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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북한 ‘국제화·시장화’ 프로젝트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국제화는 북한몽(夢)이다. 몇 년 전 연변 학회에서 김일성대 교수는 세계 100위 안에 드는 국제 수준 대학이 되는 게 김일성대의 목표라고 말했다. 현실성은 낮아 보였지만 세계로 나오고 싶은 강한 욕구는 읽혀졌다. 김정일도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했다. 핵을 가지고 세계와 고립된 채 사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자신들도 생각했을 법하다.
 
국제화는 북한이 정상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이다.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고 자본이 들어가며 인적 왕래가 빈번해지면 굳은 뼈도 유연해진다. 이는 중국과 동유럽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 중 하나인 선전(深圳)은 수만 명이 살던 시골에서 인구 1000만이 넘는 세계 첨단도시로 발돋움했다. 샤먼(廈門)은 1980년 특구 지정 이후 연평균 16%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1990년대 동유럽 국가의 변화도 괄목할 만했다. 침체와 혼란을 겪은 몇 년 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제도가 정착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는 2004년과 2007년에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됐다.
 
국제화는 북한의 영구적 비핵화의 길이기도 하다. 신경망처럼 다른 나라들과 물적·인적으로 얽힌 국가는 외국과의 단절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북한에 주식과 채권시장이 존재할 경우 핵 개발은 경제 마비를 넘어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남북과 미·북 등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다루게 된 것도 북한이 무역을 통해 먹고사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무역의존도가 세계 평균에 근접했다가 제재에 막혀 지난해 수출이 40%가량 감소했고 올해는 90% 이상 줄어들 듯하니 북한이 협상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이자 국제화로 가는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우리는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부터 바로 작동시킬 수 있는 국제화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남북 중심의 단편적 경협사업으로는 역부족이다. 획기적인 국제화를 위해서는 북한 경제를 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야 밖으로부터의 변화 바람이 태풍이 돼 북한 정권이 자본주의라는 모기를 막겠다며 쳐 둔 육중한 모기장을 날려 버릴 수 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정도로는 이런 대형 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 비핵화의 이익을 공유하되 북한이 다시 핵을 개발할 경우 중국·러시아도 함께 큰 손실을 보는 구도를 만들어야 영구적 비핵화가 가능하다.
 
김병연칼럼

김병연칼럼

밖으로부터의 국제화와 안에서의 시장화가 만나면 개혁·개방은 대세가 된다. 이 둘이 권력을 등 떠밀며 북한을 정상국가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국제화와 시장화를 결합시킨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을 출발한 고속열차가 신의주·단둥을 거쳐 베이징으로 연결되도록 국제 프로젝트를 만들고, 여기에 시장활동 촉진과 주민의 역량 제고 방안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 사업 대가로 북한에 지급되는 수익금 일부를 소규모 사(私)기업가에 대한 지원과 학교·병원 건설 등에 사용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시장화는 북한 주민의 역량 강화로 이어진다. 북한에서 시장활동을 한 탈북민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남한에서 보다 잘 적응했다. 그 효과도 컸다. 가령 북한에서 5년 시장활동을 했다면 남한에 온 첫해의 적응도가 시장활동 무경험자가 남한에서 5년 살면서 적응한 정도와 비슷했다. 아마 시장이 주체사상에 종속된 인간을 독립적·능동적·자율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활개치며 사는 곳이 정상 국가다.
 
기존 경협 안은 국제화와 시장화의 관점에서 재평가돼야 한다. 어떤 안은 북한의 퇴행적 사회주의를 지원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민간기업이 없는 상태에서 전력이 지원되면 그 전력은 국영기업에 공급돼 오히려 사회주의 체제가 강화될 수 있다. 이는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시장마저 위축시킨다. 북한의 장기 경제성장은 시장을 토대로 새로 생겨날 사(私)기업에 달려 있는데 오히려 그 싹이 잘려나갈지도 모른다.
 
경협 구상은 현 시점의 비핵화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경협이 앞서 나가면 비핵화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경협은 대북제재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물을 없애 놓고 숭늉을 찾는 허망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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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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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