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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거인’ 김종영은 왜 그 많은 그림을 남겼나

조각가 김종영에게 ‘드로잉’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자화상’(1950). [사진 김종영미술관]

조각가 김종영에게 ‘드로잉’은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자화상’(1950). [사진 김종영미술관]

“오십이란 나이를 탄식한다.” 
 
한국 현대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조각가 고 김종영(1915~1982)은 오십이 되던 해인 1964년 1월 1일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그리고 그는 “지금까지의 제작 생활을 실험과정이었다고 하면 이제부터는 종합해야 할 것”이라며 “조형의 본질, 형체의 의미 등에 대한 그동안의 실험을 종합할 수 있다면 오십이란 나이는 결코 헛된 세월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의 실험은 ‘오십’이란 나이에서 멈추지 않았다. 1982년 12월 암으로 세상으로 떠날 때까지 그는 그리고, 또 그리며 작업했다. 생전에 그는 “작가는 제작 시간이 바로 휴식시간”이라며 “손을 쉬는 시간은 온갖 잡생각과 투쟁하고, 생활을 고민해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에게 작업이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각백(刻伯, 김종영의 애칭)이 그리다’전을 열고 있다. 연대순으로 펼쳐놓은 김종영의 드로잉으로 전관을 채운 대규모 전시다. 이번 전시는 드로잉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넘어서 구도 과정처럼 치열했던 작가의 시간을 묵직한 감동으로 전해준다.
 
조각가 김종영이 남긴 조각 작품은 228점(유실작품 포함). 그에 반해 현재 그가 남긴 그림은 조각 작품의 약 10배인 3000점에 이른다. 수묵화부터 유화, 그리고 콜라주도 있지만 스케치북에 그린 드로잉이 가장 많다. 
 
왜 그는 이토록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것일까? 그는 ‘데생에 대하여’ 쓴 글에서  “작품에 데생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는 박제 표본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데생은 단순한 소묘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이해와 판단, 작가의 용기 등 “이 모든 정신적 과정을 요약한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수묵화 ‘정물’(연도미상). [사진 김종영미술관]

수묵화 ‘정물’(연도미상). [사진 김종영미술관]

전시는 그의 휘문고 재학시절인 1930년부터 1982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작업을 시간순으로 소개한다. 작품들은 가족과 자화상, 나무와 산 그림 등으로 소재가 한정돼 있지만 작가의 다양한 표현 양식을 통해 변화의 흐름을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1950년 9월 15일에 그린 작품은 특히 눈길을 끈다. 6·25가 발발하고 피란을 떠나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던 그가 돈암동 집에 은신하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후에 그가 말하기를 “밤에 인민군이 플래시를 들고 찾아왔을 때 종이(족자) 한 장 사이에 두고 간이 콩알만 했다”고 말했던 때에도 그는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간략한 선묘로 그린 그의 얼굴엔 광대뼈가 선명하고 눈이 퀭하다.
 
나뭇가지에 먹을 찍어 그린 예수상. (1958)[사진 김종영 미술관]

나뭇가지에 먹을 찍어 그린 예수상. (1958)[사진 김종영 미술관]

1958년에 나뭇가지에 먹을 찍어 그린 예수 얼굴도 있다. 고통과 수난의 상징인 가시면류관에, 선의 강약으로 얼굴의 윤곽선을 살린 이 그림은 특유의 날카로운 선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982년 5월 3일에 그린 산 그림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7월 전에 그린 것이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신록의 계절에 그렸는데도 이 그림의 전체적인 색조는 갈색조이고, 색조로는 천지 구별도 없다”며 “투병 중에 혼신을 다한 그의 손놀림이 보이는 듯해 마음이 숙연해진다”고 했다.  
고 김종영 작가가 영면하기 7개월 전에 그린 산 그림(1982). [사진 김종영 미술관]

고 김종영 작가가 영면하기 7개월 전에 그린 산 그림(1982). [사진 김종영 미술관]

 
박 학예실장은 “김종영 작가는 예술을 가리켜 ‘천지만물을 관조하는 활동’이라고 했다”며 “그에게 드로잉은 작가 자신이 관찰한 것을 기록하고, 작품이 주는 감동을 기억하고, 자신의 변화를 검토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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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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