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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십니까? 한국인 최초의 미국 리포트 『미속습유』

조선 최초의 주미전권공사 박정양이 1887년 미국도착 후 촬영한 사진.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선 최초의 주미전권공사 박정양이 1887년 미국도착 후 촬영한 사진.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 나라는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해 만든 나라로 권리가 주인인 백성에게 있다. 그러므로 비록 보잘것없는 평민이라 할지라도 나랏일을 자기 일처럼 돌보아 마음과 몸을 다하여 극진히 하지 않음이 없다. 또 친구를 사귀는 도리는 존귀한 사람이나 비천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여서 귀천의 구별이 없다.”
 
초대 주미전권공사를 지낸 박정양(朴定陽,1841∼1905)이 『미속습유(美俗拾遺)』에 쓴 글이다. 130년 전 한 조선인이 멀고 낯선 미국 땅에서 목격한 ‘민주주의’ 사회를 묘사한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견문기가 처음으로 책으로 출간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주미공사관 현지 개설 130주년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개관식(22일)을 앞두고 최근 『미속습유』를 번역·해제해 펴냈다. 탈고 당시 문집 『죽천고(竹泉稿)』에만 실렸던 글이다.
 
 미국 대통령에서 국서를 전달하는 박정양 전권공사 일행. 하퍼스 위클리 삽화.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 대통령에서 국서를 전달하는 박정양 전권공사 일행. 하퍼스 위클리 삽화.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박정양은 1887년 고종에 의해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상주하는 주미전권공사로 임명, 파견됐다. 『미속습유』는 고종의 명을 받은 박정양이 1888년 미국에 도착한 뒤 같은 해 11월 귀국길에 오를 때까지 약 11개월간 미국을 관찰하고 쓴 보고서 형식의 견문기다. 지금까지 ‘최초의 서양견문기’로 알려진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 발간)보다 약 1년 앞선 1888년 탈고됐다. 원본은 그의 증손인 박찬수 교수(고려대 경영학)가 소장하고 있다.
 
미속습유.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속습유.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박정양은 미국의 제도와 문물을 총 90항, 44개 항목으로 나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당시 각국의 여러 자료를 참고하고 통계를 곁들여 미국의 실정을 소개한 이 보고서는 당시 고종을 비롯한 정부 요직의 관리들에게 널리 읽혔다.
 
내용은 크게 지리와 역사, 정부기관 체제와 사무, 경제 실정, 풍속과 사회·교육시설 등 네 부문으로 나뉜다. 예컨대 그는 ‘신문’이라는 문물을 소개하며 “신문지는 한 나라의 중요한 일인데, 민간회사에서 설립한 것”이라고 썼다. 그는 이어 “신문은 정부로부터 그 자유권을 허락받아서 비록 전·현직 대통령의 좋은 말이나 나쁜 행동일지라도 구애받지 않고 싣는다. 일이 있으면 바로 쓰고 들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적어내어 조금이라도 숨기거나 포용해주는 사사로움이 없다”고 했다. 이어 “대개 신문사의 규정 역시 매우 엄숙해서 감히 근거 없는 허망한 말을 신문에 실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에 도착한 박정양 전권공사 일행. 박정양은 1888년 미국에 도착해 공사 관원들과 하인들을 인솔하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에 도착한 박정양 전권공사 일행. 박정양은 1888년 미국에 도착해 공사 관원들과 하인들을 인솔하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철도에 대해 언급한 대목도 있다. “대도시에는 철로가 없는 곳이 없는데, 산악을 만나면 터널을 뚫고, 강이나 하천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며 “1인당 1마일을 갈 때마다 세금 3전을 납부한다(…)그 이익이 다른 것에 비해 가장 좋으므로 인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미국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대통령을 선거로 선출한다는 사실도 전했다. 번역과 해제를 맡은 동국대 한철호 교수는 “박정양은 미국의 삼권분립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미국식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며 “그는 조선과 미국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미국의 정당정치가 조선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속습유. 19세기 후반 미국의 전반적인 실상을 44개 항목으로 소개했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속습유. 19세기 후반 미국의 전반적인 실상을 44개 항목으로 소개했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한 교수는 “그의 교육관은 근대적인 교육으로 국민을 계몽해 서구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자는 동도서기론에 바탕을 둔 개혁 사상에 직결된다”며 “그러나 그는 급진적인 변혁보다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관료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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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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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