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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도네(Hedone)

김수영의 행복어 사전 
국가

국가

서양 도덕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을 한 권만 선택하라면, 저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플라톤의 『국가』를 꼽겠습니다. 플라톤 개인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저술일 뿐더러 이후 영향력의 면에서 이를 능가할 다른 작품은 없을 테니까요. 혹시 같은 기준으로 고전 한 권을 더 선택하라면, 이때도 저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쉽게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사실 이 두 책이 보여주는 풍경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플라톤의 『국가』가 남성적인 톤에 박력 넘치는 4분의 4박자 교향곡 같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섬세하면서도 다채로운 주제들이 펼쳐지는 우아한 실내악곡을 연상시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성을 지녔지만 이들은 중요한 공통점을 하나 가지고 있죠. 이 두 걸작의 중심 주제는 도덕과 행복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하는 커다란 질문에 대한 집요한 철학적 탐구들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두 책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두 책 모두 결론 부분에 즐거움 혹은 기쁨에 대한 분석적 탐구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대한 장대한 탐구를 즐거움에 대한 사유로 마무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쁨이나 즐거움의 개념은 철학에서 환영받는 중심 주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에피쿠로스처럼 즐거움을 옹호했던 많은 이들은 위험하고 변덕스러우며 신뢰할 수 없는 철학자들로 간주되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당연히 쾌락주의의 길로 들어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난데없이 이들의 주저 말미에 즐거움이 나타나 그 길고 긴 이야기가 이어졌는지요. 저는 이렇게 짐작해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이 두 영웅들은 삶의 즐거움과 관련이 없는 도덕, 삶의 생생한 기쁨과 관련이 없는 행복은 처음부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의 당위와 도덕과 행복에 대한 다양한 논변 이후에 그들은 자신이 설파한 도덕적 삶이 삶의 가장 내밀한 기쁨과도 충분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이고 싶어 했을 겁니다. 즐거움에 대한 이들의 긍정적이지만 다소 애매한 견해는 이후 철학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긴 논쟁거리가 됩니다.
 
기쁨 혹은 즐거움은 행복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부를 만합니다. 즐거운 삶이 곧 항상 행복은 삶은 아니지만, 즐겁지 않은 행복한 삶이란 불가능합니다. 즐거움은 고대 그리스어로 헤도네(hedone)라 합니다. 저 오래된 신화에서 여신 헤도네는 에로스(Eros, 사랑)와 프시케(Psyche, 영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죠. 사랑만으로 혹은 영혼만으로 우리 내면에 진정한 즐거움이 차오르지 않습니다. 오래된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사랑과 영혼’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공간, 육체와 정신의 서로 마주하는 그 공간에 삶의 참된 즐거움이 자라납니다.
 
헤도네, 그것은 헤뒤스(hedys)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인데, 이 말은 본래 의미는 달콤함입니다. 예를 들어 ‘달콤한 포도주’와 같은 표현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죠.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긴 인생과 훌륭한 저녁 식사의 유일한 차이는, 저녁 식사에는 달콤한 것이 맨 마지막에 나온다는 점이다”라고 썼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은 항상 쓰디쓴 이별로 찾아오기 때문에 그때 우리 마음은 큰 슬픔에 젖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긴 삶의 노정에 수많은 달콤한 기억들이 자리한다는 것은 연약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당신은 오늘도 달콤하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혹시 오직 초콜릿과 설탕만이 무료한 일상을 위로했나요. 달콤하지 않은 시간들, 즐겁지 않은 시간들로 이어지는 삶이 행복할 리 없습니다. 달콤하지 않은 즐거움, 즐겁지 않은 행복은 모두 헛됩니다. 헤도네, 그것은 행복의 맛입니다.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ksypb@naver.com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플라톤으로 박사 학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SeriCEO 철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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