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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로 빛난 부자의 향기…록펠러가 소장품 경매 최고가 기록

미국 뉴욕 맨해튼 53∼54가에 위치한 현대미술관(MoMA)은 원래 ‘석유왕’ 존 D 록펠러(1839~1937) 가문의 저택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현대미술 애호가로 록펠러의 며느리였던 애비 앨드리치가 친구 두명과 함께 MoMA를 만든 뒤 저택 터까지 기증했다. 이후로도 록펠러 가문의 MoMA 후원은 계속됐다.
 
록펠러 가문의 손자이자 앨드리치의 아들인 데이비드 록펠러는 1915년 이 저택에서 태어나 지난해 3월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동갑내기 아내 페기(1996년 작고)와 함께 모은 소장품 1550점이 최근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완판됐다.
생전의 데이비드와 페기 록펠러 부부. [AP=연합뉴스]

생전의 데이비드와 페기 록펠러 부부. [AP=연합뉴스]

 
뉴욕 언론이 ‘세기의 경매’라고 명명한 ‘페기·데이비드 컬렉션’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8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진행된 경매를 통해 총 8억2800만 달러(약 8800억원)에 낙찰돼 단일 소장자의 컬렉션으로는 사상 최고기록으로 남았다. 이전까지는 2009년 파리에서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컬렉션이 기록한 4억8400만달러였다.
 
1일부터 12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판매된 600여 점의 소액 컬렉션 낙찰금액 460만 달러까지 포함하면 8억3000만 달러 이상이다. 경매 전 예상했던 5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는 ‘대성공’이었다.
 
게다가 경매의 수익금이 전액 기부된다. 유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록펠러 부부의 뜻에 따른 것이다. 부부는 생전에 이미 컬렉션 경매를 계획했다. 기부금을 받을 12개 단체도 20년에 걸쳐 골라놓은 상태다. MoMA와 하버드대, 록펠러대, 음식과 농업을 연구하는 스톤반스센터 등이 포함됐다.  
피카소 작 '꽃바구니를 든 소녀'. [AP=연합뉴스]

피카소 작 '꽃바구니를 든 소녀'. [AP=연합뉴스]

 
록펠러 컬렉션 가운데 최고가는 파블로 피카소의 1905년 작품인 ‘꽃바구니를 든 소녀’. 1억1500만 달러(약 1240억원)에 낙찰됐다. 피카소 작품 가운데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경매가 1억7937만 달러(약 2025억원)에 낙찰된 ‘알제의 여인들’에 이어 두번째로 비싼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소설가인 거트룬드 스타인이 소장했던 이 작품을 데이비드 록펠러가 손에 넣은 것은 1968년 12월. 록펠러를 포함한 뉴욕의 거부 5명이 MoMA에 모여 스타인이 남긴 600만 달러 상당의 미술 소장품을 함께 구입한 뒤 제비뽑기에서 1번을 뽑은 데이비드가 선택한 작품이다. 이후 50년간 그의 65번가 자택 서재에 걸려 있었다.
 
클로드 모네의 ‘만개한 수련’이 8470만 달러(약 900억원), 앙리 마티스의 ‘오달리스크’는 8075만 달러(약 860억원)에 각각 낙찰돼 그 뒤를 이었다. ‘만개한 수련’의 경우 낙찰 예상가였던 5000만 달러를 크게 뛰어넘으며, 모네 작품으로는 최고 낙찰가 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8100만 달러였다.  
 
록펠러 부부의 아들인 데이비드 주니어는 크리스티 매거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견이 일치해야만 중요한 작품을 샀다”며 “어머니는 뛰어난 안목으로 작품을 집안 곳곳에 배치했다”고 말했다. 특히 ‘만개한 수련’은 부부가 집을 나서거나 밤에 자러 갈 때마다 보기 위해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지난 8일(현지시간) 크리스티 경매장에 걸린 앙리 마티스의 작품 '오달리스크'. [A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크리스티 경매장에 걸린 앙리 마티스의 작품 '오달리스크'. [AP=연합뉴스]

 
마티스의 ‘오달리스크’ 역시 낙찰 목표가는 7000만 달러를 뛰어넘으면서 마티스 작품 가운데 최고 낙찰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 최고 기록은 4880만 달러였다. 이 밖에 록펠러가 부부가 후원한 디에고 리베라의 1931년도 작품 ‘경쟁자들’(The Rivals)이 980만 달러에 낙찰돼 남미 작가의 작품으로는 최고 기록을 세웠다.
 
디에고 리베라의 1931년 작품 '경쟁자들'

디에고 리베라의 1931년 작품 '경쟁자들'

이번 경매에는 록펠러 부부가 한국을 여행하면서 사들인 소반과 주칠장, 반닫이 등을 포함한 전통공예품 22점도 선보였다. 록펠러 부부는 1978년과 1982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통인시장을 샅샅이 훑을 정도로 한국의 전통 공예품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구입한 조선시대 주칠장은 이번 경매에서 3만 달러 정도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 목각인형 두 점은 데이비드 록펠러의 어머니 앨드리치가 하버드대 입학 기념으로 선물한 것으로, 데이비드 록펠러가 1930년대 하버드대 기숙사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지낼 정도의 애장품이었다.
조선시대 주칠장. [사진=크리스티]

조선시대 주칠장. [사진=크리스티]

조선시대 목각인형. [사진=크리스티]

조선시대 목각인형. [사진=크리스티]

조선시대 목각인형. [사진=크리스티]

조선시대 목각인형. [사진=크리스티]

 
코너 조던 크리스티 부회장은 “이번 컬렉션은 데이비드와 페기의 특별하고 다양하면서도 특이한 취향을 보여주는데, 한국은 특히 이들에게 중요했다”면서 “허드슨 파인스 집의 2층 복도에 주칠장을 세워뒀고, 메인주 집 마당을 한국 조각상들로 장식했다”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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