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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심장소리가 240개 전구 불빛으로 반짝였다

설치 작품 ‘샌드박스’ 안에 서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라파엘 로자노헤머. 관람객들이 뻗은 손의 이미지가 영사기를 통해 투사돼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설치 작품 ‘샌드박스’ 안에 서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라파엘 로자노헤머. 관람객들이 뻗은 손의 이미지가 영사기를 통해 투사돼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름 끼친다.” “감동적이다.”
 
지난 4일 서울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을 찾은 20대 관람객 세 명이 어두운 전시장에서 이렇게 감탄사를 내뱉고는 말을 잃었다.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를 두 손으로 잡고 있던 한 관람객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하나의 백열전구 불빛으로 깜빡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어두워졌던 방안에서 240개 전구에 차례로 불이 들어오며 쿵쿵쿵쿵 숱한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작품의 제목은 ‘펄스 룸’(Pulse Room). 센서가 내장된 기기로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측정하고, 인터페이스가 측정한 데이터로 전구의 빛을 내는 작품이다.
 
올 상반기에 꼭 봐야 할 전시 하나를 고른다면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51, 이하 헤머)의 개인전 ‘디시젼 포리스트’(Decision Forest)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지난 3일 개관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첫 전시다.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신사옥 건물도 거대한 규모와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끌지만, 그 안에 자리한 미술관의 첫 기획전은 건물의 위용에 전혀 압도되지 않을 만큼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 지난 26년간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해온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미디어 아티스트 헤머의 작품 29점이다.
 
4일 전시장에서 만난 헤머는 “내 작품의 특징은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관람객이 완성한다는 것”이라며 “한국 관람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심장 박동 센서로 연출한 ‘펄스 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심장 박동 센서로 연출한 ‘펄스 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생체측정 기술과 VR(가상현실), 나노 기술 등의 테크놀로지를 작품에 활용했는데.
“여기에 새로운 기술은 없다. 나의 작업은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기술은 그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내 작업은 50년 전에 이미 대중을 예술의 일부로 참여시킨 백남준과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인 마르타 미누인, 두 분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캐나다 콘코디아대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했는데, 작품들이 매우 시적((詩的)이다.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 시인이자 아버지의 사촌인 옥타비오 파스 로자노(1914~1998, 1990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모호함’(ambiguity)과 ‘연약함’(fragility)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작품에도 그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
 
70t의 모래를 설치한 ‘샌드 박스’는 언뜻 보면 놀이터 같다.
“이 모래밭에서 관람객들은 서로 연결되고, 겹쳐지고,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함께 있다’는 느낌을 통해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람은 많은데, 각자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마음의 문은 닫혀 있다. 이곳에서나마 낯선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기를 바랐다.”
 
관람객들의 지문으로 채운 ‘펄스 인덱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관람객들의 지문으로 채운 ‘펄스 인덱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쿠바의 전설적인 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두의 숨을 저장한 작품과 사람들의 맥박과 지문을 활용한 작품을 보면, 인간 생명의 유한성이 부각돼 보이더라.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뜻)라는 주제가 엿보인다.
“프랑스 철학자인 몽테뉴가 말했다. ‘철학 한다는 것은 우리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작가로서 나는 이것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좋은 예술 작품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활용한 카메라, 조명기, 지문·음성 인식기 등은 감시와 통제를 위한 기술 아닌가.
“감시 시스템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고 이것들은 눈에 띄지 않게 숨겨져 있다. 나는 이것들을 명확하게 가시화해 하나의 놀이로 제안하고 싶었다.”
 
테크놀로지를 비판하는 것인가.
“아니다. 테크놀로지를 윤리적으로 판단할 의도는 없다. 테크놀로지 기술은 이미 제2의 피부처럼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도 세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될까 봐 걱정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의 양면성을 보는 게 아닐까. 예를 들면 생체 인식 기술은  누군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지만, 내 작품에선 참여자 모두가 익명이 되고, 그 측정값의 결과가 하나의 음악 혹은 시각 예술이 된다. 내게 기술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the public)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게 하는 방법인 셈이다.”
 
26년을 작업해왔다. 시간이 준 변화라면.
“젊었을 때는 내가 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고, 또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웃음).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인가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 게 가장 큰 변화다. 작품도 각기 나름의 삶이 있다. 나는 그저 열린 플랫폼을 만들고, ‘컨트롤할 수 없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다.”
 8월 26일 까지, 관람료 1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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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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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