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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카톡 말고 나랑 놀자"…가족끼리 대화 하루 13분뿐

가족끼리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가족끼리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디지털 기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강원도 춘천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이민정(가명)양은 학교ㆍ학원을 마치고 오후 5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오후 9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가족과 놀거나 대화하는 일이 거의 없다. 직장 때문에 다른 곳에 사는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으로 온다. 엄마와 저녁을 같이 먹을 때도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엄마는 집에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거실에서 같이 TV를 보다가 이양이 먼저 말을 꺼내야 겨우 이야기를 나눈다. 그마저도 엄마 휴대전화에 ‘카톡, 카톡’이 이어지고 전화벨이 울리면서 금세 끊어진다. 이양은 “예전에는 ‘엄마, 카톡 하지 말고 나랑 놀자’고 해봤는데 그게 통하지 않는다. 요즘엔 그냥 조용히 TV만 본다”고 말했다.
 
이양 가족처럼 우리나라 부모와 자녀의 사이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 최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국내 초ㆍ중ㆍ고교생 571명을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단 13분(평일 기준)에 그쳤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거나 같이 노는 시간이 하루 0.9%밖에 안 된다. 반면 학원ㆍ숙제 등 학교 밖 공부 시간은 190분, TVㆍ스마트폰 등 각종 미디어 이용 시간은 84분으로 훨씬 많다. ‘거의 매일 자녀와 대화하는 부모’의 비율은 5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0%에 한참 모자랐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아빠는 야근, 아이는 학원 뺑뺑이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 바깥으로 나오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학생들. '학원 뺑뺑이' 등은 가족 간 대화 단절의 주된 요인이다. [중앙포토]

밤 10시가 넘어서야 학원 바깥으로 나오는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학생들. '학원 뺑뺑이' 등은 가족 간 대화 단절의 주된 요인이다. [중앙포토]

대화가 부족한 것은 맞벌이 가정만의 일은 아니다. 주부 김모(44ㆍ서울 양천구)씨도 중3 딸과 살가운 대화를 할 기회가 없다. 김씨의 딸은 '집-학교-학원-집'을 오가는 일상을 반복한다. 대화라 해봐야 카톡으로 “학원에 잘 도착했냐”고 물으면 “ㅇㅇ”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김씨가 학원에서 딸을 태우고 집으로 오는 10~20분에 그나마 이야기를 나눈다. 김씨는 “주말에 온 가족이 모처럼 외식을 가도 딸은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어 잔소리만 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김은정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엄마·아빠가 물어보는 게 ‘숙제했냐’ ‘스마트폰 한 시간만 해라’ 이런 식이다.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기본 요소가 가족인데 대화다운 대화는 없고 각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엄마·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놓지 않는다.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행복을 위한 최우선 조건으로 ‘화목한 가족’(25.7%)을 제일 많이 꼽았다. 평소 행복을 느끼는 장소도 집(38%)이 1위였다. 가족 모두와 동반 저녁 식사를 한다는 초ㆍ중ㆍ고생의 행복감은 20.16점으로 그렇지 않은 학생(18.95점)보다 높았다.    
 
어쩌다 말 붙여도 금세 전화·카톡
대화 단절은 상호 불신과 갈등을 초래한다. 2015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의 17.4%(어머니 13.8%)는 '자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19.2%는 아버지(어머니는 22.6%)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16.4%는 아버지와 자주 다투고 24.6%는 어머니와 다툰다.  
 
청소년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성가족부 조사(2017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만 9~24세) 4명 중 1명꼴(25.1%)로 심각한 우울 감정과 절망감을 경험한다. 양미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복지본부장은 “최근 상담실을 찾는 청소년들이 우울증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는 일이 많아졌다. 학업ㆍ대인관계 등 문제가 생겼을 때 가족에게도 기댈 수 없다 보니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아이 얼굴보다 뒷모습에 더 익숙해진다는 의미인 ‘아이 뒷모습 증후군(Children’s Back Syndrome)’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며 “대화가 끊어지면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갈등이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서울 시내 한 사무실에서 야근 중인 직장인들. 밤인데도 사무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사무실에서 야근 중인 직장인들. 밤인데도 사무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부모의 장시간 근로, 아이의 ‘학원 뺑뺑이’ 같은 사회적 현상을 가장 큰 '가족 파괴' 원인으로 든다. 이 때문에 방과 후 한 시간 이상 혼자 지내는 ‘나홀로 아동’ 비율이 37%에 달한다(가족실태조사).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는 일에, 아이는 학업에 매달려 서로 얼굴을 볼 시간조차 없다”며 “부모의 정시 퇴근 보장과 유연한 근무 시간 선택, 가족 친화적 기업 확산 등으로 부모와 아이가 같이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녀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의 양 본부장은 “부모 세대들은 자녀와 소통법을 잘 모른다.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한다는 사람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기 이야기만 많이 하더라”며 “자녀의 기분이 어떤지 이해하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기만 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부모교육, 일·생활 균형 등 중요
가족끼리 함께 식사 자리를 자주 갖고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 좋다. [중앙포토]

가족끼리 함께 식사 자리를 자주 갖고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 좋다. [중앙포토]

자녀와의 대화가 어렵다면 ‘부모 교육’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가부는 이달부터 전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228곳에서 ‘부모ㆍ자녀 관계 회복을 위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건강가정진흥원ㆍ한국심리상담연구소 소속 부모교육 강사인 박인경씨는 “아이들이 TV와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것은 누군가가 더 재미있게 놀아주지 않아서다”며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대화법을 잘 배우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의 말에 경청하고 자연스레 놀아주면서 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남희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맞벌이 부부는 부모 교육을 받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 가족 문제 상담과 부모 교육 등을 지원하는 전담 부서를 만들고 육아기 아동을 둔 직원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등 ‘워라밸’을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7월 시행하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가족 간의 대화 시간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면서도, 급여가 줄어든다면 저소득층 가정의 대화 시간을 줄일 것을 걱정한다. 정재훈 교수는 “근로시간 만큼 소득이 줄어든다면, 저소득층은 이를 만회하러 두 세 개 일에 내몰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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