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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아부의 기술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 밤샘토론 앵커

“정말 동안이시네요. 제 또래인 줄 알고 하마터면 결례할 뻔했어요.” 딱 보기에도 손위인 분들을 처음 만나면 종종 건네는 말이다. 십중팔구 파안대소하며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럴 땐 짐짓 한마디를 더 보태곤 한다. “제가 기자 출신이라 팩트 아닌 얘긴 절대 못 하거든요.” 원래부터 이리 실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 자리를 맡게 되면서 부지불식간에 생겨난 습성이다. 잘 되는 프로를 만드는 첫째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섭외. 꼭 출연자로 모시고 싶은 분들 앞에서 본능적으로 ‘을’의 자세를 취하다 보니 아부의 기술이 절로 몸에 배어버린 거다.
 
아부는 이렇듯 권력의 역학 관계가 빚어내는 산물이다. “사람들이 아부를 좋아하는 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누군가 비위를 맞춰줘야 할 만큼 중요한 인물임을 실감케 되기 때문”이란 시인 랠프 에머슨의 말 그대로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아부도 있긴 하지만 그 효과는 역방향인 경우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나이가 들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흡사 비타민처럼 ‘일일 아부 권장량’을 섭취하길 기대하는 탓이다. 나만 해도 함께 일하는 막내 작가가 주변의 야유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날려주는 찬사에 길이 들다 보니 어쩌다 못 듣는 날은 좀 허전할 지경이다.
 
아부의 중독성을 경계하라고 일찌감치 설파한 이가 바로 마키아벨리다. 리더의 덕목을 제시한『군주론』에서 ‘인간이란 자기기만에 쉽게 빠지기 때문에 아첨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진단했었다. 위험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진실을 듣더라도 절대 화내지 않는다는 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수밖에 없다’나.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은 일이다. 성공한 CEO 중 급격히 추락하는 경우를 살펴보니 어김없이 이사회 구성원들이 무조건적인 아부와 동조를 해줬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적이 있다.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다 보면 자신의 역량을 과신하게 돼 실수를 하고도 바로잡지 않는 심각한 오류에 빠진다는 거다.
 
물론 아부를 마냥 나쁘게만 볼 건 아니다. 적절한 아부는 인간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걸 다들 부인하지 못하실 게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감을 갖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전 편집장 리처드 스텐겔이『아부의 기술』에서 소개한 팁이 도움될 듯하다. ▶칭찬과 부탁을 동시에 하지 말라 ▶여럿에게 같은 칭찬을 우려먹지 말라 ▶칭찬할 땐 안 좋은 점도 함께 살짝 언급하라 ▶때론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치켜세우라 ▶솔직히 말하라고 해도 절대 솔직하지 말라…. ‘작업의 달인’ 카사노바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도 귀담아 들음 직하다. ‘지적인 여인에겐 아름답다 하고, 아름다운 여인에겐 지적이라고 해주라’. 무릇 상대의 약점을 헤아려 역으로 바로 그 부분이 뛰어나다고 띄워 주라는 얘기다.
 
아부가 특히 필요한 분야가 다름 아닌 외교의 세계라는 걸 절감하는 요즈음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켓맨’을 ‘매우 열려있고 훌륭한 사람’으로 격상시킨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북한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낸 공을 입이 닳도록 트럼프에게 돌리며 노벨평화상까지 독차지하라고 권하는 우리 대통령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트럼프의 경우 워낙 아부에 약한 거로 소문이 나서 “평범한 노동자들을 위한 맞춤형 대통령”(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전임자(오바마)보다 더욱 강력한 지도자”(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똑똑하고 재능이 넘치는 사람”(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각국 정상이 앞다퉈 낮 뜨거운 칭찬 릴레이를 펼쳐준 바 있다. 그와 여러모로 닮은꼴이란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그까짓 아부쯤이야 얼마든지 해줄 테니 부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핵전쟁의 위험만 말끔히 날려 주길 바랄 뿐이다.
 
신예리 JTBC 보도제작국장·밤샘토론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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