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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편집국장레터]볼턴의 수류탄, 아메리카 퍼스트

 “미래는 우리에게 늘 도전이고 불확실하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대통령은 항상 ‘아메리카 퍼스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While the future remains uncertain and challenging, one thing we know for sure is that the president will always put America First).
V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에 낸 기고문의 마지막 문장으로 레터를 시작합니다.  
 
 역사적이 될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고 발표됐습니다.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미국과 북한의 최정상이 만나 회담한 전례가 없어서입니다. 회담 결과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 또는 동북아의 외교 질서가 뒤바뀔 수 있어서입니다. 우리 시대에 생긴 이 일이 100년 뒤, 1000년 뒤 역사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어서입니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2001~2005년)으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대북 제재에 초강경 입장을 고수한 볼턴을 향해 북한은 “Human scum(인간쓰레기)”,“Blood sucker(흡혈귀)”라는 논평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볼턴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백악관 실무 기획자인 건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볼턴은 국무부 차관 시절 집무실 책상 위에 모형 슈류탄을 올려 놓고 일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굴복이란 없다(Surrender is Not An Option)’가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강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그냥 매파가 아닌 ‘슈퍼 매파(Super-hawk)’입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그는 북한과의 협상은 시간낭비라고 외쳤습니다. 그런 볼턴이 북한과의 협상 소식을 전하면서 사용한 ‘아메리카 퍼스트’가 심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미팅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AFP]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 날짜를 정하면서 이미 ‘아메리카 퍼스트’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6월 12일은 공교롭게도 우리에겐 지방선거 하루 전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전해질 회담 결과가 방송과 신문을 뒤덮을 건 불 보듯 뻔합니다.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그 뉴스들을 들으며 투표장으로 향할 겁니다. 워싱턴의 얘기를 종합하면 택일은 전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했다고 합니다. 트럼프의 G7정상회의 참석과 중간선거 유세 일정이 최우선 고려요소였다고 합니다. 싱가포르를 회담 장소로 낙점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발표 직전까지도 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끝까지 희망했다고 합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가 김정은과의 담판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를 지켜보는 마음은, 회담에 대한 기대의 한켠에서 불안하기도 합니다. 극단의 예 같지만 113년 전 우리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에게 버림 받은 일이 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을 방문한 미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와 맺은 비밀 협약 말입니다. 그 속엔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가 포함됐습니다. 미국은 힘 없는 동방예의지국의 국가 운명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퍼스트’였던 겁니다. 이 밀약은 4개월 뒤 을사조약으로 실행됩니다. 한국과 미국은 그 뒤 6ㆍ25 전쟁을 치르면서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동맹국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역사의 고비마다 늘 미국이 생각하는 한국은, 우리가 챙기는 미국보다 대부분 작았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역사적 만남을 앞두고 하필이면 미국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게 귀에 거슬리는 건 그 때문입니다.
 
북한을 향한 트럼프의 말과 행동은 그동안 냉탕과 열탕을 오갔습니다. 한국 정부의 중재로 간신히 김정은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게는 됐지만 트럼프가 협상장에서 주고 받을 카드가 ‘아메리카 퍼스트’라면 자칫 우리의 희망과 먼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비핵화를 얻어내는 댓가로 미국의 전략자산 철수, 장기적으론 주한미군 카드까지 내밀 수 있다는 얘기가 서울과 워싱턴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가기도 합니다. 실제로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ㆍ북이 당장 양보할 카드로 북한의 핵ㆍ미사일 동결 vs 미국의 한국 내 핵 전략자산 동원 중단을 꼽기도 했습니다. 전략자산 동원 중단 정도라면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주 뉴욕타임스의 보도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수까지 카드로 고려하고 있다면 그건 적어도 ‘코리아 퍼스트’는 아닙니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북한용이라는 미시적 접근으로 볼 게 아니라 점점 커지는 중국을 감안한, 동북아 힘의 균형용이란 역할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북한대사관이 입주해있는 3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싱가포르=전수진 기자

싱가포르 북한대사관이 입주해있는 33층짜리 주상복합건물. 싱가포르=전수진 기자

 북ㆍ미 정상회담을 대서특필한 싱가포르 현지 11일자 신문들. 싱가포르=전수진 기자

북ㆍ미 정상회담을 대서특필한 싱가포르 현지 11일자 신문들. 싱가포르=전수진 기자

6월12일, 싱가포르!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역사적인 외교 게임은 시작됐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달리는 차에 올려졌습니다. 이 정부의 운전자론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빕니다. 지켜보는 우리 모두도 영민해져야 합니다.
 
“영민함이란 한국을 둘러싼 대국들의 의도와 그들이 벌이는 권력 정치의 로직을 철저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번영과 평화를 보장하는 길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우리들은 대단히 복잡해진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대단히 큰 세계 최강의 대국들을 상대로, 대단히 어려운 과제인 통일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그래서 이념 갈등 내지 남남 갈등은 사치다. 보수와 진보 간, 세대 간 갈등과 대결 양상이 지속된다면 불가능할 것이다.”(윤영관 전 외교부장관의『외교의 시대』에서) 
 
중앙SUNDAY는 이번 주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둘러싼 외교 게임을 뉴스분석으로 다룹니다. 싱가포르 현지 르포도 발빠르게 전합니다. 스페셜리포트에선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에서 약한 고리들이 겪는 아픔들을 담았습니다. 중소기업들의 눈물, 자영업자들의 눈물, 청년실업자들의 눈물을 전합니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해법은 뭔지 등을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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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