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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봤소 십이월' 달력이 완판된 이유

 문화 콘텐트로 인기 끄는 사투리
 
올 초 전라남도 광주 송정시장에 갔다가 인쇄물 두 장을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하나는 사진이고, 하나는 엽서다. 시장 안에 있는 서봄 사진관에서는 흑백사진을 즉석으로 찍어준다. 가격은 5000원. 서울에서 KTX를 타고 송정역에 도착한 터라 비슷한 시간대에 방문한 관광객이 모여들어, 사진관에는 이내 긴 줄이 섰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흑백 사진관은 더이상 옛 것이 아니라, 새로운 체험 공간이었다. 쇠락의 길을 걷다 청년 상인들의 입주로 활기를 얻고 있는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기념품이 아날로그 인쇄물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관광객들의 손마다 사진과 엽서가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엽서의 경우 디자인 가게 ‘역서사소’에서 샀다. 이름이 특이한데 ‘여기서 사시오’라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다. 이곳은 사투리가 쓰인 엽서ㆍ달력ㆍ연필 등 팬시 상품을 판다. 사투리 고백 엽서가 인기였는데 색색의 종이에 글귀만 커다랗게 적혀 있다.  
 
‘있냐-니는 시상 권있는 내야 강아지여(있잖아-너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나만의 강아지야)’
 
‘나으 가슴이 요로코롬 뛰어분디 어째쓰까(내 가슴이 이렇게 뛰는데 어떡하지)’
 
이런 게 팔릴까 싶다지만, 웃다가 지갑을 열었다. 축하 카드로 쓰기 위해 ‘무자게 축하항께 쌔주나 한잔허야 쓰것소’가 적힌 카드를 샀다. ‘여간 좋은 오월’ ‘욕봤소 십이월’ 등이 적힌 2018년 벽걸이용 달력은 이미 품절이었다. 전라도 말이 적힌 팬시 상품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경상도ㆍ제주도 말 제품도 만든다. “사투리는 그저 촌스러운 말이 아니다”는 문구가 가게 벽면에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역서사소 뿐 아니라 요즘 사투리를 활용한 디자인 제품이 눈에 띄게 출시되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작품 중 ‘사라지는 제주 방언을 지키기 위한 브랜드 디자인’도 그 중 하나다. 유네스코 발표에 따르면 제주어는 소멸 위기 언어 5단계 중 4번째 단계인 ‘심각한 소멸위기의 언어’로 지정됐다. 이들은 제주어 보존을 위해 캠페인 대신 디자인을 택했다. 제주 풍경 일러스트와 제주도 사투리를 결합한 노트ㆍ스티커 등을 디자인해 공모전에 참가한 이유였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사투리는 틀린 말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하면서부터다. 책 『방언의 발견』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일본어를 중심으로 교육을 하되, 일본어를 모르는 식민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제한적이나마 조선어 교육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현대 서울말을 표준으로 정했고, 사투리는 교정해야 할 비공식적인 언어가 됐다. 표준말 쓰기 운동, 방송심의 규정 등을 통해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의 지위가 공고해졌다. 그 사이 대중 매체에서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몰상식하게 그리거나 희화화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투리를 쓰는 지식인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랬던 사투리가 이제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예쁜 지역 말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 반갑다. 역서사소에서 만난 사투리 엽서는 재밌는 문화 콘텐트로 대접받고 있었다. 획일적인 것보다 다양하게, 문화 현장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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