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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과 대규모 공채, 한국사회 활력 빼앗는 필요악

2009년 중앙장편문학상 응모작 정리 장면. 수천 만원의 상금과 작가 등단 자격을 주는 장편소설공모전은 2013년 13개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8개로 줄었다. 당선작은 소설책으로 출간도 해준다. [중앙포토]

2009년 중앙장편문학상 응모작 정리 장면. 수천 만원의 상금과 작가 등단 자격을 주는 장편소설공모전은 2013년 13개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8개로 줄었다. 당선작은 소설책으로 출간도 해준다. [중앙포토]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지음, 민음사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A: 직장인 중에 다른 대기업 신입 공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가요?

B: 많죠. 중견·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일명 '롯동금'(롯데그룹-동부그룹-금호아시아나그룹 및 금호석유화학) 직원들까지도 경력 2, 3년차 때까지 삼성이나 LG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해요. GSAT(삼성직무적성검사)는 무조건 보는 거고요.  

 
A: 어차피 작가님 책이 곧 나오잖아요. 그러면 저자가 되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편소설공모전을 준비하는 이유가 뭔가요?

C: 등단이라는 게 '제도권의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잖아요. 한국에서 등단을 못하면 정식 소설가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A: 그 인정을 받기 위해서 공모전에 응모하는 건가요? 상금 때문이 아니라?

C: 네.  

 

 두 대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A는 이 책의 저자 장강명(43)씨. 첫 번째 대화의 B는 경력 6년차 취업 컨설턴트, 두 번째 대화의 C는 등단하지는 못했지만 곧 장편소설을 출간하는 한 작가 지망생이다. 최고의 기업 아니면 만족 못하고, 단순히 소설책을 내서는 작가 대접을 제대로 못받으리라고 느끼기 때문에 누구나 기를 쓰고 1등 기업에 재취업하려 하거나 작가로 등단하려 한다는 얘기다. 이 나라에서는 대기업 재직이나 작가 등단 같은 간판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장씨가 누군가. 11년간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뒤늦게 방향전환했다. 앞서 언급한 장편소설상을 지금까지 4개나 받았다. 누구에 견줘도 꿀리지 않는, 장편소설상 제도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장편상 제도와 대규모 공채 제도를 시비 걸고 나선 것이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았다고 한다.  
 
 장씨는 수천 만원의 상금과 당선 자격을 주는 장편상, 결국 공부 잘하는 엘리트들을 거르는 대규모 공채가 절대악은 아니라고 한다. 보기에 따라 장점이 많은 제도란다. 안정성 높고 공정하며 제네럴리스트를 뽑는 데 용이해서다. 하지만 단점도 있는데 한국사회와 한국소설이 갈수록 역동성을 잃는 상황의 상당 부분이 삐뚤어진 간판 중시 풍조 때문이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 그 전에 문제의 진단 자체는 옳았던 걸까. 그걸 하나하나 따진 다음 기록한 게 이 책이다.  
지난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시험장 풍경. 전국적으로 10만 명이 응시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시험장 풍경. 전국적으로 10만 명이 응시했다. [중앙포토]

 
 책 속 장씨는 문단과 공채 현장을 오가느라 분주하다. 기존 수상작가 자격으로 한겨레문학상과 수림문학상 심사에 참여해 심사 공정성을 따지고, 민음사의 고(故) 박맹호 회장과 문학동네 강태형 전 대표, 한겨레출판 이기섭 대표를 만나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장편상의 기원, 의미에 관한 얘기를 듣는다. 공채로 눈 돌려 삼성고시라 불리는 삼성직무적성검사 시험장을 찾고, 아나운서 아카데미 강사를 만나 극성스러운 회사 세탁, 지역 방송사에서 공중파 방송사로 갈아타려는 실태를 취재한다. 장편상이든 공채든 과거 조선시대 엘리트 채용 방식이었던 과거제도에 뿌리가 이어져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제도를 지나치게 매도한 감이 있긴 하지만.  
 
 공채는 정작 제대로 된 인재를 뽑기 어려운 구조여서 문제다. 현명한 지원자 능력 측정보다 다수를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탓이다. 여러 차례 보도됐던 내용일 텐데, 공채 제도를 폭넓게 비판하는 맥락에 끼워 넣으니 공채의 현실은 심각해 보인다.  
 
 가령 2017년 지방직 9급 공무원 국어 시험에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허구헌', '깨단하게', '뒤어내고', '뉘연히', 이렇게 네 단어를 문장 속에 각각 제시한 다음 표준어를 고르라는 문제다. 바늘 한 쌈, 오이나 가지 한 거리, 한약 한 제(劑)가 탕약 몇 첩인지 묻는 문제도 있었다. 장씨는 토로한다. "내가 한국어로 글을 쓰면서 20년 가까이 밥을 벌어먹고 있는데, 저 문제들의 답을 하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몰라도 글 쓰는 데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당선, 합격, 계급』 표지.

『당선, 합격, 계급』 표지.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특히 문학 예술 분야는 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단순하기 어렵다. 가령 대부분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문학 위기론을 생전의 민음사 박맹호 회장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등단하지 못했지만 소설책을 출간해 활동하는, 미등단 작가들이 느끼는 불이익의 내용 역시 미묘하다. 문단문학 혹은 정통문학 인사들이 잘 상대해주지 않거나 신문에 작품 소개가 잘 되지 않는가 하면 작가 모임, 해외 레지던스 참가에서 제외되는 식이다. 배제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심증이 있어도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장씨는 등단 혹은 간판이,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얘기한 '신비로운 권위'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오웰은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자신들에게 닥친 불평등, 부조리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광부들의 모습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무엇에 따라 처신하는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고 한다. 광부들이 신비로운 권위의 노예였다는 얘기다. 한국사람들이 간판을 그런 권위로 여기는 것 같다는 소리다.  
 
소설가 장강명씨. 새 책 『당선, 합격, 계급』에서 사실상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인 장편소설공모전과 대규모 기업 공체를 꼬집었다. 계급 의식을 조장하고 사회 활기를 떨어뜨린다고 봤다. [중앙포토]

소설가 장강명씨. 새 책 『당선, 합격, 계급』에서 사실상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인 장편소설공모전과 대규모 기업 공체를 꼬집었다. 계급 의식을 조장하고 사회 활기를 떨어뜨린다고 봤다. [중앙포토]

 왜곡된 공모전, 공채는 단순히 활력을 앗나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장씨는 쓴다.  
 "합격자와 당선자는 늘 소수일 수밖에 없다. 상당수 지원자가 시험을 포기할 때쯤 자신에게 불합격자, 낙선자라는 딱지가 붙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렇게 패배감, 좌절감, 열등감이 퍼진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은 공채 제도가 낳은 공고한 계층화, 서열화와 맞물리고, 사회는 늘 어떤 시험 합격 여부를 경계선으로 분열의 긴장 상태 속에 있게 된다. 엘리트 계층의 나태함이나 무능함, 비도덕성이 드러날 때면 반대쪽에서 공분이 폭발한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사회에 과도한 도덕주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도 얼마간 영향을 미친다."(427쪽)  
 
 섬뜩하지 않나. 사실이라면 사회 문제다. 공무원 수험생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회 손실이 2016년 17조원이었다니 이미 사회문제이지만.  
 해결책은 뭘까. 있을까. 한국문학 무기력의 문제는 고사 상태인 서평문화를 날카롭게 되살리고 독서 공동체를 키워 해결하자고 제안한다. 공채 열풍은 일자리에 대한 방대하면서도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풀어보자고 한다. 괜찮는 중소기업이 드러나 지원자가 분산되면 무조건 대기업만 찾는 깜깜이 공채를 바꿔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저소득 예술인에 대한 생계 지원은 문학진흥 사업이 아니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에 크게 공감했다. 배고픈 예술가라서가 아니라 배고픈 국민이니까 지원하는 거지 무리하게 문학진흥에 끼워넣으려 하다 보면 국가가 가난한 국민 중 예술가를 먼저 도와야 한다는 기묘한 논리에 빠지게 된단다. 장씨는 책 표지에 '르포'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심각한 논문 대하듯 눈에 불을 켜고 읽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장강명식 도서 채점표를 적용하면 ●재미-높음 ●보람-높은 편●난이도-낮음●독서 시간 3~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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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