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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신발, 돌아오지 못하는 강 건너는 마법의 배

[드로잉 한국고대미술] 삶의 행로 담긴 신발 
나주서 출토된 금동신발의 드로잉, 16×21㎝, 종이에 연필 및 수채.

나주서 출토된 금동신발의 드로잉, 16×21㎝, 종이에 연필 및 수채.

신발만 덩그러니 그려 놓고 가장 많은 감동을 줬던 그림은 아마도 고흐의 신발그림일 것이다. 낡아빠진 자신의 가죽구두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얼굴 자화상보다 더 절절한 내면의 고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 작품만이 아니라 여러 점을 그렸다. 때로는 신발을 뒤집어 바닥을 보여 주기도 한다. 어수선하게 풀려 있는 신발끈, 울퉁불퉁해진 가죽표면들은 신발 주인의 고단한 삶을 엿보게 한다.
 

화초 사이로 보이는 봉황 문양
신비한 새의 날갯짓 아름다워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발등엔
버선코 곡선 같은 용머리 장식

공주 무령왕릉, 고창 봉덕리 등
비범한 조형성의 신발도 매력

특이하게도 신발그림은 신발 주인의 부재, 벗어 놓고 사라진 주인의 아우라를 강렬하게 풍긴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고흐 그림의 신발 주인공을 신성한 노동의 직업인 농부였을 거라고 착각했다. 농부이든 화가이든 고흐 그림 속의 강렬한 회화적 필치가 신발 주인공의 육체적 노동의 시간을, 걷고 또 걸었던 삶의 행로를 웅변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의 주빈국이 한국이었던 해의 부대행사로 베를린 시립미술관 에프라임 팔레 무제움에서 내 개인전이 개최된 적이 있었다. 당시 전시제목이 ‘예술을 위한 신발’이었다. 전통 꽃신이나 고무신이 마치 배처럼 느껴져서 거의 1년가량 신발그림만을 그렸었다.
 
 
익산서 나온 금동신발엔 귀여운 율동미
 
나주 금동신발 앞쪽 발등의 용머리 장식이 인상적이다.

나주 금동신발 앞쪽 발등의 용머리 장식이 인상적이다.

삶을 떠나 죽음으로 가는 이행과정에 강이 놓여 있고 이 강을 건너게 해 주는 배가 있다는 전설은 동서양에 구별 없이 발견된다. 내 그림 속에서 벗어 놓은 신발은 주인의 일시적 부재뿐 아니라 항구적 부재, 즉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위한,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는 배로 변모했다.
 
그런데 신발그림을 그리던 당시 나는 백제의 유물, 금동신발들을 잘 몰랐다. 알았다 하더라도 그냥 지식으로 스쳐 지나갔던지 내 의식 속에는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다. 10년이 더 지난 후 유물연구를 하러 박물관 답사를 다니다가 무령왕릉 출토 왕비의 신발을 보았다. 비록 바닥에 스파이크 모양의 징이 있을지라도 그 간결한 신발형태와 위에 새긴 비범한 문양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말로 다른 세계로의 강을 건너게 해 줄 법한 마법의 배이자 꽃신이 거기에 있었다. 문양들의 화려한 기세가 육각형의 경계선을 뒤덮고 있고, 화초 사이사이로 봉황처럼 보이는 신비한 새들의 날갯짓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공주에서는 무령왕릉 외에도 수촌리 4호분에서 왕비의 금동신발과 유사한 화려한 투각의 신발이 나왔고, 수촌리 1호분에서는 격자무늬과 T자문양의 단순명료한 형태의 금동신발도 나왔다.
 
고창서 나온 금동신발의 드로잉, 18.5×26㎝, 종이에 연필과 수채.

고창서 나온 금동신발의 드로잉, 18.5×26㎝, 종이에 연필과 수채.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온 곳인 익산의 입점리에서도 간결하고 세련된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타출(打出)기법의 점들로 이루어진 긴 선이 격자무늬를 만들고 각 선들이 교차하여 만들어진 구획 내부에 꽃잎 세 장이 들어 있다.
 
어린이 것으로 보이는 익산의 또 다른 금동신발은 격자무늬를 만드는 긴 선이 두 줄로 반복되어 만들어졌다. 교차 형태가 정사각형보다는 마름모꼴에 가까워 신발표면에서 귀여운 율동미를 느낄 수 있다.
 
공주와 익산이 있는 금강뿐 아니라 더 남쪽인 영산강의 나주에서도 정촌 고분에서 매우 화려한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귀갑형 기본 구획 안에 역동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신발 바닥에는 연꽃무늬와 도깨비 무늬가 정교하게 투각돼 있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신발 앞쪽 발등에 용머리 장식이 과감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추가됐다는 점이다. 앞으로 밑으로 흘러내렸다가 다시 치켜드는 용의 곡선이 조선시대 버선코의 곡선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창덕궁 궁궐의 기와선 같아 보이기도 하다.
 
 
신라 식리총·황남대총 고분서도 출토
 
고창 금동신발의 투각 기술이 놀랍다. 형상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고창 금동신발의 투각 기술이 놀랍다. 형상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나주에서 조금 북쪽에 있는 고창의 봉덕리에서도 재미있는 형상의 금동신발이 나왔다. 투각 기술도 놀랍거니와 귀갑형 속에 들어 있는 형상들을 관찰하자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할 것 같은 진기한 새들, 징벌하기보다 즐거움과 선함을 선물로 줄 것 같은 이상한 나라의 새들이 거기에 들어 있다.
 
고창은 청동기 유적 고인돌로 더 유명한 곳이다.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한반도에 있고 그중에서도 전라도에 집중돼 있다. 고창에만 400여 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완만한 언덕에 각각의 형세마다 다른 느낌으로, 가까이 있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한 고창의 고인돌들은 현대의 대지예술이 추구하듯 자연과 예술의 진실스러운 만남이 성공한 장소로 여겨진다. 평온해 보이는 대지 위에 기쁨의 돌이 있다면 이곳의 돌들이 아닐까 싶다. 백제시기 이전부터의 긴 역사를 가진 고창이기에 그곳의 금동신발은 더 특별해 보인다.
 
물론 백제 지역에서만 금동신발이 나온 것은 아니다. 신라의 식리총 고분과 황남대총 고분, 경북 의성에서도 조문국의 금동신발이 출토됐다. 식리총 금동신발은 귀갑형 기본 구조 속에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점에서 공주 무령왕릉, 고창 봉덕리,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들과 비교할 부분이 많다. 황남대총과 의성의 금동신발은 T자형 연속무늬라는 점에서 공주 수촌리 1호 금동신발과 매우 흡사하다.
 
이렇게나 많은, 황금보다 더 귀한 신발들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 실제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아니라 이 세상을 마치고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위해 만들어 준, 깊은 강도 배처럼 건너가게 해 줄 것 같은 신비로운 신발들. 고대 한국의 여러 왕국은 전쟁만 한 게 아니라 예술의 교류와 변주, 비범한 조형성을 만개시킨 놀라운 창조자들이었음이 틀림없다.
 
김혜련 화가·예술학 박사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이론 석사를 받았다. 베를린예술대에서 회화실기로 학사 및 석사를, 베를린 공대 예술학과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베를린과 파주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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