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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들은 커피만 마시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오래 된 미드 ‘프렌즈’에는 인상 깊은 동네 카페가 등장한다. 대머리(가 아니면 애써 머리를 민) 주인장은 이웃들이 늘어놓는 온갖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능청스럽게 대꾸하거나 들은 이야기를 슬쩍 흘리기도 한다. 친구들은 약속하지 않아도 “어이, 언제 왔어”라며 자연스레 모인다. 혼자든 같이 오든 커피를 홀짝거리며 함께 수다를 떤다. 통영에도 그런 카페가 있다. 강구안 뒷골목 ㅅ카페다.
 
강구안은 자연이 만든 항구로, 조선시대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정박하는 해군 기지였다. 그 뒤로 고깃배들이 드나들면서 시장이 생겼고 장날이면 1930년대에도 수 만 명이 찾아와 길이 마비될 정도였다. 80년대 중반까지 통영과 부산을 잇는 여객선이 오고 갔다. ‘충무김밥’도 이때 태어났는데, 이른 새벽 떠나는 손님들을 위한 맞춤 도시락이었다. 2000년대 초 조선소가 번성하면서 골목 구석구석까지 술집들로 가득했다. 최근에는 동피랑 벽화마을이 뜨면서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강구안은 ‘핫’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 경기가 침체하면서 술과 흥이 넘치던 강구안 골목도 시들해졌다. 여객선 손님을 받던 여관은 벌써 문을 닫았다. 선주들과 조선소 직원들이 찾던 1층 양주집도 망했다. 뒤이어 관광객들을 노리고 문을 연 식당도 금세 문을 닫았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비어있던 자리에 3년 전 조그만 카페가 들어섰다. 비린내와 술 냄새뿐이던 골목에 갓 볶은 원두 냄새가 피어올랐다.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통영에 오면 카페부터 들른다. ‘프렌즈’ 주인장을 빼다 박은 사장이 “행님 언제 오셨습니까”라며 반갑게 맞아준다. “오늘은 뭘 드릴까에”라며 정성스레 커피 한 잔을 내린다.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별일 없었는지 물어본다. 기다렸다는 듯이 ㄱ이 새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형님도 아는 사람이다, ㄴ이 서피랑에 서점을 열기로 했다, 어저께 ㄷ형님이랑 술 마셨는데 바다에 빠질 뻔했다, ㄹ호프 사장님이 힘들다고 가게를 내놨다 같은 자질구레한 소식들을 생생하게 업데이트해준다. 맞장구치다 보면 ㄱ과 ㄴ에 ㄷ형님까지 약속이나 한 듯 들어온다.
 
단골들은 커피만 마시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음악도 들어볼 겸 가수를 초대해 볼까”하고 이야길 던지면 옆에 있는 친구가 “인디밴드를 안다”며 연락처를 건넨다. 좀 더 던지다 보면 그럴싸한 계획이 서고 결국 진짜 콘서트가 열린다. 싱어송라이터 정밀아ㆍ도마ㆍ신승은ㆍ김태춘이 모두 카페에서 처음 만나 공연도 즐기고 다찌에서 뒤풀이까지 했다.  
 
콘서트뿐만 아니다. 과학책방에 주주로 참여한 덕분에 과학자들을 꽤 많이 안다. “한 달에 한 번씩 과학자를 초대하면 어떨까”하고 말을 꺼냈다. 말이 씨가 되어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천문학자ㆍ해양생물학자ㆍ과학철학자ㆍ생명과학자ㆍ통계물리학자ㆍ이론물리학자ㆍ과학저술가까지 ㅅ카페에 찾아와 강의를 했다.  
 
통영 카페의 전통은 1950년대 ‘성림다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단골들도 우리처럼 커피 마시며 수다 떨다가 친구를 위해 전시회를 열어주면 어떨까하고 의기투합했다. 53년 겨울 40여 점의 작품으로 성림다방에서 진짜 전시회를 열었다. 이중섭 화가의 첫 번째 개인전이었다. ‘흰소’ ‘황소’ ‘부부’ ‘가족’ ‘달과 까마귀’ 같은 대표작은 모두 통영에서 나왔다. ●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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