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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인간평화·보편평화를 향하여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4월 27일 판문점 정상회담의 열쇠는 단연 평화다. 회담으로의 진행과 대면, 회담의 내용과 합의, 회담 이후의 목표와 방향은 모두 평화를 향한 절대 요구로 모아졌다. 얼마나 평화가 절실했으면 쌍방 모두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역사’의 공통의 단일 화두를 ‘평화’로 잡았겠는가? 이 단일 화두는 우연의 일치라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시대정신이요 사회합의였다. 아니 세계정신이요 세계합의였다.
 
두 정상이 ‘함께’ 손잡고 ‘함께’ 넘어갔다가 다시 ‘함께’ 넘어온 저 코끝 찡한 모습은 현재의 모든 염원의 압축이자 향후에 누구나 재연하고 싶은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감동이 클수록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남과 북, 그리고 세계인들이 자유로이 넘나들어야 할 군사분계선은 숱한 영혼들이 죽어간 거대 무덤이었다. 그 세계무덤으로부터 기나긴 세계열전·세계냉전·정전체제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세계평화를 향한 새순과 새살이 돋아나고 있다.
 
세계가 숨죽였던 출발은 일단 성공이다. 그러나 세계는 시대정신과 세계합의의 성패를 가를 또 다른 분수령을 앞두고 있다. 다가올 정상회담들도 반드시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유는 명백하다. 평화는 한번 잃으면 순식간에 평화도, 목숨도 모두 잃기 때문이다.
 
대체 평화란 무엇인가? 인간들의 삶에 필요한 요소를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선택재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수재로 나눈다면 평화는 단연 후자다. 필수재를 잃고도 선택재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없다. 평화를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평화는 내면평화(영혼평화)와 외면평화(실존평화), 개인평화와 사회평화, 나라평화와 세계평화로 구성된다. 이 여섯 평화들은 궁극적으로 개별 생명의 평화를 보장하는 인간평화로 연결돼야 한다. 즉 평화는 인간평화(pax humanus)여야 한다. 개별 생명의 평화는 또한 모든 사람의 평화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보편평화(pax universalis)다.
 
이 땅에 인간평화와 보편평화를 향한 걸음이 시작됐다. 호메로스의 쌍벽 헤시오도스는 인류에 ‘시작이 반’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그 가르침을 플라톤은 ‘시작은 반 이상’이라고 정정한다. 반 이상을 이미 이루게 한 시작은 정녕 소중하다. 우리는 벌써 반을 왔다.
 
박명림칼럼

박명림칼럼

그러나 반짝이는 시작에 취해선 안 된다. 완성 없는 절반은 다시 절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아니 감만 못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다.’ 평화는 열정으로 시작해 이성으로 완성된다. 열정이 이상주의라면 이성은 현실주의다. 다시 셰익스피어를 빌리면 “뜨거운 열정은 절제라는 냉정한 물방울로 식혀야 한다.” 기나긴 정전 상태와 전쟁 위협을 넘어 인간평화와 보편평화에 도달하기 위한 냉혹한 현실주의가 긴요하다.
 
첫째, 과거 비핵평화 합의의 결정적 계기들은 모두 국제정치 현실의 산물이다. 북한의 선택을 안내하고 강제한 국제조건을 말한다. 첫째는 사회주의 붕괴와 냉전 해체, 둘째는 6자회담이다, 이번에도 국제제재 합의 체제가 결정적이었다. 북핵·ICBM이 세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연대의 유지를 통한 비핵화를 통해 북한이 끝내 세계로 나와 세계와 함께 평화와 번영으로 같이 가게 하는 데 평화의 지름길이 있다.
 
둘째, 합리적 의심이다. 갈등하는 주체들 사이의 평화의 시작은 신뢰로 가능하나 평화의 완성은 합리적 의심의 상호 확인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우린 이미 수차례 실패해 보지 않았는가? 평화 완성을 위한 의심과 확인이 필요없다면 전쟁과 갈등은 오지도 않았다.
 
셋째, 자아 유지다. 과거의 원수와 적이 다시 인간과 형제로 전변될 때 인간들의 단기적인 자기불안·당혹·혼란은 자연스럽다. 따라서 현재의 기축 평화 요소를 공고히 지속할 결기는 필수다. 즉 민주공화국, 자유와 평등, 시장경제, 주한미군, 한·미 동맹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은 거꾸로 어렵게 구축한 평화의 조건마저 파괴할 수 있다. 거듭 조심해야 한다.
 
역사의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또 금방 닫혀버린다. 기회는 가늘게 열린 찰나이자 순간이다. 따라서 닫히기 전에 꽉 잡아야 한다. (지금 잡은) 순간이 (향후 계속될) 영원인 까닭이다.
 
전란으로 찌든 조국을 보며 자신을 가차없이 지옥과 연옥에 몰아넣었던 단테는 천상의 평화를 지상에서 이루려고 인류에 보편평화의 웅장한 철학을 펼쳐준 바 있다. 보편평화는 인류 완성의 통로였다. 지금 평화가 오고 있다. 혼신을 다해 이 평화 기회를 인간평화와 보편평화로 완성하자. 정녕코 다시는 뒤로 돌아가지 말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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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