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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평화무드에 묻힌 경고…한국 경제, 내년 더 위험하다

한국 경제의 살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지났다. 정권 인수 기간 없이 바로 국정에 임한 현 정부는 촛불의 뒷바람과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갈등과 충돌을 내포한 국정 이슈들을 쾌도난마와 같이 밀어붙였다. 그 결과, 외교·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도 하였지만, 경제정책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요즈음 대부분의 국민은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반신반의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평화 무드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묻혀 점점 가까이서 들려오는 경제·산업 위기의 경고음은 잘 들리지 않는다. 지금 한국 경제는 거시경제·산업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경기는 2011년 8월 이래 지난 3월까지 95개월에 걸친 장기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우리 스스로 이러한 경기 흐름을 바꿀 새로운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경제 문제가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가계 부문 구조적 부실화, 계층 간 갈등 구조 등 사회 문제와 서로 엉켜 경제·사회 생태계 전반의 침하 현상으로까지 악화하여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정책 실험을 하고 재정정책으로 마중물을 퍼붓는다고 해도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국 경제가 구조적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 근원적 요인 중 가장 심각한 것이 한국 제조업의 위기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근 조선업과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난 구조적 문제들은 글로벌 밸류 체인(Value Chain)에서 한국이 점점 이탈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제조업 생산수준은 반도체와 전자제품을 제외하면 2012년 수준보다 낮은 상태에 있다. 연간 제조업 출하액은 지난 5년 사이 5.1% 감소했음에도 종업원 수는 10% 늘어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긴박한 상황이다. 그 결과 제조업 가동률이 2012년 5월 이후 70개월간 80% 미만으로 지속하더니 급기야 올해 3월에는 70.3%로까지 주저앉고 있다. 그러나 정부 내 누구도 살아있는 실체에 칼을 대기 싫어하고 이념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 의식 때문에 구조조정은커녕 구제금융으로 좀비기업을 연명시켜 왔다.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문제를 바라보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반추하게 된다. 그 실체는 무엇이었나? 가장 큰 내부적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추월에 따른 제조업의 붕괴를 막지 못한 데 기인한다. 일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제조업은 중국의 추격·추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산업의 고도화에 실패함으로써 주력 산업이 노쇠화되고 정체에 빠져들고 있다. 특히 중국이 추진 중인 산업정책 ‘Made in China 2025’의 목표는 한국 주력 산업을 추월하는 것이고 백악관이 발표한 25% 관세 부과 대상인 중국 제품 1300여개 품목이 대부분 한국 주력 제조업 상품과 중복된다. 앞으로 한국 주력 기업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우리나라 제조업이 20세기 말 외환 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는 원인은 개별 업종, 개별 기업의 부실 때문만이 아니다. 이것은 산업생태계, 기업생태계, 산업기술생태계의 동반 퇴락의 결과인 것이다. 지난 60여년의 공업화,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는 매 10년 주기로 산업구조 개편을 시도하며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과 확장성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한국의 산업구조는 21세기 들어서면서 변화 없이 방치되며 정체의 덫에 갇혀있다.
 
외환위기 와중에 김대중 정부는 조립산업 중심에서 부품·소재, 중간재 산업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을 과감히 추진했고 때마침 불어온 중국 특수와 맞아 떨어지며 대대적 호황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 후 5년 단임 대통령들이 심각한 착시와 자만에 빠지게 하였다. 아울러 이 시기가 한국 기업이 창업주 시대에서 2세, 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경제의 과잉 정치화, 과잉 이념화 과정에서 위험 회피 성향이 팽배해져 기업의 모험적 투자와 산업의 대변혁 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문제의 본질을 경제생태계의 순환 구조상 문제로 보기보다 생태계 내부의 대립적 관계로 이해했다. 그리고 가계와 기업, 자본가와 노동자, 시장에서의 승자와 패자를 대칭 시키며 노동자, 사회적 약자, 실패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었다. 방대한 재정으로 계층 간, 부문 간 소득 이전을 추진하면서 이것이 결국 미래에 소득 유발을 가져올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빠졌다. 이러한 거시경제적, 제조업의 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일 심각한 것이 고용 위기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생태계 전반을 회생시키는 대신 고임금정책과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공급자 중심의 정책에 치중했다. 그 결과, 일자리 시장은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토해냈고 일자리는 더욱 감소했다. 이러한 정책 실패로 위기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대내외 상황 전개를 고려할 때, 우리 경제는 내년부터 세계 경제 후퇴, 제조업의 장기 침체 속에 수출·건설·투자가 함께 부진에 빠지는 일본형 복합 불황 시기가 도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 경제가 다시 위축되어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질 것으로 보이며 건설 경기 침체와 고용 감소로 내수경기 침체가 지속할 전망이다.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이제는 한국 산업 생태지도를 정밀하게 다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구조의 혁신적 개편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가장 큰 과제는 신산업으로 산업구조의 중심을 이동시켜 나가는 것이다.
 
우선 주력 제조업 위주의 폐쇄형·축소형 산업생태계를 벗어나기 위한 획기적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 신산업 탄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모두가 가라앉는 주력 산업에 안주하게 하는 ‘생각의 정체’이다. 앞으로 이질 산업·기업끼리의 협업 정신은 4차 산업혁명기의 초연결사회에 필수적 정신세계라 할 것이다. 한편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이 노쇠한 기업들의 기득권 지키기를 도와주어 좀비 기업화하는 악습을 타파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을 조성하려면 정치와 정부, 사회 전반의 획기적인 사고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앞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는 규제를 원천 소각하며 전환기의 지원 제도를 대폭 보강하기 바란다. 그리고 중국·일본 등 경쟁국과의 산업 경쟁과 협업체제에 대한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또 앞으로 진행될 남북 경제 협력을 계기로 산업구조 개편의 폭과 범위를 확장하여 한반도 전체의 산업 재배치 구상을 구체화하고 한반도 경제지도를 다시 그리는 기회로 삼기 바란다.
 
이제부터 문재인 정부는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시야를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경제 운용 방식에 대한 통렬한 자성과 진솔한 리뷰 세션을 통해 정책의 수립 방향을 다시 가다듬어야 한다.
 
첫째, 경제정책은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이므로 경제정책 결정자는 시장과 정부, 시장 내부의 관계에 있어서 균형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노동자와 기업가 중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주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해 정책을 수립해야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묵자(墨子)는 “한 눈으로 보지 말고 두 눈으로 보며 한 귀로 듣지 말고 두 귀로 듣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균형 감각의 회복만이 현재 진행 중인 시장의 반격, 생태계의 반란을 잠재울 수 있다.
 
둘째,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치중해 온 노동정책이나 재벌정책, 확대재정정책 등 부분적(piecemeal)·단기적(shortermism) 정책을 넘어 긴 호흡을 가지고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경제생태계 회생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가계생태계, 노동생태계, 산업생태계, 산업기술생태계, 교육생태계가 얼마나 파괴되어 있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셋째, 한국 경제의 골격이 흔들리고 있는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신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 혁신에 과감히 나서고 노동계를 설득하여 노동생산성 개혁에 앞장서기 바란다. 이것이 노동계의 지지를 받는 문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이다.
 
넷째, 이제는 실험적 정책보다 실현 가능한 정책을 중심으로 경제정책을 펴나가고 포퓰리즘적 정책 자세를 버리기 바란다. 이제 경제정책이 정치적 수단의 하나에서 벗어나 전체 국민과 국가를 위한 정책으로 복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청와대 중심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내각에 상당한 권한을 이양하고 경제정책 총괄 기능을 강화하기 바란다. 그리고 경제정책 분야만이라도 코드 인사를 지양하고 인재 풀을 넓게 가동해야 한다. 청와대와 내각의 경제 정책 라인도 거시경제의 위기, 제조업 등 산업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시대 상황에 맞게 재편하기 바란다.
 
문 대통령은 지난 1년간 흔들리는 국정을 안정시키는 데 노고가 많았고 높은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민심은 밥심에서 나온다. 밥심은 인기 영합 정책으로 오래 유지할 수 없고 경제력을 키우는 균형된 실사구시적 리더십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튼튼한 경제력 없이는 평화를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위기의 요인은 항상 주변에 널려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앞으로 4년이나 남았다. 위기 요인을 제거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고 위기에너지가 결집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문 대통령의 예지와 소명의식이 발휘되어야 할 적기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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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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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