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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오손도손 모여 사니 매일이 재밌는 잔칫날이죠

김남중의 공감현장
노인 공동생활공간 ‘사구시 사랑방’

당진 사구시 사랑방 노인들이 산책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당진 사구시 사랑방 노인들이 산책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노인들이 행복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고령화 사회의 피할 수 없는 그늘, 바로 노인 부양 문제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30%가 넘는 129만여 명이 홀로 산다. 한 해 4% 넘게 느는 추세다. 노인 돌봄을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돌봄’ ‘커뮤니티 케어’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충남 당진시 사기소1통1반 ‘사구시마을’은 마을공동체의 노인 돌봄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다. 돌봄의 중심은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사구시 사랑방’이다. 홀몸노인 6명이 공동생활하는 보금자리를 넘어 온 마을 노인과 주민이 어울려 서로 의지하고 보살피는 공간이다. 어버이날을 나흘 앞둔 지난 4일 사구시 사랑방의 웃음 넘치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했다.
 
마을 사람들이 ‘버스 길’이라고 부르는 지방도에서 마을 이정표를 보고 핸들을 꺾자 굽은 길이 시작됐다. 작은 저수지를 지나 4㎞쯤 들어갔을까. 산으로 빙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15가구 26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65세 이상 노인만 12명이다. ‘사구시 사랑방’은 마을 한가운데 나무로 지은 정자 옆에 자리잡고 있다.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훅 끼친다. 온실에 들어온 듯하다. 밖의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데도 난방 보일러를 틀어 놓아서란다. 방 안에 있던 예닐곱 되는 할머니들이 땀 흘리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잠시 창문을 열어 준다. 사랑방 회장인 황정옥(82) 할머니는 “노인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라 냉기가 없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다”고 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며 활짝 웃고 있는 손영자·윤종학·이옥자·황정옥 할머니(왼쪽부터). [프리랜서 김성태]

점심을 함께 먹으며 활짝 웃고 있는 손영자·윤종학·이옥자·황정옥 할머니(왼쪽부터). [프리랜서 김성태]

때마침 점심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매일 끼니를 함께하다 보니 암묵적으로 정해진 ‘당번’이 있다. 박순복(85) 할머니가 밥을 짓고 황 할머니가 반찬을 만들면 이옥자(84) 할머니는 음식물 쓰레기, 손영자(76) 할머니는 설거지를 담당하는 식이다. 최연장자인 맏언니 윤종학(91) 할머니만 ‘열외’란다. 이날만큼은 박 할머니의 며느리 하기숙(58)씨와 황 할머니의 딸 김명숙(55)씨가 사랑방에 와서 부엌 일을 도왔다. ‘특식’을 준비하는 날이어서다. 상 차리는 걸 돕던 마을 반장 김낙준(61)씨는 “특식 있는 날엔 온 마을 사람을 사랑방으로 불러서 잔치하듯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사랑방 특식 잔치’는 마을 사람들이 가져온 특별한 식재료가 있을 때마다 열린다. 이날 특식 메뉴는 가죽나물을 곁들인 제철 나물 비빔밥이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의 여린 잎이다. 마을 반장 김씨는 “마을에 키가 30m 넘는 참죽나무들이 있는데 사흘 전 카 크레인(이동식 크레인)을 하는 친구가 와서 잎을 따준 덕분에 오늘 마을 어른들에게 가죽나물을 대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할머니들도 거들었다. “얼마 전엔 마을 사람들이 붕어랑 민물고기랑 잡아와 어죽털레기를 해 먹었고요. 마을 논에서 거둔 미나리를 보내왔길래 미나리전을 해서 먹었지요.”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온 날엔 온 동네 고기 잔치를 했어요.”
 
사랑방의 점심 시간인 ‘정오’가 다가오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더 모여들었다. 식탁 자리가 모자라 방바닥에도 상을 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최연장자 윤 할머니가 입을 뗐다. “나도 여기 한 자리 끼어 모여서 먹으니까 좋아.” “이 자리에 없으면 흉보니까 꼭 와야 해.” 웃음이 터졌다. 사랑방 회장 황 할머니는 “노인들에겐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것만큼 소중한 일이 없는 것 같다”며 “맛난 것을 해서 마을 사람들을 불러 함께 먹고 마을 사람들은 다시 우리 노인들을 보살펴 주니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랑방에 모여 윷놀이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사랑방에 모여 윷놀이하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사랑방 한쪽 벽에 걸린 흰색 칠판은 ‘기부자’들의 이름으로 빼곡하다. 믹스커피와 과일, 반찬거리를 갖다 준 이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지난해 9월 사랑방을 만들 때 돈을 보탠 사람들이다. 마을 주민과 외지에 사는 자녀 60여 명이 형편대로 200만원에서 5만원씩 추렴해 3100만원을 모았다. 마을 반장 김씨에게 사연을 들어봤다.
 
“재작년 3월에 마실 장소인 윤 할머니 집에 불이 났어요. 반상회를 열고 별도의 마을 사랑방을 만들어 어른들을 모시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마침 당진시가 공동생활하는 노인들을 지원하는 ‘독거노인 공동생활제’라는 사업을 하길래 신청을 했지요. 그런데 사랑방 후보지로 신청한 마을 빈집이 무허가라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을 주민 힘으로 직접 사랑방을 만들자며 정성을 모은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당진2동과 당진시를 오가는 1년여 노력 끝에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지정을 받기는 했다. 다만 건물 리모델링 비용은 주민이 모은 자체 돈으로 충당하고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TV, 전자레인지 등 비품을 사는 비용 800만원만 지원을 받았다. 당진시 노인복지팀 윤정원 주무관은 “관내 9개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가운데 사구시 사랑방이 여섯 번째인데 마을 주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만들고 운영하는 바람직한 모델”이라며 “운영비와 시설 보수비 등으로 연간 510만원을 사랑방에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노인들은 매일같이 사랑방에 나와 종일 어울려 지낸다. 홀몸노인들은 사랑방에서 함께 자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랑방은 완벽한 ‘노인 돌봄’의 장소다. 마을 반장 김씨는 “그 전엔 외지에 나가 사는 마을의 자녀들이 혼자 사는 어른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나를 찾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사랑방에서 ‘자동 확인’이 된다”며 웃었다.
 
사랑방에선 ‘노노(老老) 케어’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막내급’인 70대 손영자 할머니는 15살 연상인 윤 할머니를 친언니처럼 살뜰히 보살핀다. 고령 탓에 듣는 게 약간 불편한 윤 할머니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손 할머니는 “따로 지낼 때는 방앗간 심부름이나 택시를 불러 시내 모시고 나갈 일이 생겨도 연락하시는 게 불편하곤 했는데 지금은 딱 붙어 지내니 보살펴 드리기가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가 돌았다. 90세가 넘었는데도 윤 할머니는 하루에 커피를 3~4잔이나 마신다고 한다. “마셔도 잠이 안 오고 안 마셔도 어차피 잠이 안 오니 그냥 마시는 거야”라는 할머니 말에 한바탕 웃음이 번진다. 그 사이 방 밖에는 오전에 불던 바람이 잦아들고 볕이 좋아졌다.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집 울타리에 철쭉꽃이 한창인 ‘반장댁’을 돌아오는 코스다.
 
윤 할머니와 이정순(86) 할머니가 유모차에 의지해 앞장을 섰다. 미나리가 드문드문 남아 있는 논을 지나 참죽나무 몇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길로 들어섰다. 야트막한 비탈길이다. 반장댁이 가까워오자 오르막이 심해졌다. 급기야 유모차를 밀고 가던 윤 할머니가 ‘만세’를 불렀다. “에고, 더는 못 가, 못 가. 점심 먹은 게 다 내려갔어. 죽는 게 나아.” 모두들 박장대소다.
 
늘어나는 고령자 가구

늘어나는 고령자 가구

노인들이 넘어질세라 뒤를 따르던 황 할머니의 아들 김명호(57)씨가 잽싸게 윤 할머니의 유모차를 잡고 그 위에 윤 할머니를 앉혔다. 유모차가 움직이자 윤 할머니가 해맑게 웃는다. 다른 할머니들도 “호강하네요”라며 웃는다. 반장댁 철쭉 울타리에 도착했다. “분홍빛 옷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더 화사해서 철쭉꽃이 빛이 나질 않네요.” 객쩍은 농에 할머니들 얼굴엔 또 웃음꽃이 피었다.
 
산책을 마치고 사랑방에 돌아오자 황 할머니가 “수고들 했다”며 사이다 한 잔씩을 건넸다. 숨을 고르고 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방바닥에 담요를 깔고 윷판을 놓고는 빙 둘러 앉았다.
 
“사랑방 놀이의 9할은 윷놀이이고요. 민화투가 1할입니다.” 산책이 힘들었다던 윤 할머니가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윷판 바로 옆에 ‘좌정’을 하곤 ‘1번’으로 윷을 던졌다. 본새를 보니 이곳의 ‘지엄한 규칙’인 듯했다. 사랑방 총무 김연학(79) 할아버지는 “윤 할머니가 윷판의 말 놓는 걸 늘 주관하신다”며 “머리 시원찮은 사람은 윷판을 잘 못 쓰는데 할머니는 정말 말을 잘 놓는다”며 자랑을 했다. 오후 내내 윷이 던져질 때마다 사랑방에선 박수 소리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오순도순 모여 지내니 매일이 재밌고 행복한 잔칫날 같아요.” 황 할머니 말에 너나없이 맞장구를 쳤다.
 
겨울철이나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사랑방이 함께 잠을 자는 ‘집’이다. 늘 보는 얼굴들인데 잠자리에서 무슨 얘기들을 나눌까. 손 할머니에게 물었다. “나란히 주욱 누워서 주로 자식들 얘기를 하지요. 다들 3~5명씩 자식들을 뒀는데 모두 외지에 나가 있으니 늘 잘 사는지 염려를 하지요.” 더러는 며느리 흉도 보느냐는 우문에 “며느리 자랑을 하면 했지 그런 일은 없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을에서 한나절 지내는 동안 노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들려준 말 때문이다. “우리 마을 자식들은 다 효자고 효녀”라는 거다. 점심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빼놓지 않는 화제다. 그것도 제 자식이 아니라 남의 집 자식을 칭찬하고 자랑한다. “저 할머니 아들은 다른 지역 읍장인데요. 어머니 안부가 궁금하면 새벽에라도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출근하는 효자예요.” 황 할머니가 묻지도 않았는데 귀띔하듯 한 말이다.
 
온 마을이 노인들을 돌보는 걸 보니 그럴 만하지 싶었다. “이 마을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 나오는 동막골 같은 곳이죠. 30년 전 홀로 되신 어머니가 이곳에서 마을 어른들과 함께 지내며 행복해 하세요. 마을 어른들을 뵈면 정말 편하고 다 이모 같고 가족 같아요.” 인천 소래포구에 사는 황 할머니의 50대 딸 김명숙씨는 그래서 남편과 함께 이 마을로 돌아오기로 했다. 연말쯤 이곳에 집 짓는 일이 마무리된다. 김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머니와 노인들을 보살피며 살 것”이라고 했다.
 
고령화 사회 노인 부양 문제의 대안 중 하나인 ‘사회적 가족’, 당진 사구시마을에선 이미 실현되고 있었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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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