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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없어 못팔던 캠리·어코드…275만원 주며 '굴욕의 판촉'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는 1990년대 미국 자동차 시장을 양분한 베스트셀링카였다. ‘메이드 인 재팬’의 프리미엄까지 얹어지면서 전형적인 세단 시장에서 없어서 못 파는 승용차로 여겨졌다. 고장이 적고 연비가 좋았을 뿐 아니라 중고차 값이 덜 내려가 미국 중산층이 예약구매를 할 정도로 인기였다.
 
그랬던 전설의 세단이 요즘 들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퇴물’ 취급을 받고 있다. 공간 활용도가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에 밀리면서 옛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미 자동차 시장 정보업체인 모터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 시장에서 274만대의 SUV와 픽업트럭이 팔린 데 비해 세단 판매는 137만대에 그쳤다. 2013년 저유가 붐을 타고 SUV와 픽업트럭 판매량이 세단을 넘어선 뒤로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중이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두 배 가까운 판매 대수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SUV와 픽업트럭이 1105만대 판매된 데 비해 세단은 608만대 수준에 불과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연도별 세단과 SUV/픽업트럭 판매 대수(단위: 백만대). 자료=미 상무부

미국 자동차 시장의 연도별 세단과 SUV/픽업트럭 판매 대수(단위: 백만대). 자료=미 상무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요타와 혼다의 경영진이 세단 시장에서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려 고집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10세대 캠리를 선보인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이번 캠리를 통해 중형 세단 시장을 재점화할 기회를 본다”면서 “왜 SUV가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고객은 SUV와 크로스오버 차량(CUV), 픽업트럭을 찾고 있는데, 시장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셈이었다.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도요타 차량도 크로스오버 SUV인 라브4였다.
 
지난 3월 뉴욕모터쇼에 전시된 도요타 캠리.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차종으로 꼽힌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3월 뉴욕모터쇼에 전시된 도요타 캠리.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단일 차종으로 꼽힌다. [로이터=연합뉴스]

 
그 결과 닛산의 미국 내 1분기 세단 판매는 전년 동기대비 35%나 빠졌고, 혼다와 도요타는 각각 9.2%와 4.7% 줄었다. 1분기 전체 세단 시장은 전년 동기대비 28% 감소했다. 쏘나타와 옵티마를 앞세운 현대ㆍ기아차가 미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저간의 사정을 들어보면 도요타 캠리보다 혼다 어코드가 더 참담한 편이다. 혼다는 올해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6년여 만의 풀모델 체인지를 통한 10세대 어코드를 새롭게 선보이면서 명성 재현에 나섰다. 디트로이트 모터쇼 측은 어코드를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했다.
 
그렇지만 시장은 달랐다. 올 1분기 내내 어코드 판매 대수는 구형 모델을 팔았던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감소했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올해의 차’라는 비아냥이 뒤따랐다.
 
10세대 혼다 어코드는 올해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로이터=연합뉴스]

10세대 혼다 어코드는 올해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도요타 캠리의 판매장려금 정책도 어코드의 판매 부진에 한몫했다. 자동차 시장 정보업체인 제프리스에 따르면 혼다는 어코드의 초기 판매가 2만3570달러(LX 하이브리드 기준, 약 2500만원)에 지난 3월 848달러(약 91만원)의 판매장려금을 책정했다.
 
이에 반해 도요타는 2만3495달러(L스펙 기준)짜리 캠리에 무려 2557달러(약 275만원)의 장려금을 지원했다. 일단 팔고 보자는 도요타의 고민이 숨어있다.
 
캠리가 전통적으로 어코드보다 중형 세단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기는 하지만 이 같은 이유로 캠리의 점유율은 15%, 어코드는 10%로 격차를 벌렸다. 혼다 아메리카 측에서도 판매 장려금을 높이고 싶지만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릴 수 없다는 이유로 속만 태우는 중이다.
 
혼다 아메리카의 세이지 쿠라이시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가격을 건드리면서까지 치킨 게임에 휘말릴 수 없다”면서 “어코드 신모델의 매력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대신에 혼다는 SUV 시장을 주력하기 위해 오하이오주 공장의 생산라인에 변화를 주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혼다는 이 공장에서 CR-V와 아큐라 RDX 모델을 연간 24만대 생산하는데, 지난해 두 가지 모델을 수입산까지 합쳐서 43만대 팔았다. 같은 공장에서 어코드를 44만대 생산할 수 있지만 지난해 판매는 32만대에 그쳤다.
 
이 같은 고민은 미국 자동차업체도 마찬가지다. 1분기 호실적을 발표한 포드는 스포츠카와 SUV에 주력하면서 당분간 토러스와 퓨전, 피에스타 등 세단 부문에서 신차를 출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단 시장에 주력하는 일본 카 메이커들은 최근의 유가 급등세를 반기고 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이상을 유지해 시중 기름값이 갤런당 2.8달러(약 800원/L)를 훌쩍 넘어서면, SUV와 픽업트럭을 모는 미국 소비자가 연비 좋은 세단으로 다시 몰릴 수 있다는 예상에서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SUV와 픽업트럭이 예전처럼 ‘기름 먹는 하마’가 아닌 만큼, 웬만한 고유가가 아니면 당분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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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