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의 중력’ 세션에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 오뚝이들이 우주 공간을 탐험했다. 안무가 요안 부르주아의 공연작이다. 행사에서는 2018 봄·여름 남성복 런웨이를 재현했다.

우주 비행 필수품과 우주비행사 모형을 둔 ‘이륙’ 세션. 곳곳에 에르메스 제품을 배치했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꾸민 행사장

우주선 내부를 연상시키는 행사장
본격 ‘우주와의 도킹’ 전, 가벼운 ‘워밍업’이 있었다. 지난해 6월 파리에서 열린 2018 봄여름 컬렉션의 런웨이가 재현됐다. 하지만 단순한 ‘리바이벌’이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듯, 10여 명의 중국 배우·앵커·아티스트 등을 캣워크에 세워 주목도를 높였다.
모델들은 ‘럭셔리 스포츠룩의 업그레이드’로 정의될 수 있는 의상들을 입고 나왔다. 반짝이는 트랙 팬츠, 오버사이즈의 모자 달린 티셔츠, 레이싱 재킷 등 캐주얼 아이템이 주를 이뤘지만, 절제된 실루엣과 고급스러운 페이턴트 소재를 써 여느 스트리트 패션과의 차별화가 두드러졌다. 컬러 역시 와인·회색·블랙 등에 형광 그린·레드·로열 블루 등을 조합해 강약을 조절했다. 의상·가방 등에 들어간 야구공 자수와 체인 그래픽은 단순하면서도 위트 있는 포인트가 됐다.

드디어 쇼가 마무리되고 저 멀리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 왔다. “아름다운 우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바로 여행을 시작할까요?”
가상현실, 360도 카메라 패션을 체험하다

우주선 내부를 연상시키는 행사장
‘실험실’ 세션은 보다 위트가 넘쳤다. 어느 우주 과학자의 연구 현장이 재현된 듯 했다. 곳곳에 놓인 비이커와 실린더…. 그런데 그 속에는 타이·샌들·열쇠고리 등이 가득 차 있었다. 현미경도 예상을 뛰어 넘었다. 눈을 갖다대자마자 에르메스의 실크·가죽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 수 있는 동영상이 재생됐다.
이번 행사는 특히 다양한 체험이 더해졌다. 강철로 만든 ‘우주선 컨트롤 센터’ 세션은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도록 꾸며 미래적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여기에서 관람객이 눈을 뗄 수 없는 건 실제 상황판이 아니라 게임. 닻 모양의 샹 당크르(Cha<00EE>ne d’ancre) 체인을 본딴 뱀을 조작해 움직이는 체험이었다.

어느 우주 과학자의 연구실을 그린 ‘실험실’ 세션. 각종 실험도구 안에 신상 액세서리를 짝지었다.

“미래는 과거로부터의 혁신에서 온다”

우주 하면 흔히 미래를 떠올린다. 하지만 ‘2018 멘즈 유니버스’를 기획한 에르메스 남성복 디자이너 베로니크 니샤니앙(사진)이 말하는 미래는 사뭇 다르다. 이른바 ‘레트로 퓨처리즘’이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 과거로부터 혁신을 이끌어낸다는 뜻이다. 이번 행사 역시 우주라는 미래적 공간과 브랜드의 유산과 가치를 결합시킨 시도다. 베로니크는 이탈리아 쿠튀리에 ‘세루티’에서 12년 간 경력을 쌓고, 1988년 이후 지금까지 에르메스 남성복 디자이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에르메스에서 꼭 30년을 지냈다. 브랜드와 처음부터 뜻이 통했던 것, 반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이 혹은 브랜드가 바꾼 것은 무엇인가.
- “처음 작업을 할 때부터 에르메스와 나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해왔다. 장인 정신에 대한 열정과 탁월한 솜씨, 그리고 혁신에 대한 가치를 높이 산다. 내가 이토록 오래 한 브랜드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한 자리에 있다 보면 여느 디자이너들보다 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다.
- “부담감보다 오히려 새로운 도전들이 더 흥미롭다. 지속적으로 다시 바꾸고, 다시 도전하고, 다시 창조하는 작업이 영감을 주고 동기를 부여한다. 가령 앞으로는 네오프렌(잠수복 소재), 라피아(야자수 섬유) 또는 종이를 소재로 만드는 컬렉션도 염두에 두고 있다. 직물에 대한 혁신과 리서치는 내 주요한 임무다.”

- 컬러와 직물, 질감의 조화를 강조하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는데.
- “남성복을 디자인하는데 있어서 이 세가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소재마다 어울리는 특유의 색상이 있다. 그래서 매 시즌 소재와 컬러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컬렉션이라면.
- “30년 전 첫 컬렉션을 꼽겠다. 빨강 캐시미어 코트를 디자인했는데, 당시 남성복으로는 예상치 못했던 탓에 꽤 성공적이었다. 또 하나는 2002년이다. 이때 ‘핀 스트라이프’로 컬렉션을 디자인했는데, 클래식한 맞춤 수트에 적용한 핀 스트라이프가 아니라 가죽과 다른 직물에 시도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 현재 패션 트렌드의 대세는 젠더리스와 스트리트 무드다. 럭셔리 남성복 디자이너로서는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인데.
- “트렌드를 꼭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가장 큰 오해다. 스스로 만족한다면, 유행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우주 여행을 그린 ‘시간 여행’ 세션. 미래의 공간에서 8벌의 재킷을 오래 된 유물처럼 전시했다.
상하이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에르메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