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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담판 “심하게 다퉈” … 시진핑, 미 특사도 안 만났다

미국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왼쪽 넷째부터) 등 미국 경제대표단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류허 부총리 등 중국 관리들을 만나기 위해 호텔을 나서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양국의 통상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3, 4일 베이징에서 고위 대표단 회담을 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왼쪽 넷째부터) 등 미국 경제대표단이 지난 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류허 부총리 등 중국 관리들을 만나기 위해 호텔을 나서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양국의 통상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3, 4일 베이징에서 고위 대표단 회담을 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3~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무역 담판이 결렬됐다.
 
이미 500억 달러(약 54조원) 규모의 관세 폭탄 리스트를 주고받은 미·중 두 나라가 타협 대신 이견을 확인하는 데 그치면서 미·중 무역 분쟁이 전쟁과 협상을 병행하는 시소게임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관영 신화사는 4일 협상 종료 직후 협상이 결렬됐음을 암시하는 다섯 문장의 짤막한 발표문을 내놓았다. “5월 3~4일 류허(劉鶴) 정치국 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가 미국 대통령 특사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공동 관심사인 미·중 경제무역 문제에 대해 솔직하고 성실하게, 효율적이며 풍부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진행했다”는 내용이다. 이어 “쌍방은 미국의 대 중국 수출 확대, 지식재산권 보호, 관세 및 비관세 조치 해결 등의 문제에서 충분히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미, 2년 내 무역적자 215조 감축 요구
 
발표문에 쓰인 중국식 외교 용어는 겉으로 보기엔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속뜻은 대부분 부정적이라는 해석이다.
 
중국 발표문에 담긴 용어의 속뜻

중국 발표문에 담긴 용어의 속뜻

우선 ‘솔직하고 성실하게(坦誠·탄성)’는 “언쟁이 무척 심각했다”는 의미를 담은 중국식 외교용어다. ‘효율적(高效·고효)’엔 “곧 담판이 결렬된다”는 의미가, ‘풍부하고 건설적인(富有建設性)’엔 “쌍방이 담판을 계속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특히 “충분히 의견을 교환했다”는 용어는 “쌍방이 어떤 합의에도 이를 방법이 없었다. 아주 심각하게 다퉜다”는 뜻이라는 게 중국 사정에 밝은 홍콩 동방일보의 풀이다.
 
므누신 미 재무장관의 움직임도 협상 결렬을 시사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사 신분임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조차 면담하지 못한 채 귀국했다.
 
미국에서 상황을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도 5일(현지시간) 트위터로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몹시 나쁜 버릇이 들어 있다(very spoiled)”고 비난했다. 미·중 양국이 후속 협상을 계속하는 데 동의했지만, 관세 폭탄이 실제로 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 “의견 교환”… 사실은 ‘합의 없다’ 뜻
 
이번 협상에서 양측의 입장은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컸다. 미국은 2020년까지 미·중 무역적자 폭을 최소 2000억 달러(약 215조원) 줄이고, ‘중국제조 2025’ 계획에 따른 각종 보조금 지급 중지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중국 당국으로선 애초부터 물러설 여지가 크지 않았다. 미국이 방중에 앞서 중국의 거대 통신업체인 중싱(中興·ZTE)을 제재하고 화웨이(華爲)를 조사하면서 중국 여론이 격앙됐기 때문이다.
 
중국이 외국 자본의 중국 내 증권사 지분 50% 이상 보유를 허용하고, 자동차 수입관세를 크게 감축하며,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크게 늘리는 등 적잖은 양보안을 제시했지만 미국의 핵심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멀었다.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중국이 미국과 벌어질 첨단기술 전쟁에 대한 대비에 착수한 것이 포착됐다. 우선 3000억 위안(약 50조8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첨단기술 분야의 제재를 정면 돌파한다는 구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중국이 대규모 펀드를 새롭게 조성해 자국 기업의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그래픽 처리장치의 디자인과 제작 분야를 지원해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여 나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베이징 협상의 성과가 전혀 없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무역 어벤저스 팀’이 중국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의 마지노선을 확인한 것 자체가 성과라면 성과라는 것이다.
 
이번 협상은 시진핑 주석의 중학 동창으로 중국 경제의 ‘차르’로 부상한 류허 부총리와 미국 매파 협상단이 맞붙어 ‘매와 학의 대결’로 불렸다.
 
 
중국, 50조 반도체펀드 등 보복 대비
 
동방일보는 “중국은 ‘전쟁으로 평화를 구하면 평화롭게 공존하지만, 타협으로 평화를 구걸하면 평화는 없다’는 원칙에 서 있다”며 “중국이 전쟁과 공멸 모두 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면서 미·중 간 시소게임은 결국 평화로운 교섭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알맹이 없는 공식 발표문과 달리 중국 관영 매체에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은 점도 주목된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5일 칼럼에서 “맹렬한 기세의 미국 보호무역주의 공세에도 중국은 단호히 국가 이익을 지키고 핵심 이익을 교환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부른 터무니없는 값을 거절했다”며 중국의 결기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계속 개방을 확대하고 미국에 협상의 대문을 열어 모두에 유리한 결과를 쟁취하겠다”고 다짐했다.
 
 
트럼프·시진핑 직접 만나 정리할 듯
 
관영 신화사도 5일 ‘솔직한 소통을 끝까지 진행하자’는 평론을 내고 “첩첩 산과 울렁이는 물결에 길이 없을 듯했지만, 버드나무 그늘 지고 꽃이 핀 곳에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는 송(宋)나라 시를 인용하며 긍정적인 분석을 내놨다.
 
미국과의 거래 금지 제재를 당한 중싱 그룹도 8만 명의 임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길이 아무리 멀어도 끝이 있고, 밤이 아무리 길어도 날이 밝는다”며 “변함없이 희망을 갖고 다가오는 새벽을 맞이하자”고 독려했다. 중싱이 미국 관계당국에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며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한다는 의미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양국 무역 분쟁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손으로 넘어간 양상이다.
 
투신취안(屠新泉)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교수는 “쉬운 것부터 어려운 순서로 문제를 풀기 위한 협상은 계속돼야 한다”며 “난해한 이슈를 풀기 위해서는 더 높은 고위층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정상들의 개입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그 전에 ‘소방대장’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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