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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시간 미스터리 풀었다…9년만에 피의자 잡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

지난달 25일 제주경찰청에서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가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관련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달 25일 제주경찰청에서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가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관련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그때는 잡지 못했다. 고인의 사망 시점이 불분명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꼽히는 보육교사 피살 사건이 9년 만에 해결될 전망이다. '살인의 추억' 처럼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배수로에서 발견된 사건으로 당시 법의학자와 경찰의 판단이 달라 혼선을 빚었고 장기미제로 남아 있었다.  
 
 
 
2009년 제주에서 발생한 보육교사 살인 피의자가 붙잡혔다. 제주지방경찰청은 16일 오전 8시 20분쯤 경북 영주에 있던 박모(49)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고 밝혔다. 제주 출신인 박씨는 2010년 제주를 떠나 최근까지 강원도 인근에서 활동하다 경찰 수사를 피해 경북 영주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5일 제주경찰청에서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가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관련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달 25일 제주경찰청에서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가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관련 동물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사건 당시 제주에서 택시 운전을 했던 당시 40살의 박씨는 그 해 2월 1일 당시 27세였던 보육 여교사 L모씨를 제주시 용담동에서 태우고 애월읍으로 가다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9년전에도 조사를 받았으나 명확한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용의자의 예상 이동 경로로 추정되는 CCTV에도 포착된 박씨는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에서도 거짓 반응 나왔지만, 결정적인 물적 증거가 없었다.  
 
 
 
사건 초기 수사의 이목이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L씨의 남자친구에 맞춰졌던 것도 원인이다. 하지만 수사가 난관으로 부딪쳤던 가장 큰 원인은 숨진 이씨의 사망시간이 명확지 않아서였다. 당시 경찰은 사망추정 시간을 실종 당일인 2월 1일로 판단했지만, 당시 부검의는 발견 하루 전인 2월 7일로 추정했다. 당시 시신의 체온이 주변의 기온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신의 체온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주변 기온과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실종되고서도 일주일가량 살아있었다는 이런 부검 결과가 나오면서 경찰 수사는 혼선을 겪었다. 이기간 범행장소 이외의 곳에 있던 박씨는 알리바이가 성립돼 수사망을 피해왔다. 따라서 경찰은 박씨의 혐의 입증을 위한 보완 작업 벌여왔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돼지와 비글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당초 사망 추정시간과 다른 결과를 지난 4월 25일 발표했다. 제주경찰이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와 전북·제주경찰청 등의 전국 과학수사요원이 참여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동물실험을 했다. 이정빈 교수는 16년만에 해결된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의 해결 결정적 증거를 낸 국내를 대표하는 법의학자다. 실험에는 55~70kg 상당의 돼지 4마리와 10~12kg의 비글 3마리를 사용했다. 지난 1월29일부터 3월2일까지 회차당 7~10일씩 총 4회에 걸쳐 24시간 부패 과정을 관찰했다. 동물에 옷을 입히고 소방용수를 뿌리는 등 사건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기상 조건을 조성했다.  
 
 
 
사망시간을 명확히 추정하기 위해서다. 이 결과 주변의 환경에 따라 시신 온도가 대기 온도보다 높은 현상이 지속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실험 결과 사건과 동일하게 사후 7일째 되는 날 오후 8시 30분쯤에도 현장환경의 특수한 조건인 높은 습도와 낮은 온도, 배수로의 환경적 특성으로 인한 기화열로 사체에서 부패가 지연된 것으로 조사됐다. 배수로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부패가 지연됐고 피해자가 두터운 옷(무스탕)을 입어 체온이 유지됐다는 것이다.
 
 
 
이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실험을 통해 파악한 사망시간을 당초 ‘24시간 이내’가 아닌 2월 3일 이전으로 추정했다. 애초 경찰의 판단처럼 실종과 사망 시점이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을 뒷받침해 줄 실험결과였다.  
 
 
 
제주경찰은 이 실험 결과 이씨의 사망 추정시간이 실종된 그해 2월 1일 오전 3시부터 사흘 이내에 사망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경찰은 여기에 법 과학적 분석으로 사망 시간을 실종 당일인 1일 새벽 휴대전화가 꺼지기 직전인 오전 4시 5분쯤으로 좀 더 구체화했다. L씨는 2009년 2월 1일 제주시 용담2동에서 남자친구와 만난 후 택시를 타고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집으로 가는 도중 실종됐다.  
 
 
 
휴대전화 마지막 신호가 잡힌 것은 당일 오전 4시 5분쯤 광령초등학교 인근이다. 실종 신고가 들어오자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 수사에 들어갔고 같은 달 6일 제주시 아라2동에서 L씨의 핸드백을 발견했으며 이틀 후인 8일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L씨는 하의가 모두 벗겨졌고, 상의는 젖어있는 무스탕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한편 제주경찰은 지난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 시행 이후 강력계 산하에 '장기 미제사건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경찰은 이번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수사를 다시 시작했다. 경찰은 수사인력을 기존 7명에서 7명을 더해 14명으로 늘려 수사를 벌여왔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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