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인기 남자 배우 와타나베 켄(渡辺謙)이 등장하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이어 도쿄대 건축학과 출신 여자 배우인 기쿠카와 레이(菊川怜)가 “나도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대단해~”라며 등장한다.
그가 손톱 화장을 하는 장면이 화면에 크게 비쳐지면서 “(돋보기를 썼더니 손톱이)확실히 깨끗하게 보인다”는 대사가 흐른다.
이어 의자에 올려진 돋보기 안경을 기쿠카와가 깔고 앉는 장면 뒤로 와타나베는 “(안경이 멀쩡하다)이 강도를 보시라, 역시 메이드 인 재팬”이라고 말한다.
최근 일본 TV에 방영중인 돋보기 안경 CF의 한 장면이다.
한마디로 남성은 책과 신문을 제대로 읽기 위해 돋보기가 필요하고, 여성은 손톱을 잘 가꾸기 위해 고품질의 돋보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지극히 성차별적인 내용이지만, 일본에선 버젓하게 방영중이다.
오히려 인터넷상에선 화제를 몰고 다닌다.
인터넷 댓글엔 가끔씩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긴 하지만 그 대부분은 성차별 의식 때문이 아니라 “모델들의 연기가 너무 오버다”며 다른 이유를 대고 있다. 오히려 “이 광고에 꽂혔다”,“광고 제작자가 머리가 좋은 것 같다”는 긍정적 반응도 적지 않다.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과 정부의 대응 과정속에서 일본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의식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응급처치를 위한 여성 의료진의 경기장 출입을 막아 논란을 낳은 일본 스모계.[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5/08/d4756f56-a80e-40e5-a54e-0fa66bb5e8d1.jpg)
응급처치를 위한 여성 의료진의 경기장 출입을 막아 논란을 낳은 일본 스모계.[연합뉴스]
이런 상황의 근본 원인과 관련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들을 너무 쉽게 용인하는 일본사회의 풍토에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ERA=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5/08/41487417-91c6-447a-a657-3a711cfdc061.jpg)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ERA=연합뉴스]
사우나의 남탕안에서도 여성 목욕관리사(세신사)들이 일하고, 골프장내 목욕탕이나 심지어 기업형 스포츠센터의 사우나 내에서도 여성 직원들이 청소 도구 정리 등을 위해 입장하는 일이 잦은 걸 두고도 점차 “일본 사회가 성별 역할 구분이나 다른 성에 대한 존중 문제 등에 너무 둔감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7일 밤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가스미가세키(霞が関)의 재무성 건물앞엔 100여명의 사위대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재무성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무차관의 성희롱을 장관이 부정했다”,“당장 반성하고 사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타깃은 아소 다로(麻生太郞)부총리 겸 재무상이다.
그는 동남아 출장중이던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성희롱죄라는 죄는 없다. 살인이나 강제 추행과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여기자와의 1대1 식사 자리에서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는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물러난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전 재무성 사무차관을 감싸는 발언이었다.
아소 부총리는 후쿠다가 물러나기 전에도 “후쿠다에겐 인격이 없느냐”,“재무성의 출입기자는 남성으로만 해아겠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키웠다.
일본 정부의 넘버 2가 맨 정신에 성차별적인 발언을 멀쩡하게 쏟아내는 것이나, 전 세계적인 '미투(Me Too) 열풍'속에서도 일본만 숨을 죽이고 있는 근저엔 "'고립된 섬'처럼 진화하지 못한 일본내 성평등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