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꺼지기 전 환하게 빛나다

 an die Musik: 슈베르트의 마지막 해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이 부른 ‘바위 위의 목동’이 수록된 음반. 재킷 그림은 슈베르트 친구들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 모습이다.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이 부른 ‘바위 위의 목동’이 수록된 음반. 재킷 그림은 슈베르트 친구들의 모임인 ‘슈베르티아데’ 모습이다.

요즘은 슈베르트를 많이 듣는다. 바흐의 바로크적 정밀함과 엄격함을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슈베르트 음반을 더 자주 뽑아 든다. 이유를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슈베르트 음악에 흐르는 ‘선율’(melody)에 오랫동안 젖다 보니 이제는 내 안에 그 노래가 피처럼 흐르는 것 같다. 그래서 갈증 나는 사람이 물을 찾듯 슈베르트 음악을 자꾸 찾게 된 것 아닐까.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의 삶 막바지에 만든 것들이다. 작품의 완성 시기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최후의 해 1828년에 몰려 있다. 이 때의 슈베르트는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어쩌면 회생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서둘러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몰려 있었다. 그는 몇 년째 심각한 질병과 싸우고 있었다.  
 
병은 매독이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곡 ‘음악에 부쳐’(An die Musik)의 노랫말을 지은 시인 쇼버와 어울려 다니다가 감염됐다고 알려졌다. 난치병에 걸린 슈베르트는 수은요법 등 인체에 치명적인 치료법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투병 중 친구에게 쓴 편지엔 절망만 가득하다. “사랑과 우정의 행복은 고통만을 안겨줄 뿐이며, 모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광이 꺾이고 마는 사람을 상상해 보게.” 쇼버는 병이 옮을까 두려워 발길을 끊었다.  
 
병세는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투병 중에도 슈베르트는 빠른 속도로 악보를 메워나갔다. 그의 음악 중 가장 빛나는 작품들이, 그것도 엄청난 양이 마지막 해에 탄생했다. 나의 많은 애청곡들도 이때 지어졌다. 1828년 초, 슈베르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환상곡(D.934)을 완성했다. 전 악장이 쉼 없이 이어지는 이 작품은 규모가 너무 커서 그랬는지 초연 때 퇴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박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8월에는 가곡에 몰두했다. 나중에 가곡집 ‘백조의 노래’(D.957)로 묶이는 노래들이다. 한 달 만에 열 세곡을 지었으니 놀라운 속도다. 이 가곡집은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와 같은 연가곡은 아니지만 슈베르트 가곡이 도달한 최고의 경지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세레나데’와 ‘해변에서’(Am Meer), ‘그림자’(Der Doppelg<00E4>nger)와 같은 걸작이 포함되었다. ‘그림자’는 불길한 느낌을 드리우지만 슈베르트 최후의 심경이 투영되어 있다.
 
9월에는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세 곡(D.958,959,960)을 완성한다. 모두 네 악장씩의 대곡들인데 역시 한달 만에 끝냈다. D.960에 대해 어떤 평론가는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하고 탄식했다. 촛불이 꺼지기 전 환하게 빛을 발하듯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른 자만이 쓸 수 있는 음악이란 뜻이다. 우리는 켐프, 브렌델, 리흐테르의 연주를 번갈아 들으며 우열을 논하지만 음악이 흐르면 황혼을 바라보는 슈베르트만 남는다.  
 
가을이 왔다. 10월에 슈베르트는 ‘바위 위의 목동’(D965)을 완성한다. 10분이 넘는 이례적 길이에 피아노와 클라리넷이 반주하는 독특한 형식이다. 노래는 중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이 세상의 소망을 잃고 나 홀로 외로이 남는다”고 하고는 갑자기 희망을 노래한다. “마음은 알 수 없는 힘으로 하늘에 날개 친다. 봄이 왔다. 자, 여행을 떠나자!” 그러나 슈베르트의 봄은 오지 않았다. 한 달 뒤 11월 19일 그는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최근 슈베르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선율이 흘러나오는데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다.” 신의 손길이 닿은 듯한 그 선율들은 서른 살 청년의 눈물에 젖어 있다. ●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