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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쓰고 도포 두른 '21세기 선비들' 광화문에서 장원급제 도전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대통령상을 차지한 수상자가 어사화를 쓰고 유가행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대통령상을 차지한 수상자가 어사화를 쓰고 유가행렬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갓과 도포, 한복을 갖춘 이들이 모여들었다. 광장 바닥에 앉은 이들은 글감의 주제가 공개되자 글을 짓기 시작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뒤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써내려갔다. 광장 앞에 설치된 무대에선 어린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올라와 사서삼경 구절을 또박또박 읊었다.

 
인간의 올바른 도리, 자연의 이치, 인간과 자연의 합당한 관계 등을 공부해 온 ‘21세기 선비’들이 경복궁 앞 광화문광장에 모여 전통 과거시험을 재연했다.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가 주최한 ‘제17회 대한민국 서당문화 한마당 대회’에서다. 12~13일 이틀간 열린 행사는 한문으로 글을 읊고, 짓고, 쓰는 실력을 뽐내는 경연과 각종 문화체험 행사가 펼쳐졌다.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유생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협동제기놀이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유생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협동제기놀이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매년 전북 남원에서 개최된 행사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박성기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은 “경복궁과 육조거리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중심으로서 오백년 역사가 숨 쉬고 경국제세의 문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라며 “초등 교육기관 역할을 했던 서당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고귀한 전통문화를 다시 살리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뜻으로 광화문에서 행사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총무국장인 한재우 훈장은 “광화문광장 북쪽에 위치한 경복궁에선 조선시대 관리를 뽑는 시험인 ‘대과’가 열렸다”며 “궁이 아닌 광장에서 행사를 열어 보다 많은 시민과 함께하려 했다”고 말했다.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유생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투호놀이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유생 복장을 한 어린이들이 투호놀이를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날 경연은 사서삼경 구절을 외우는 ‘강경(講經)’, 당일 주어지는 주제로 한시를 짓는 ‘제술(製述),’ 서예 기량을 겨루는 ‘휘호(揮毫)’의 3개 분야로 진행됐다. 경연에는 유치원생부터 고령의 어르신, 외국인까지 1350여명이 응시했다. 대부분 전통 서당교육을 경험한 이들이다. 이들은 갓과 도포, 한복을 차려입고 경연을 벌였다. 여기에 전통민속놀이, 탁본·휘호 등 전통문화 체험에 참여한 이들까지 합치면 행사 참가자는 2000여명이 넘는다.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대통령상을 차지한 수상자(오른쪽)가 어사화를 쓰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제17회 대힌민국서당문화한마당 대회가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대통령상을 차지한 수상자(오른쪽)가 어사화를 쓰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응시자들의 경연 결과는 이날 오후 3시가 넘어 발표됐다. 김영근 성균관장과 심사위원 59명의 채점을 거쳐 대통령상·국회의장상·국무총리상 등 총 316개의 상과 총 5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됐다. 특히 대상에 해당하는 대통령상 수상자는 임금을 상징하는 곤룡포를 입은 시상자로부터 상과 홍패(급제 증서)를 받았다. 또한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예복을 갖춘 차림으로 가마를 타고 유가 행렬을 벌였다. 과거 조선시대 궁중에서 진행됐던 과거급제 의식을 재현한 것이다.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7회 대한민국 서당문화한마당에서 어린이가 탁본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7회 대한민국 서당문화한마당에서 어린이가 탁본체험을 하고 있다. [뉴스1]

행사는 무사히 끝났지만, 아직 과제는 많다. 현재 한국서당문화진흥회에 소속된 전국 서당은 41곳이다. 이 중에는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도 있지만, 훈장만 있고 학생은 없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한다. 
 
박성기 이사장은 “1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서당은 일본 강점기 조선 정신문화를 말살하려는 우민화 정책으로 폐쇄되면서 한 차례 위기를 겪었음에도 명맥을 이어왔다"며 “하지만 지금은 방학을 이용해 서당에서 배우는 일반 초·중·고 대학생들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정식으로 서당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약 20명에 불과해 서당의 맥이 끊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당문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통 한학 교육 문화는 오히려 중국에서 관심이 많다. 한재우 훈장은 “올해 서당문화한마당 행사엔 중국 국무부 산하 싱크탱크인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교수들이 참석 의사를 밝혀왔다”며 “급작스러운 사정으로 아쉽게 불참했지만 한국 서당문화를 벤치마킹해 전통 교육 문화를 재건해 보려는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공자의 나라인 중국이지만 문화대혁명 등으로 인해 사라진 전통문화의 원형을 한국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한재우 훈장은 이런 중국의 움직임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했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단절된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자기 생각을 대부분 한문으로 표현했지만, 현대 한국인에겐 한문보다 영어가 더 익숙하다”며 “모든 이가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선조의 삶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한문 독해 능력은 필요하다. 이를 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서당교육”이라고 말했다. 
 
현재 남원의 서당에서 다문화,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재우 훈장은 “올해 한국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각종 사회 문제는 결국 인간 심성과 행동 양식의 문제”라며 “현상을 원리부터 생각하며 관계와 도리를 중요시하는 서당 교육은 인간 본연의 성품을 회복해 참다운 인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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