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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김정은과 조씨 자매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며칠 전 술자리에서 가까운 지인과 말다툼을 했다. “김정은이 생각보다 예의 있고 겸손한 것 같더라”는 내 말에 심기가 불편했던 지인은 “같은 3세로서 대한항공 자매들보다 낫더라”는 말에 폭발하고 말았다. “예의 바르고 겸손한 놈이 고모부 쏴 죽이고 이복형 독살하냐”며 언성을 높였다. “핵무기와 물컵이 어떻게 비교될 수 있느냐”는 거였다. 지나친 비유 같기도해 얼른 화제를 바꿨지만 내심 내게도 불편함이 남았다.
 
그런 불편함은 내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퍼져 있는 것 같다. 조씨 자매와의 비교는 비록 지나칠지라도 김정은의 속내에 대한 시각 차이가 온 사회를 찜찜하게 한다. 달라진 김정은과 여전한 김정은이라는 두 가지 시각 말이다. 찜찜한 것은 둘 다 불확실성이 많은 까닭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지만 그것은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다.
 
김정은 입장에서 남쪽 방문은 대성공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저리 가라던 호전성과 잔인무도함을 부드러운 말투와 순발력 있는 유머로 바꿔놓았다. 평양냉면집에 맛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줄을 서고 “~라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가 유행어가 될 정도다. 대화할 때 경청하는 모습에서도, 북한 기자들을 손사래로 물릴 때도 권위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연기였다면 주연급이었다. 습관은 속이기 어려워 어디서든 튀어나오기 마련인데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권력 세습에 체질적 거부감을 느끼는 내가 예의와 겸손을 말한 이유였다. 사회주의 계급의식이 없고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를 경험했기에 선대와는 다를 것이라던 집권 초 기대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다른 한 시각은 북한이 기껏 완성한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다. 김정은의 유화적 제스처는 모두 ‘쇼’고 그래서 더 가증스러운 거다. 김정은이 ‘정상국가 지도자’ 연기를 하는 것은 트럼프라는 자기보다 더 막가는 ‘임자’를 만난 까닭이다. 미국까지 핵무기를 날려 보낼 투발수단(ICBM)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피하고 보자는 전략이다. 게다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로 보이게끔 미국을 속일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가 PVID(영구적 핵 폐기)로 강화된 게 그래서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 선언이니 주한미군 철수니 운운하는 섣부른 주장들이 기가 막힌 것이다.
 
미리 말했지만 이런 두 시각 모두 확신으로 이어지기엔 부족한 게 많다. 모든 게 김정은 마음대로인 까닭이다. 그러니 둘을 모두 견지하는 게 낫다. 변화는 기대하되 의심은 풀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양쪽 모두 지나치면 안 된다. 만에 하나 반대 입장으로 넘어갈 때를 생각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거다. 아무리 연기래도 발을 딛다 보면 김정은이 예상치 못한 변수에 부딪히게 될 터다. 그 변수를 우리가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확실한 채찍과 당근을 보여 줘야 한다. 양쪽 어디에 서 있든 김정은은 자신이 가진 카드를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다. 확고한 협상가가 돼야 한다. 무엇이 이득인지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줘야 한다. 그리고 신뢰 없이는 바뀌는 현실도 없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 줘야 한다.
 
그 결과를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같은 3세인데 누가 더 나은지도 곧 드러날 터다. 김정은도 조씨 자매도 마찬가지다. 뒤끝 같지만 내 생각은 여전하다. 내 생각이 맞았으면 좋겠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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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