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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10. 언젠가 다가올 이별에 맞서는 집사의 자세

 어느새 열 번째 이야기다. ‘어쩌다 집사’ 연재를 시작하고 두 달이 넘게 흘렀다. 두툼한 집업 스웨터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했던 내 캐릭터가 반소매 차림이 됐으니,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길다고 표현하기엔 모호한 시간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얘기다.
 
고양이의 시간은 다르다. 인간에 비해 몇 배는 더 빠르게 흐른다. 수명이 훨씬 짧으니 당연하다. 생후 6개월이면 사람 나이로 벌써 아홉 살, 1년이면 열다섯 살이다. 2년이면 스물넷에 해당할 만큼 성장한다. 그 이후로는 1년에 네 살씩 더 먹는다고 본다. 나의 10주를 묘생 3년 차 고양이 나무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10개월 정도가 된다. 나에겐 얼마 안 되는 시간도 나무의 삶에서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다.
 
평소엔 이 나이 계산법을 상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무가 혼자 있는 시간의 길이를 체감하는 순간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출퇴근 사이 집을 비우는 시간을 최소 10시간으로 잡아도 고양이 입장에선 거의 이틀을 혼자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나무와 나의 시차를 의식하다 보면 생각은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닿는다.
 
나무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내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집고양이의 수명은 대략 15년. 나무와 나, 그리고 내 가족과 친구 모두가 평균 수명을 온전히 산다는 가정하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무를 집에 들이며 했던 여러 고민은 당장 먹여 살리는 문제 위주였다. 언젠가 찾아올 이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각오를 미처 다지기도 전에, 두려움이 먼저 찾아왔다.
 
두려움은 지나칠 만큼 행복한 순간에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매일 아침 내 침대 한구석에 대(大) 자로 누워(정말로 그렇게 눕는다·사진 참조), 세상만사 아무 걱정 없다는 듯 잠든 나무를 볼 때. TV를 보는 내 옆으로 터덜터덜 걸어와서는 굳이 체온이 닿도록 내 몸에 기대어 털썩 앉을 때. 집에 돌아온 나를 마중 나와 눈을 마주치며 야옹거릴 때. 그 순간들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곤 했다. 집사가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모르는 나무를 붙잡고 엉엉 운 적도 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 옆에 나무가 없는 날이 온다면….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 볼 때마다 웃기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 볼 때마다 웃기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이 우울증·불면증·스트레스장애 등으로 이어지는 ‘펫로스증후군(Pet loss syndrome)’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다. 나무와 공원에서 인연을 맺기도 전의 일이다. 기사는 호스피스센터·화장터·납골당 등 반려동물 완화의료와 장례문화도 함께 다뤘다. 당시 나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사람들에게 ‘강아지 이름이 뭐였는지’ ‘지금 심정이 어떤지’ 등을 물었다. 남들보다 반려동물 이슈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했는데도, 동물 가족과의 이별을 사람 가족의 죽음만큼 무겁게 보지 못했다. 머리로는 아는 것 같아도 겪어보기 전까진 마음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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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의 ‘랜선 이모’(타인의 반려동물이 자라는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는 이들을 일컫는 말)에서 진짜 집사가 된 후로 2년 전 취재 기억들이 새롭게 정리됐다. 세상 무너진 표정을 하고 유골함을 끌어안고 있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과거의 기억 속에서 나의 미래 모습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혹시 이 모든 게 초보 집사라면 한 번쯤 거쳐 가는 관문인가. 내가 지금 고양이가 주는 행복을 처음 겪어봐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건가. 다른 이들은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낯선 집사 수십 명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지난해 9월 영화 ‘고양이 케디’ 상영관에서다. 상영 후 칼럼니스트 김세윤씨와 작사가 김이나씨가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김세윤씨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고 김이나씨는 달봉이와 봉삼이 두 고양이의 집사였다. 영화에 대한, 또는 각자의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관객석의 마지막 질문자였다. 길고양이를 데려온 지 1년이 채 안된 집사임을 밝히고, 나의 고양이가 언젠가 내 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집사 선배인 김이나씨가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내가 먼저 가는 것보다는 나아요.”
 
나무가 '나무'라는 예쁜 이름을 얻게 된 이유. 본문과 딱히 관련은 없지만 10화를 기념해 가장 예쁜 사진을 골라왔습니다.

나무가 '나무'라는 예쁜 이름을 얻게 된 이유. 본문과 딱히 관련은 없지만 10화를 기념해 가장 예쁜 사진을 골라왔습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아직 내 손길이 필요한 나무를 세상에 두고 먼저 떠나는 것보다 끔찍한 일은 없다. 나무가 내게 특별하듯, 나도 나무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자신을 ‘집사’ 또는 ‘참치캔 따개’(고양이가 인간을 살려두는 이유는 참치캔을 혼자 따지 못해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사실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이 고양이가 내게만 허락하는 순간이 늘어갈 때마다 느낀다. ‘아, 너에게도 내가 소중하구나. 내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
 
나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나무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차라리 축복이다. 내게로 온 이 작은 생명체를 내가 끝까지 책임졌다는 뜻이니까. 나는 나무가 ‘평생’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냥줍을 결심했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그 결심엔 이미 마지막에 대한 각오가 포함돼 있었다. 이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보다 4배 더 빠르게 흐르는 나무의 시간에 4배의 행복을 꾹꾹 담아줄 수 있도록.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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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