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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하기 나름" "왜 그런 사람 만나?" …피해자는 침묵한다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왜 그런 사람을 만났니?”
 
대학생 A씨는 지난해 교내 동아리에서 만난 B씨와 수개월 동안 사귀었다. 교제 초창기부터 A씨의 옷차림을 간섭하던 B씨는 점점 A씨에게 집착했다. 수시로 연락해 “지금 어디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말다툼이 빈번해졌다. B씨는 화가 나면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A씨를 세게 밀쳤다. 급기야 A씨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렸다. 폭력은 이후에도 몇 차례 이어졌다. 
 
A씨의 상처를 키운 건 이 일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A씨는 같은 동아리의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B씨의 고압적인 태도와 과도한 집착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걔 사람 만드는 건 네 몫이다” “화나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등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A씨가 “폭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후에는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되돌아왔다.  
 
A씨는 얼마 전 한국여성의전화에 이런 내용을 털어놓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혹시 ‘내게도 정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하는 자책감이 들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끝내는 게 혼란스러웠다”면서 “폭행을 당한 후에도 주변의 시선이 걱정돼 경찰 신고를 망설였다”고 토로했다.  
 
데이트 폭력이 증가하는 가운데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도 속속 생기고 있다. 데이트 폭력을 ‘사랑 싸움’으로 치부하거나 피해자를 탓하는 주변의 반응은 또 한번 상처를 남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16년 여성 1017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을 겪고 도움을 요청한 상대로부터의 반응’을 물었다. 중복 응답 결과 ‘헤어지지 못하는 너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51%) ‘사랑싸움이니 둘이 대화로 잘 해결해야 한다’(32.5%) ‘너도 어느 정도는 책임이 있다’(28.4%) ‘네가 반응을 달리하면 폭력이 없어질 것이다’(27.9%) ‘네가 잘하면 상대도 변한다’(15.7%)는 등의 반응이 있었다고 했다.  
 
대응 시기 놓쳐 결국 피해 키워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피해자를 탓하는 주변의 반응은 피해자의 심리를 위축시켜 적절한 초기 대응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는 데이트 폭력의 특성상 결국 피해를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윤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왜 그런 남자를 만났니’ ‘왜 헤어지지 않았니’하는 말이 대표적인 2차 가해 행위”라면서 “데이트 폭력으로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피해자의 자책감을 부추겨 더 이상 고백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경찰마저 … 누굴 믿어야 하나요?”  
 
한국여성의전화에 접수된 피해 내용 중에선 도움을 요청한 전문상담기관이나 경찰로부터 ‘2차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다. C씨는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에 시달렸다. 이별 후에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전 남자친구는 C씨의 주변 사람들에게 “C가 바람을 폈다”고 거짓말을 했다. 급기야 전 남자친구는 C씨를 찾아와 “죽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후 C씨를 폭행까지 했다. C씨를 더욱 황당하게 만든 건 상담소 상담원의 태도였다. 그의 고백을 모두 들은 상담원은 “당신이 바람을 펴서 전 애인의 상심이 컸겠다”며 가해자의 편을 들었다. 
 
D씨의 전 남자친구는 “다시 만나달라”는 집요한 연락 끝에 D씨의 집 담을 넘어왔다. D씨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그는 경찰의 반응에 “좌절했다”고 했다. 경찰은 “두 사람 연인사이냐”고 물었다. 전 남자친구가 “맞다”고 거짓말을 하자 경찰은 피식 웃더니 그대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경찰에 고소를 했더니 이번엔 “남자 인생 망칠 거냐”는 말이 되돌아왔다.     
 
피해 내용 경청 후 관련 정보 알려줘야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지만, 2015년부터 데이트 폭력 사건은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건수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7888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발생 건수(6674건)에 비해 18.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지영 교수는 “지인이 데이트 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면, 어떤 이야기라도 우선 경청해 주고,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대신 제공해 주는 것을 권한다”면서 “또 경찰 신고 과정에서 사건이 가해자 중심으로 처리되지 않도록 경찰 조직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성인지 교육이 이뤄지고, 데이트 폭력 피해자 대응 매뉴얼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희영 서울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주변에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피해자를 도와야하는지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데이트 폭력 체크 리스트(한 개라도 해당되면, 위험신호)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 
-하루 종일 많은 양의 전화와 문자를 한다 
-통화 내역이나 문자 등 휴대전화를 체크한다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등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하게 한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날마다 만나자고 하거나 기다리지 말라는 데도 기다린다
-만날 때마다 스킨십이나 성관계를 요구한다 
-내 과거를 끈질기게 캐묻는다 
-헤어지면 죽어버리겠다고 한다
-둘이 있을 때는 폭력적이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태도가 달라진다 
-싸우다가 외진 길에 나를 버려두고 간 적이 있다 
-문을 발로 차거나 물건을 던진다 
 
출처: 서울시·한국여성의전화의 ‘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
데이트 폭력 전문상담기관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02-2263-6464~5,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2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02-335-1858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02-3013-1367 
-서울 1366: 02-1366 
 
출처: 서울시·한국여성의전화의 ‘데이트폭력 대응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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