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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노헤머,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은 이 전시···

 너의 심장 뛰는 소리가 '빛'으로 보여
'펄스 룸'(2006)의 인터페이스는 내장된 센서를 통해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측정해 백열 전구의 빛으로 발산한다. 많은 관람객들의 심장 박동을 빛과 소리로 전하는 작품이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펄스 룸'(2006)의 인터페이스는 내장된 센서를 통해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측정해 백열 전구의 빛으로 발산한다. 많은 관람객들의 심장 박동을 빛과 소리로 전하는 작품이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소름 끼친다." "감동적이다." 
지난 4일 서울 한강대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지하에 자리한 미술관.   20대 관람객 세 명이 어두운 전시장에서 이렇게 감탄사를 내뱉고는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를 두 손으로 잡고 있던 한 관람객은 자신의 심장 박동이 눈 앞에서 하나의 백열 전구 불빛으로 깜빡거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어두워졌던 방안에서 240개 전구에 차례로 불이 들어오며 쿵쿵쿵쿵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작품 제목은 '펄스 룸'(Pulse Room). 센서가 내장된 기기로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측정하고, 인터페이스가 측정한 데이터로 전구의 빛을 내는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개관전 'Decision Forest'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서울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이 건물의 지하에 6개의 전시장을 갖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3일 개관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서울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이 건물의 지하에 6개의 전시장을 갖춘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3일 개관했다. [사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올 상반기에 꼭 봐야 할 전시를 고른다면 라파엘 로자노헤머(Rafael Lozano-Hemmer·51, 이하 헤머)의 개인전 '디시젼 포리스트'(Decision Forest)가 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지난 3일 개관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첫 전시다.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건물도 그 거대한 규모와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끌지만, 그 안에 자리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첫 기획전은 건물의 위용에 전혀 압도되지 않을 만큼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 지난 26년간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해온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 미디어 아티스트 헤머의 작품들 29점이다. 
 
 그런데 이 전시가 좀 유별나다. 벽에 걸린 정적인 그림 같은 것은 없다. 대신 관람객이 스스로 몸을 계속 움직여야 하고, 마이크 같은 음성 인식기에 다가가 말을 하고,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갖다 대야 한다. 
 
4일 전시장에서 만난 헤머는 "내 작품의 특징은 내가 통제할 수 없고 관람객이 완성한다는 것"이라며 "한국 관람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설치 작품 '샌드박스' (2010)안에서 포즈를 위한 라파엘 로자노헤머. 마침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영사기에 비쳐진 관람객들의 손이 그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설치 작품 '샌드박스' (2010)안에서 포즈를 위한 라파엘 로자노헤머. 마침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영사기에 비쳐진 관람객들의 손이 그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창작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생체측정 설치 작품, VR(가상현실), 적외선 카메라, 나노 기술 등의 테크놀로지를 작품에 많이 활용했는데. 
 "미디어 아트 작업을 26년간 해왔는데, 내 작품에 새로운 기술은 없다. 나의 작업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기술은 그 도구일 뿐이다. 그리고 내 작업은 50년 전에 이미 대중을 예술의 일부로 참여시킨 백남준과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인 마르타 미누인, 두 아티스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캐나다 콘코디아대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빛의 패턴으로 보여주고 '보이스 어레이(Voice  Array)', 240명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빛과 사운드로 보여주는 '펄스 룸'을 포함해 많은 작품들이 매우 시적((詩的)이다.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 시인이자 아버지의 사촌인 옥타비오 파스 로자노(1914~1998, 1990년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시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모호함'(ambiguity)과 '연약함'(fragility)에 있다고 생각한다. 시를 누가 읽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지 않나. 내 작품에도 시처럼 그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   
 
 -70t의 모래를 설치했다는 '샌드 박스'는 언뜻 보면 놀이터 같은데. 
 "이 모래밭에서 관람객들은 서로 연결되고, 겹쳐지고,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함께 있다'는 느낌을 통해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이 세상에 사람은 많지만, 그 많은 사람이 갈수록 혼자가 되고 있다. 각자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마음의 문은 닫혀 있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이 함께 어울리며 놀고, 상호작용하기를 바랬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쿠바의 전설적인 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두의 숨을 저장해 계속 순환하도록 고안한 '마지막 숨'과 사람들의 맥박과 지문을 활용한 작품을 보면, 오히려 인간 생명의 유한성이 부각돼 보이더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라는 주제가 엿보인다. 
"프랑스 철학자인 몽테뉴가 말했다. '철학 한다는 것은 우리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 우리는 죽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작가로서 나는 이것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좋은 예술 작품은 모두 그렇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빛의 패턴으로 만든 작품 '보이스 어레이'. 관람객이 인터폰 단추를 누르고 말을 하면 앞서 수많은 관람객들이 남긴 288개의 누적된 목소리와 함께 빛의 패턴이 물결 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목소리를 빛의 패턴으로 만든 작품 '보이스 어레이'. 관람객이 인터폰 단추를 누르고 말을 하면 앞서 수많은 관람객들이 남긴 288개의 누적된 목소리와 함께 빛의 패턴이 물결 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작품에 활용한 카메라, 조명기, 지문·음성 인식기 등은 모두 감시와 통제를 위한 기술인데. 
 "감시 시스템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고 이것들은 눈에 띄지 않게 숨겨져 있다. 나는 이것들을 명확하게 가시화해 하나의 놀이로 제안하고 싶었다."  
 
-테크놀로지를 비판하고 싶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테크놀로지를 윤리적으로 판단할 의도는 전혀 없다. 테크놀로지 기술은 이미 제2의 피부처럼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나도 세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될까 봐 걱정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의 양면성을 보는 게 아닐까. 나는 테크놀로지의 다른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체 인식 기술은  범죄를 예방하거나 적이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개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내 관심사는 누군가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 아니라, 반대로 이 기술을 이용해 참여자 모두를 익명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렇게 수백, 수천, 수 만명의 사람들의 데이터가 모이면, 그 측정값의 결과가 하나의 음악 혹은 시각 예술이 된다. 내게 기술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the public)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게 하는 방법인 셈이다."   
1만명 관람객의 지문과 심박 수를 활용한 작품 '펄스 인덱스'. [사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1만명 관람객의 지문과 심박 수를 활용한 작품 '펄스 인덱스'. [사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죽어 있는 미술관 vs 살아 있는 미술관 
-세계 여러 도시의 거리에서 큰 규모의 공공 설치 프로젝트를 해왔다. 전통적인 개념의 미술관(museum) 안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는 인상이다. 
 "맞다. 내 생각에 미술관은 실패한 기관(a failed institution)이다. 미술관은 끔찍하다.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죽어 있고 박제돼 있다. 특정한 기준을 갖고 작품을 고르고, 산다는 행위에는 '배제'가 전제돼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폭력적이다. 예술 작품을 소장한다는 행위도 소유와 과시 욕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술관은 살아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통제될 수 없는 곳이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곳이 돼야 한다. 내가 미술관에서 좋아하는 유일한 컬렉션(소장품)이 있다면, 그것은 관계의 콜렉션(a collection of relationship)이다. 테이트 모던에서 행해지는 대형 라이브 퍼포먼스 같은 것 말이다. 진열장 안에 들어가 있는 예술 작품은 이미 죽은 것이다." 
  
   '통제할 수 없음'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26년을 작업해왔다고 했다. 그 시간이 준 변화라면. 
 "과거엔 내가 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고, 또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웃음). 지금은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더 많이 의문을 갖게 됐고, 더 주저하게 됐다. 난 이런 변화가 좋다.  예전에는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됐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무엇인가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작품들 역시 각각 나름의 삶이 있다. 나는 그저 열린 플랫폼을 만들 뿐이고,  '통제할 수 없음'을 수용하고 이를 느긋하게 즐길 뿐이다." 
 전시는 8월 26일까지. 관람료 1만2000원. 매주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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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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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