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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단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이 정도면 마녀사냥이다.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 도를 넘고 있다. 단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받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여자 아이돌이 페미니즘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남성 팬들에 의해 사진이 찢기는 등 ‘사이버 불링(집단괴롭힘)’을 당한 데 이어진 일이다(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했다가 벌어진 일 말이다).
 

누가 ‘메갈’인지 색출하자
게임업계 마녀사냥 뺨쳐

최근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를 작업한 프리랜서 원화가 김은혜씨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하라는 회사의 지시를 거부했다가 퇴출당했다. 김씨가, 과거 남성 이용자들에 의해 ‘메갈(남혐을 조장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로 몰린 동료 게임 원화가의 해명글에 ‘좋아요’를 남긴 것이 빌미였다. 김씨 역시 남혐 작가니 쫓아내라는 이용자들의 압박에 회사는 페미니즘 사상 검증을 벌였고, 김씨의 그림을 교체했다. 김씨는 한 인터뷰에서 “게임 이용자들이 나를 업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한다. 내 그림이 실린 책들을 찢은 사진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페미니즘 사상 검증의 원조는 2년전 넥슨 게임 ‘클로저스’다. 프리랜서 성우 김자연씨가 ‘소녀들에게 왕자님은 필요없다’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 인증샷을 올렸다가 메갈로 몰려 게임에서 하차 당했다. 이후 김씨를 옹호했거나 SNS에 페미니즘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올린 여성 작업자들이 타깃이 됐다. 남성 이용자들이 특정 여성의 말이나 사진을 메갈의 증거라며 회사를 압박하면, 회사가 사상검증을 통해 그를 배제하는 식이다. 단순한 사이버 괴롭힘을 넘어 여성 작업자들의 취업과 노동권까지 위협하는 형국이다. 인터넷에는 ‘메갈 게임 목록’이나 ‘게임·웹툰 내 메갈리스트’가 블랙리스트처럼 돌아다닌다. 지난 3월에도 온라인 게임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원화가가 메갈 의혹에 휘말리자, 게임 업계 원로인 제작사 대표가 “왜 여성민우회 계정을 팔로우했느냐”며 직접 사상검증한 내용을 공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일반 페미니스트 아닌 메갈만을 대상으로 한 정당한 소비자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민우회 주최로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페미니즘과 메갈을 동일시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으며, ‘페미니즘 사상을 갖게 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상징과 영향이 있어 더욱 문제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메갈 낙인이 찍혀 직장을 잃고 생계를 위협받게 된 이들은 게임업체에서 외주를 받아 일하는 프리랜서로, 노동시장의 약자들이다. 다분히 회사 차원에서 엄중히 대처해야 할, 자사 직원에 대한 사이버 불링을 개인 문제로 축소한 후 고객의 뜻이라며 해당자를 퇴출해버리는 회사들의 태도 역시 심각한 문제다.
 
오는 17일이면 강남역 살인사건 2주년이다. 미투가 터진 지도 지난 9일로 100일이 지났다. 페미니즘의 시계는 분명 조금씩 움직여가고 있는데, 메갈을 색출해 매장시키자는 반이성적 움직임에서 매카시즘적 광기가 느껴지는 것은 나 뿐인가. 이제 ‘빨갱이’ 딱지붙이기에서 벗어난 한국사회가 ‘메갈’ 딱지 붙이기에 혈안이 된 것은 아닌가.
 
덧붙여 나 역시 극단적인 메갈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메갈을 위한 변명을 한마디 하자면, 아직도 대한민국은, 남성 유튜버(김윤태)가 ‘미러링(여혐을 남혐으로 따라하는 방식)’을 하는 여성 유투버(갓건배)를 살해하겠다고 공언하는 내용을 버젓이 생방송하고, 거기에 ‘까부는 여자는 죽어도 싸다’는 응원이 쏟아지는 나라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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