘야 한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에게 전권을 주었다.  
 
북한 경제 실무자들의 공간은 어둡다. 실패하면 숙청된다. 화폐 개혁 책임자인 박남기(노동당 계획재정부장)는 2010년 공개 처형됐다. 북한 경제 전문가는 박봉주 총리다. 그는 좌천된 경력이 있다(2007년). 중국과 베트남 지도부는 북한과 다르다. 이재춘(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교수는 “베트남은 정책 실패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사람들이 숙청이나 처벌 없이 명예롭게 퇴진토록 했다. 그것으로 권력 투쟁과 정치적 동요를 최소화했다.” (『베트남과 북한의 개혁·개방』)
 
김정은 무대의 결정판은 6월 12일 싱가포르다. 그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 장소다. 싱가포르는 북한에 낯설지 않다. 그곳에 북한 대사관도 설치돼 있다. 싱가포르 지도자 리콴유(李光耀)의 경험은 전설적이다. 1992년 덩샤오핑은 “싱가포르(리콴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자.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남순강화)고 했다. 싱가포르는 김정은에게 경제 리더십의 감수성을 줄 것이다.
 
리콴유의 경험은 박정희의 치적과 유사하다. 박정희의 전략 모델은 선(先) 경제, 후(後) 민주화다. 그 바탕은 맹자의 통찰이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북한은 중국과 베트남, 싱가포르의 모델을 선별적으로 추출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배워야 한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검증된 사례다. 전 세계에 수출된다. 새마을의 비결은 경쟁 원리다. 평등 지원이 아니다. 우수 농촌에 우선 지원하는 것이다. 그 경쟁 유발 방식은 북한 사회에 매력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남북한의 심성은 비슷하다. 북한 사람들의 DNA족보는 시장성에 익숙하다. 옛 개성·의주 상인, 북청 물장수, 평양의 개방성에 얽힌 정신과 체질이다. 그것은 북한의 잠재력을 높이는 요소다.
 
 
한은 번영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USB를 줬다. 그 안에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담겼다. 북한 경제 재건은 천문학적 재원을 요구한다. 북한의 인프라는 낡았고 망가졌다. 철도·항만·도로·통신·전력 시설 구축에 20년간 1400억 달러 (약 151조원, 2014년 금융위 보고서)가 들어간다(추정액수). 그 엄청난 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폼페이오는 “미국민의 세금을 들여 북한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이 상당 부분 떠맡을 수밖에 없다. 1990년대 북한 경수로 건설비용은 46억 달러였다. 한국이 그 비용의 70%를 댔다.  
 
한국은 도와줄 자세가 돼 있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북한 지도부의 변덕이 없어야 한다. 비핵화의 철저한 이행이 있어야 한다. 김정은식 사변(事變)은 거대한 실험이다. 그것의 성공 조건은 선명하다.
 
박보균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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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