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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노벨평화상 받을까

 
 
“로켓맨(김정은)과 평화를 이루다니 나는 정말이지 영리하다. 핵 버튼을 눌러 화염과 분노로 (북한을) 쓸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와 협상했다”
 
워싱턴포스트(WP)가 예측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상 노벨상 수상 연설입니다. 
 
2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연설 전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2월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연설 전 미소를 짓고 있다. [EPA=연합뉴스]

최근 미국 정치인들이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해 화제죠. 공화당의 루크 메서 하원은 17명의 의원들과 함께 추천서에 서명을 했고 이를 2일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 발송했는데요.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이 잘 작동하고 있고 이것이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올해는 아닙니다.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은 매년 1월31일까지로 그 기한이 정해져 있죠. 그 이후에 들어온 추천은 대부분 다음 해로 넘어가게 됩니다. 때문에 트럼프의 수상 여부는 2019년까지 북·미 정상회담과 북핵문제가 어떻게 진전될 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는 것이죠.
 
한편 시기를 떠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 조롱하고 한때는 '화염과 분노'를 거론해 전쟁의 공포를 일으킨 트럼프가 노벨평화상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미 공화당의 루크 메서 하원을 비롯한 의원 18명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했다. [EPA=연합뉴스]

미 공화당의 루크 메서 하원을 비롯한 의원 18명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했다. [EPA=연합뉴스]

후보 추천만으로도 많은 말을 낳고 있는 트럼프. 그의 수상소감을 우리는 들을 수 있을까요? [고보면 모있는 기한 계뉴스 - 알쓸신세]는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트럼프를 비교해 보고 노벨평화상에 관한 재미있는 사실들도 알아보겠습니다.
 
너무 다른 캐릭터, 알고보면 비슷한 정책...오바마와 트럼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0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난 오바마와 분노를 아낌없이 표현해온 트럼프.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지도자가 모두 노벨상을 탈 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죠.
 
그러나 언론에 보여지는 인상과 달리 대북정책에 있어서 기본 골격은 비슷하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한 마디로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표현됩니다. 
 
언론에 긍정적 이미지를 표출해 온 버락 오바마(왼쪽)와 '화염과 분노'로 대변되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두 사람의 소통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대북정책은 비슷하다는 평가도 많다. [중앙포토]

언론에 긍정적 이미지를 표출해 온 버락 오바마(왼쪽)와 '화염과 분노'로 대변되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두 사람의 소통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대북정책은 비슷하다는 평가도 많다. [중앙포토]

전문가들은 5가지 점에서 오바마와 트럼프의 정책이 비슷하다고 밝혔는데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그 요소로 ▶북한 김정은 정권과 북핵·미사일 개발을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압박 ▶대북 군사적 준비와 능력의 강화 ▶미사일 방어능력의 증강 ▶대북 협상 가능성 타진 ▶북핵 포기 시까지 협상거부를 들었습니다.
 
요약해보면 북한의 핵개발을 돕는 국가에게는 불이익을 주지만 만약 북한이 핵포기 카드를 들고 나온다면 대화의 문도 열어뒀다는 의미죠.
 
다만 트럼프는 전략적 인내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여차하면 이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신호를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나도 핵버튼을 갖고 있고 김정은의 것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다"며 "내 버튼은 작동한다"고 강조한 바 있죠. 때문에 그가 ‘예방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보다 더 크고 실제 작동하기도 하는 핵단추가 있다’고 해 자신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보다 더 크고 실제 작동하기도 하는 핵단추가 있다’고 해 자신의 대북정책이 전략적 인내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트위터 캡처]

또 2017년에만 4번에 걸친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경제제재를 현실화 했고 결의안을 위반한 선박과 운송, 무역회사들을 꼼꼼히 잡아내 제재 명단에 포함시켰습니다. 특히 중국과 북한의 무역 고리를 끊기 위해 올초에는 북한과 인접한 단둥지방의 중국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기도 했죠.
 
이러한 실행가능성이 차이를 낳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는 실질적으로 북핵문제를 '방치'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취임한 지 10개월 만에 상을 받아 '성과없는 수상자'라는 비판도 함께 받았죠. 
하지만 트럼프는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바마와 비교해 대북문제에서 만큼은 가시적인 성과를 낼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겁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17년에만 4번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현실화했다. [백악관]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17년에만 4번의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현실화했다. [백악관]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1906년의 트럼프, 시어도어 루즈벨트
 
트럼프와 비슷한 캐릭터를 갖고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대통령은 또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죠. 둥글둥글한 외모와 '테디'라는 별명 때문에 그를 매우 유순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루즈벨트 역시 노벨평화상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커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는 그의 신조가 성격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19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와 닮은 지도자로 루즈벨트를 꼽았다. [백악관]

19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와 닮은 지도자로 루즈벨트를 꼽았다. [백악관]

WP의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본 드렐은 칼럼을 통해 루즈벨트와 트럼프가 닮은 꼴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는 "막무가내에, 부유하고, 자화자찬이 심한 뉴욕 출신 공화당 대통령"이란 점에서 둘을 비슷한 지도자라고 주장했죠.
 
루즈벨트는 외교적으로 약소국에 대한 제국주의 노선을 고수해 '전쟁광(war-monger)'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문제, 카리브해 문제에 개입하는 등 남아메리카의 여러 정부에 압력을 넣기도 했죠. 외교문제에서 국력을 과시하는 면모는 트럼프와 닮은 꼴입니다.  
 
이런 그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일전쟁을 중재한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스웨덴 언론은 "알프레드 노벨이 무덤에서 돌아눕겠다"며 비꼬기도 했었죠.
 
러일전쟁 종료를 위해서 영국 포츠머스에서 개최된 평화회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으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런 '국제평화'를 이끈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를 제물로 삼은 국제평화였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러일전쟁 종료를 위해서 영국 포츠머스에서 개최된 평화회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으며,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런 '국제평화'를 이끈 공로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를 제물로 삼은 국제평화였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그러나 노벨평화상 위원회는 그가 러일전쟁을 중재해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이룬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만큼 한반도 문제는 당시에도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지배를 놓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연속으로 일어났으니까요. 지금도 그때도 한반도 안보는 곧 태평양 지역의 역내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었습니다.
 
루즈벨트 역시 처음에는 지금의 트럼프처럼 '화염과 분노'로 일본을 공격할 작정이었으나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는 것을 보고 일본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됐죠. 포츠머스 회담과 이에 앞서 체결된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인해 미국은 일본이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도록 인정하게 됐습니다. 
 
이후 적어도 일시적으로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주변국 간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노벨평화상 수상에 반드시 항구적이고 실질적인 평화, 그리고 고귀한 인격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선인들의 수많은 희생은 철저하게 간과됐습니다. 
 
중재자 공로 '나중에'...캠프데이비드의 기억 
 
트럼프가 '힘을 통한 평화' 정책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중재했지만 그 공로를 당장은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갈등 당사국을 대통령 별장에 불러 화해시키고도 자신은 뒤늦게 노벨상을 받아야만 했던 트럼프의 전임자가 있기 때문이죠.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유명한 제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입니다.
안와르 사다트(왼쪽)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두 정상은 13일 동안 평화협정을 논의했으며 지미 카터(가운데)가 이를 중재했다. [백악관]

안와르 사다트(왼쪽)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다. 이곳에서 두 정상은 13일 동안 평화협정을 논의했으며 지미 카터(가운데)가 이를 중재했다. [백악관]

 
197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두 명이었습니다. 한 명은 무하마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었고 다른 한 명은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였습니다. 1948년부터 30년이나 이어진 중동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에서였죠.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감정의 골을 생각해보면 두 사람의 만남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1973년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해 4차 중동전쟁을 시작한 장본인이 바로 사다트였기 때문입니다. 사다트는 1973년 10월 6일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일인 '사죄의 날(욤키푸르)'을 노려 75만 병력과 3200대의 탱크 등 이집트 군 전력을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개전 이틀만에 이스라엘 17개 여단이 전멸했죠. 앞서 1~3차 중동 전쟁에선 이집트가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집트의 군용 트럭이 1973년 10월 7일 수에즈 운하를 건너고 있다. 욤키푸르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국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중앙정보국]

이집트의 군용 트럭이 1973년 10월 7일 수에즈 운하를 건너고 있다. 욤키푸르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양국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중앙정보국]

 
이런 갈등이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취임 직후부터 중동 평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카터는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사다트와 베긴을 초대해 9월 5일부터 17일까지 장장 13일에 걸쳐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거의 2주 간이나 회담이 길어진 것은 그만큼 양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했기 때문이었죠. 카터는 애초에 두 지도자의 성격차가 큰 것을 인지했고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에게 지시해 두 사람의 심리 분석까지 준비했습니다. 또 양쪽과 개별 협상을 통해 조문을 만들고 최종 서명 순간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캠프데이비드 회담[지미 카터 도서관]

캠프데이비드 회담[지미 카터 도서관]

그 결과 이집트는 아랍연맹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한 국가가 됐고 1979년 워싱턴 D.C.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공식적으로 평화 협정을 체결하게 됐죠.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협상이 끝난 조인식에서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지미 카터 회담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그 해의 노벨평화상은 사다트와 베긴에게 돌아갔습니다. 노벨평화상은 받지 못했지만 퇴임 이후에도 카터는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결국 2002년이 되어서야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 문제와 핵폐기...노벨 평화상의 '바로미터'
 
노벨 평화상 위원회가 한반도 문제를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카터가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도 한반도 문제를 중재한 공을 인정받아서였죠. 그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불거진 1차 북핵위기 때 김일성을 직접 만나 협상했습니다. 부인인 로잘린 카터와 함께 휴전선을 넘었고 결국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1994년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1차 북핵위기를 끝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라며 위협하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시설을 공습하라는 명령을 검토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또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북한과의 화해 협력을 위한 노력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지미카터 전 대통령은 제1차 핵위기가 불거졌던 1994년, 직접 김일성을 만나 한반도 문제를 중재했다.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더불어 한반도 문제 등에 기여한 공으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중앙포토]

지미카터 전 대통령은 제1차 핵위기가 불거졌던 1994년, 직접 김일성을 만나 한반도 문제를 중재했다.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더불어 한반도 문제 등에 기여한 공으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중앙포토]

다른 하나는 핵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수상자들을 종합해보면 비핵화에 힘을 쓴 개인과 단체들이 유독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년에는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ICAN)이, 1995년에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핵폐기 운동을 전개한 조지프 로트블랫과 그가 세운 퍼그워시회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라는 비핵 3원칙을 주장하며 핵무기 비확산 조약에 참여한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총리가 1974년에, 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IPPNW)도 198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2017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반핵단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을 대표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인 서로 세츠코씨(왼쪽). 오른쪽은 히로시마 폭격 당시 원폭 구름의 모습. [AFP=연합뉴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2017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반핵단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을 대표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인 서로 세츠코씨(왼쪽). 오른쪽은 히로시마 폭격 당시 원폭 구름의 모습. [AFP=연합뉴스]

노벨평화상 위원회의 한반도 문제와 핵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감안할 때 트럼프가 추진하고 있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가 가시화 된다면 그의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입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폭약이 전쟁에 쓰이는 것이 안타까워 평화상을 만들었다고 하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폭약공장이 평화회의보다 먼저 전쟁을 끝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며 힘의 균형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트럼프와 노벨의 속마음은 어쩌면 조금은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평가기준 주관적인 노벨평화상...히틀러, 스탈린 추천되기도
노벨평화상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각국 정부 관료, 국회의원, 대학교수, 과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전·현직 노벨위원회 위원이면 가능합니다. 추천 대상에 있어 제약은 딱히 없죠. 때문에 황당한 후보들이 추천된 적도 있습니다.

 
히틀러는 1939년 스웨덴의 한 의원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적이 있다. 노벨평화상 추천 대상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중앙포토]

히틀러는 1939년 스웨덴의 한 의원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적이 있다. 노벨평화상 추천 대상에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중앙포토]

1939년 스웨덴의 한 의원은 히틀러를 후보로 추천했다가 얼마 뒤 '웃자고 한 일'이라며 편지를 보내 자신의 추천을 거둬들였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무솔리니와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적이 있죠. 한국의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88년 3월, 유럽의회 의원들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적이 있습니다. 재임기간 중 있었던 아웅산 묘역 테러사건과 KAL기 폭파사건 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세계평화에 큰 공을 세웠지만 수상자가 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무려 5차례나 후보로 추천됐지만 한 번도 수상 하지 못한채 1948년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그해 노벨위원회는 “아무도 살아있는 후보 가운데 적절한 대상이 없다”며 그를 기렸고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았습니다.
 
시리아 민방위대원(하얀헬멧)이 공습으로 파괴된 잔해더미에서 시민을 구출해내고 있다. 2016년 하얀헬멧은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수상이 불발됐다. [중앙포토]

시리아 민방위대원(하얀헬멧)이 공습으로 파괴된 잔해더미에서 시민을 구출해내고 있다. 2016년 하얀헬멧은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결국 수상이 불발됐다. [중앙포토]

'하얀헬멧'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시리아 민방위대는 2016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아쉽게 마누엘 산토스 콜럼비아 대통령에게 상을 양보해야 했습니다. 라에드 살레흐 대장은 "우리에겐 인명구조가 가장 중요한 상"이라며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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