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 서울대 교수 경제학부
국제화는 정상국가 향한 발판이자
북한의 영구적 비핵화의 길이다
단편적인 남북 경제협력 넘어
미·중·러·일 경제와 연결시키고
국제화·시장화 관점에서
기존 경협안 전면 재평가해야
국제화는 북한의 영구적 비핵화의 길이기도 하다. 신경망처럼 다른 나라들과 물적·인적으로 얽힌 국가는 외국과의 단절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북한에 주식과 채권시장이 존재할 경우 핵 개발은 경제 마비를 넘어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남북과 미·북 등 두 번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다루게 된 것도 북한이 무역을 통해 먹고사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무역의존도가 세계 평균에 근접했다가 제재에 막혀 지난해 수출이 40%가량 감소했고 올해는 90% 이상 줄어들 듯하니 북한이 협상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이처럼 경제는 북한의 아킬레스건이자 국제화로 가는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우리는 북한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부터 바로 작동시킬 수 있는 국제화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남북 중심의 단편적 경협사업으로는 역부족이다. 획기적인 국제화를 위해서는 북한 경제를 중국·러시아·일본·미국 등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야 밖으로부터의 변화 바람이 태풍이 돼 북한 정권이 자본주의라는 모기를 막겠다며 쳐 둔 육중한 모기장을 날려 버릴 수 있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정도로는 이런 대형 바람을 일으킬 수 없다. 비핵화의 이익을 공유하되 북한이 다시 핵을 개발할 경우 중국·러시아도 함께 큰 손실을 보는 구도를 만들어야 영구적 비핵화가 가능하다.

김병연칼럼
시장화는 북한 주민의 역량 강화로 이어진다. 북한에서 시장활동을 한 탈북민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남한에서 보다 잘 적응했다. 그 효과도 컸다. 가령 북한에서 5년 시장활동을 했다면 남한에 온 첫해의 적응도가 시장활동 무경험자가 남한에서 5년 살면서 적응한 정도와 비슷했다. 아마 시장이 주체사상에 종속된 인간을 독립적·능동적·자율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활개치며 사는 곳이 정상 국가다.
기존 경협 안은 국제화와 시장화의 관점에서 재평가돼야 한다. 어떤 안은 북한의 퇴행적 사회주의를 지원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민간기업이 없는 상태에서 전력이 지원되면 그 전력은 국영기업에 공급돼 오히려 사회주의 체제가 강화될 수 있다. 이는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시장마저 위축시킨다. 북한의 장기 경제성장은 시장을 토대로 새로 생겨날 사(私)기업에 달려 있는데 오히려 그 싹이 잘려나갈지도 모른다.
경협 구상은 현 시점의 비핵화 과정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경협이 앞서 나가면 비핵화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경협은 대북제재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물을 없애 놓고 숭늉을 찾는 허망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