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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이끌던 특허, 소송·로열티로 기술 옥죄는 괴물 되다

[비주얼 경제사] 특허의 두 얼굴
육중한 기계장치가 돌아가고 있다. 검은 복장의 인물이 기계의 레버를 돌린다. 사람들은 노란색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다. 턱 밑에 수건을 드리운 채 고개를 쳐들고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오른편의 한 사내가 머리카락이 쭈뼛 선 채 당황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고 있다. 이 그림은 어떤 광경을 그리고 있을까? 인물들이 위치한 장소는 어떤 곳일까?
 
[그림1] 로버트 시모어, ‘증기 면도’, 1828년

[그림1] 로버트 시모어, ‘증기 면도’, 1828년

그림1은 1828년에 제작된 ‘증기 면도’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영국의 캐리커처 작가 로버트 시모어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 생겨난 가상의 미용실을 묘사했다. 양쪽 창문 너머로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이 자동기계를 통해 화려하게 탈바꿈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림의 중앙은 남성 고객들이 앉아있는 공간이다. 이들이 새로 도입한 거대한 면도기계에 얼굴을 맡기고 있다. 면도크림에 뒤이어 면도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작동하게 되는데, 아뿔싸! 그만 손님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 불운한 손님은 베인 코를 움켜쥐면서 벌떡 일어나고, 옆에 앉은 이들은 공포에 질려 ‘멈춰! 멈춰!’하고 소리친다.
 
얼핏 첨단기술로 보이지만 성능이 불완전한 기계가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는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1936년에 발표된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를 본 독자라면 비슷한 광경을 기억할 것이다. 공장주가 노동자들의 식사시간을 줄이기 위해 식사기계를 시연하는 장면이다. 의자에 앉아 위치가 고정된 채플린의 입으로 식사기계가 각종 음식물을 차례로 날라 오는데, 코미디 영화의 기계답게 당연히 오작동을 한다. 채플린의 얼굴 위로 옥수수 알들이 날아다니고 스프가 쏟아지고 디저트 케이크가 뭉개진다. 불안정한 기계는 인간에게 도움이 아니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익살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채플린은 한 세기를 앞선 그림1의 작가와 매우 닮았다.
 
 
중세 길드의 도제식 기술 전수 대체
 
[그림2] 와트와 볼턴이 개발한 증기기관, 1784년.

[그림2] 와트와 볼턴이 개발한 증기기관, 1784년.

그런데 그림의 정중앙, 웅장한 기계에 적힌 ‘특허(PATENT)’라는 큰 글씨가 눈길을 끈다. 왜 굳이 증기 면도기계가 특허 출원된 것임을 강조했을까? 산업혁명의 기운이 한창 퍼져가던 1820년대에 특허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발명가와 기업가는 특허를 통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보호받고자 했고, 소비자들은 특허를 첨단기술을 증명하는 확인서로 여겼다. 따라서 큰돈을 들여 새로 개발된 미용기계를 도입하는 주인으로서는 이것이 특허를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는 게 당연했다.
 
특허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중세 유럽에서는 수공업 장인들이 길드라는 동업조합을 구성해 활동했다. 길드에 속한 장인들은 도제를 받아 후속세대에게 기술을 가르쳤는데 이들에게 기존의 기술 수준으로 제품을 만들어 기존의 가격대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도록 강제했다. 길드, 그리고 국가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공정한’ 가격으로 공급해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삼았다. 독특한 기술로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오늘날의 ‘경제인’과는 사고방식이 사뭇 달랐던 것이다. 따라서 길드 전통이 강한 중세사회에서는 특허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장거리 무역이 발달한 일부 대도시에서는 전통적 경제관념이 도전을 받았다. 특히 이탈리아 최고의 상업도시 베네치아에서는 각처에서 들어오는 기술자와 발명품이 넘쳐났다. 세속적이고 이재에 밝은 베네치아의 정부는 새로운 기술을 보호하면 국부가 그만큼 늘어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1474년 세계최초의 특허법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특허는 왜 필요했던 것일까? 발명을 하려면 많은 수고와 비용이 든다. 그런데 발명품을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면 발명가는 손해를 보게 됨으로 아무도 발명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발명이 계속되게 하려면 일정 기간 발명가만이 발명품을 배타적으로 쓰도록 하거나 발명품을 쓰기 원하는 사람은 발명가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즉 발명가에게 일정 기간 독점이윤을 보장해야만 한다.
 
 
특허 중요성 보여준 와트의 증기기관
 
[그림3] 특허괴물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강조하는 카툰(EFF-Graphics).

[그림3] 특허괴물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강조하는 카툰(EFF-Graphics).

특허가 기술진보와 혁신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념은 곧 경쟁국들에게 전파됐다. 독일의 여러 공국들,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가 차례로 특허제도를 도입했고, 경제가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영국은 1562년에야 특허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특허제도가 곧바로 유럽의 경제발전을 이끈 것은 아니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18세기 중반까지 특허는 기술진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계몽주의 사조가 지식인들에게 폭넓게 확산돼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은 구시대의 편견과 몽매와 미신을 버리고 대신에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사유를 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세계에 진보를 가져오고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계몽주의가 앙트레프레너(혁신가)의 실용주의와 결합되어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적 변혁의 길을 열게 됐다.
 
그러나 산업혁명 초기까지도 특허가 계몽주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발명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향유하도록 널리 개방돼야하는 가치재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이런 혁신가들은 특허가 가져다 줄 금전적 이익보다 자신들의 발명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더 높이 샀다. 그래서 과학협회 회원자격이나 서훈, 정부 포상과 같은 명예를 더 중요시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특허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확산됐다. 제임스 와트와 매튜 볼턴이 증기기관의 특허 시한을 연장해 달라고 의회에 청원했을 때 보수적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특허 연장은 독점의 폐해를 가중시킬 뿐이라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특허가 가져다주는 기술 진보의 이득이 더 클 것이라는 인식이 이미 확산되고 있었다. 결국 볼턴은 인맥과 수완을 총동원해 특허연장 승인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연장된 기간에 와트는 기능이 더욱 향상된 증기기관을 개발해냈다(그림2). 혁신가들은 특허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19세기 후반 전기·철강·화학의 주도하는 2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리자 특허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특허제도가 정비되자 특허는 독점이윤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혁신 유발효과도 발휘하게 됐다. 발명의 상세내용을 담은 특허명세서가 의무화되자 사람들은 발명 목록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게 됐고 발명 노력이 헛되이 중복되는 것을 피하게 됐다. 또한 특허 기록이 체계화되자 발명된 내용이 정확하고 빠르게 전파됐고 발명가가 기술자나 잠재적 투자가를 찾기도 수월해졌다.
 
이에 힘입어 바야흐로 특허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미국에서 1093건, 세계적으로 무려 2332건이나 되는 특허를 취득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앞세워 3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열렸다. 정보통신기술(ICT), 생명공학기술(BT)과 재생에너지 기술이 각광을 받았고 특허출원의 행렬은 끝을 모르게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1985년에 398만 건, 2000년에 518만 건, 그리고 2015년에 1241만 건이나 되는 특허가 새로 출원됐다.
 
 
특허 사들여 기업 위협하는 괴물 등장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서있는 오늘날, 특허는 기술개발을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난마처럼 뒤얽힌 특허들을 뚫고서 가뿐하게 기술개발을 이루는 것은 꿈에서나 가능하다. 곳곳에 진을 치고 있는 ‘특허괴물(patent troll)’들이 로열티와 특허소송을 무기로 무지막지한 위협을 가해온다. 특허괴물들은 사들인 특허들을 가지고 생산은 하지 않고 기업들에게 위협과 소송만 가하는 존재다(그림3). 오바마 행정부가 특허괴물과 전쟁을 선포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한때 매혹적인 얼굴로 기술진보를 이끌었던 특허가 이제 탐욕스런 민낯을 드러내고서 기술혁신을 막고 있다.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권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시점에 드러난 묘한 아이러니다. 공조능력을 잃은 오늘날의 분열된 세계질서 속에서 우리는 과연 야누스를 길들일 방안을 찾을 수 있을까?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bks21@skku.edu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화의 풍경들』『비주얼 경제사』『세계경제사 들어서기』 등 다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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